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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Jun 28. 2018

가장 행복한 새드엔딩, 독일전을 되짚으며

인정할 건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3패 한다고 했다. 열정이 없다고 했다. 수준미달이라고 했다.


개막 직전, 그런 수많은 비아냥을 캡쳐해서 인스타에 잠깐 올렸다. 제발 승점 따서 이 사람들 입을 납작하게 해주자고.


워낙 감정적인 글이라 금세 지웠지만, 그 마음만큼은 명확했다. 국대를 응원해 줄 사람은 국민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2연패를 한 뒤엔, 나조차도 전패 탈락을 너무나 당연히 여겼으니까.


16강을 눈앞에 둔 일본이 부러웠다. 선전한 이란이 부러웠다. 독일전 전반전은 솔직히 멕시코 경기와 번갈아 가면서 봤다.


자신이 없었다. 우리가 눈에 불을 켠 독일을 만나, 혹여라도 무너지는 꼴을 보면 어쩌느냐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무너지는 건 독일이었다.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드엔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2010년 16강 때보다 훨씬 기쁘다. 16강은 4년에 한 번 노릴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을, 세계 1위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떨어뜨리는 건 한 세기 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의 승리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이것은 역사였다. 세계축구사 한켠을 장식할, 월드컵 4강 이후 최고의 반란. 손흥민의 추가골은 평생 회자될 테고, 전세계 자료화면으로 수십 년간 쓰일 것이다. 16강 못 가도 됐다. 대한민국은 이름을 알렸고, 16년 만에 세계축구사를 다시 썼다.


나는 더 이상 다른 나라가 부럽지 않았다.


역대 최고의 이변 - 승리가 더욱 위대한 이유

앞으로 애국가 송출횟수 만큼 보게 될 손흥민의 골세리머니

상술했듯 이번 승리는 16강 이상의 가치가 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는, 가장 화려한 패자로서의 모습으로도 더할 나위 없었다. 대한민국은 이번 사건으로 세계축구사에 평생 이름을 남기게 됐다. 1950년의 미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축구종주국 잉글랜드를 1:0으로 꺾은 사실만 회자 되듯이. 1966년의 북한이 포르투갈에 3:5 대역전패를 당한 것보다,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 간 사실이 더 회자 되듯이 말이다.


16회 연속 8강 진출, 1938년 이후로는 1라운드 탈락이 없는 독일이었다. 그조차도 조별리그 탈락은 아니었다. '최초'는 누구도 재현할 수 없다. 앞으로 독일이 몇 차례 이변을 겪더라도, 대한민국의 이름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6승 중 3승을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독일을 상대로 가져가는 변태 같은 팀. 이 한 경기로 한국축구의 위상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길고 얇게 가는 것보다, 짧고 굵게 사라지는 게 더 기억에 남는 아이러니다. 이것 또한 아이러니다. 스웨덴과 멕시코 상대로 2승을 거둔 것보다, 단두대 매치를 갖는 독일을 상대로 단 1승만 거두고 홀연히 사라진 게 더욱 여운을 남겼다. 그것도 추가시간에 두 골. 드라마란 드라마는 모두 갖춘 한편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임팩트다. 세상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한 방이었다.


개혁과 별개로 신태용은 잘 했는가 -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드디어 VAR의 수혜를 본 대한민국. 아쉬운 판정 속에서도 참 열심히 했다


시작 전부터 3패를 외치던 사람들. 3패를 바라는 건지 아니길 바라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온통 초치는 댓글 천지였고 인신공격도 너무나 당연하게 따라왔다. 확인 할 수 없는 루머가 나돌았고 애꿎은 인물들만 도매금으로 묶여 비난 받았다. 상식적인 비판을 하잔 말이다. 공과는 철저히 구분 되어야 한다.


선수가 열심히 해서 승리를 쟁취했고 감독이 전술적으로 해낸 건 없다? 세상에 선수 - 감독이 완벽하게 구분 되는 경기가 어디 있는가? 승리의 영광은 모두가 갖고 패배의 짐은 모두가 진다. 독일전 승리도 같은 맥락이었다.


황희찬의 재교체는 전술적 패착이 맞다. 황희찬이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으며, 결국 재교체를 통해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꼴이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은 교체되어 들어온 주세종의 활약은 무시한다. 신태용 감독은 이승우를 넣지 않고 주세종을 넣었다. 끝없이 공세를 취하는 독일이 중원을 비우자 주세종을 넣어 중원을 장악했다. 이후로 체력이 떨어진 독일의 뒷공간을 끝없이 공략한 건 오직 선수의 덕일까.


황희찬이 빠진 자리에는 고요한이 들어갔다. 독일의 율리안 브란트가 투입된 지 1분만이었다. 브란트를 막기 위한 전술적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결국 성공으로 귀결 되었다. 독일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조커 브란트는 골대를 맞추는 등 상당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태용은 전략에서 뢰브를 이겼고, 결국 경기를 승리로 가져왔다.


전력 절반이 떨어져 나간 팀을 기워냈더니 '너 때문에 떨어졌'단다. 책임을 돌리는 비겁한 행위다. 멕시코는 스웨덴전, 우리가 말하던 것처럼 라인을 올리고 빠른 속도로 공세를 취했다가 0:3으로 실신했다. 유효슈팅 0의 굴욕 이후로, 국가대표는 날이 갈 수록 발전했고 결국 1승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누가 아직도 화풀이를 하는가. 조추첨까지만 해도, '1승하면 다행'이라는 자조적 평가가 뒤따르지 않았던가.


상식적인 비판을 하자. 축구협회는 개혁 되어야 하고, 이번 1승으로 현실을 세탁할 수는 없다. 그런데 두 경기 연이어 결정적인 실수를 한 두 선수의 학적을 들어, 학연 선발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 건 하지 말자는 거다. 그냥 선수 선발을 잘못한 거다. 애초에 한 선수는 학교 뒤통수 쳤다가 축구부에서 쫓겨난 선수인데 무슨 학연 선발인가.


선수 선발이 학연 지연으로 이루어지면 조현우와 문선민, 이승우, 윤영선의 선발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정도를 넘었다. 하긴 월드컵 16강 보낸 허정무 감독도 재임 중엔 선수빨이라고 욕만 먹었다. 이러니까 하나 둘씩 떠나간다. 신태용 감독이 인터뷰 잘 못 하고, 선수 잘못 뽑아서 페널티킥 내준 사실을 정확히 짚었으니 장점도 명확하게 짚어야 할 것 아닌가.


신태용 연임을 외치는 게 아니다. 국가대표 축구팀을 배설 창구로 쓰지 말아달라는 부탁이다.


마무리 하며


우리는 오랜만에 대한민국으로 하나 되었다. 8년간 지르지 못한 함성을, 아니 16년 만의 함성을 오랜만에 떠나가라 내지른 것 같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로(怒)와 애(哀)만 있던 그간의 월드컵이었다. 생각해 보면 월드컵을 웃으며 마무리 한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우리는 마지막에 떨어졌고, 언제나 아쉬움을 곱씹으며 대회를 끝맺었다.


그러니까 비난보다는 박수를 쳐주자. 모두가 열심히 했다. 졌을 때는 우리가 부족했고 이겼을 때는 우리가 뛰어났다. 냉정하게 현실을 되짚을 때가 곧 다가온다. 나 또한 그 때까지 승리를 즐기고, 평생의 자랑거리를 가슴 한켠에 간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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