변화하는 세상, 적응 못한 락덕후의 한숨
지산밸리락페스티벌이 열리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다. 나날이 줄어가는 관객수에도, 꾸준히 대형락페의 기치를 내세우며 자리를 지켰던 그들이다. 지산으로 내한한 밴드의 면면만 해도 오아시스(Oasis), 라디오헤드(Radiohead), 레드핫칠리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등 화려한데, 이제 그들이 사라짐으로써 대한민국에서 락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말았다.
매년 밸리락의 관객수는 10만명이 넘으면 본전이었다. 그마저도 무형적 '홍보 가치'를 포함한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손해를 감수하고 수립한 가이드라인조차, 지난해를 기점으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6만명. 페스티벌을 유지하기엔 너무나 적은 수치였고 결국 CJ는 브랜드 하나를 포기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세계적으로도 락은 이미 마이너가 된지 오래다. 뉴메탈이 마지막으로 득세하던 2천년대 초중반을 마지막으로, 락의 위세는 완전히 죽고 말았다. 내가 공부하는 호주에서도 빅데이아웃(Big Day Out)과 사운드웨이브(Soundwave) 같은 초대형 락페가 모두 항복을 선언하고 나가 떨어진 지 오래인데, 하물며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꾸준히 대형 아티스트 데려온다고 용을 쓰던 지산밸리는 어땠을까. 그 점을 생각하면 매정한 주최측을 마냥 욕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 했고, 결국 역사로 사라지기 전 몇 가지 족적을 남겼다.
(국내 아티스트로만 채워진 락페를 제외한다면) 이제는 유일하다시피 남게 된 펜타포트조차 거리 먼 장르를 군데군데 끼워넣으며 세상과 타협하는 게 현실이다. 락팬들이 이게 락페냐며 내뱉던 불만도 이제는 옛날 얘기다. 그냥 열어줘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어만 주세요 하며 굽신거릴 처지가 된 게 지금의 상황이다.
락의 몰락을 보고 있자니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락페는 EDM과 힙합이 나와야지만 흥행이 되고, 그나마 최근 떠오르는 밴드 몇몇은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다소 심심한 음악을 한다. 기존의 락은 신선함을 잃은 채 사라졌고, 장르를 넘나드는 현대형 음악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락페'는 '뮤직페'가 되었고, 관객들은 더 이상 예처럼 닭장을 망나니 마냥 누빌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이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감성이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0년간 내 인생의 절반이요 심장박동의 원동력이던 락이었기에. 락페가 사라지는 건 곧 내 한켠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나 중학교 3학년, 처음으로 지산 땅을 밟은 2009년이 여전히 생생하다. 주먹구구 스터디 캠프에 틀어박혀 하루가 멀다하고 구시렁대던 내게, 멘토 선생님은 지산락페 다녀오라며 하루의 휴가를 주셨다. 전 락이 좋아요, 첫날 이야기 했던 그 말을 선생님이 3주가 되도록 머릿속에 담아두신 덕이었다.
"이런 캠프 때문에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좋아하는 건, 해야 돼. 가서 놀다 와!"
멘토 선생님이 내 휴가를 놓고 캠프측과 죽도록 싸웠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된 나는, 40대 남짓 되시는 어머니 지인 분들과 각종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며, 김창완밴드의 '개구쟁이'를,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를 부르짖었다.
푸르른 초원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무대효과에 넋이 나가 "정말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하던 중학생. 다음해 유학길에 올라서도 "언젠가는 꼭 3일치 락페스티벌을 전부 가겠다"며 되뇌곤 했다. 마침내 한국에 돌아온 2015년, 나는 밸리락의 라인업도 확인하지 않고 3일치를 곧장 얼리버드로 끊어 버렸다.
세상 모두가 개성 넘치는 사운드에 도취 될 때도, 나는 기타가 주는 설렘과 도파민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유학 이후 듣는 범위를 한껏 넓혔음에도 락을 향한 나의 기준과 갈증은 다른 장르보다 훨씬 높고 컸다. 새로움을 제시하지 못 하고, 마침내 '마이너'로 무너지던 락을 나는 버릴 수가 없었다. 여지껏 내가 락페 라인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의 절반은 여전히 '못 간 OOO밴드 공연 가보기'로 채워져 있다. 내 버킷리스트의 '죽기 전'은 대부분이 내가 아닌 '멤버들이 죽기 전'을 의미한다. 나는 갈수록 옛날이 되어갔고, 그렇게 한 사람을 보낼 때마다 추억에 생채기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작년에만 해도, '체스터 베닝턴 자살', '말콤 영 별세' 같은 소식이 내 버킷리스트 두 줄을 허무하게 지워버렸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락커를 보고자 하는 것이 나의 순수한 소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켄드릭 라마가 메인을 차지하고, 디스클로저가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시대가 됐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불만을 품지만,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볼멘 소리를 해봤자 젊은 꼰대 밖에 되지 않겠나 싶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 한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락페를 찾는다. 트렌드를 거부하는 가슴을 지독히도 원망하면서.
시대의 끝자락에 발을 걸친 나는 곧장 시대의 끝을 마주하고 말았다. 막판에 걸친 추억도 점차 희미해지고, 이제는 내가 즐긴 모든 것이 기록으로만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더 이상 좋아하는 걸 못 하게 될 까봐, 그게 현재로선 제일 두렵다.
락이 살아나서 락으로 채워지길. 그리고 내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