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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Nov 27. 2023

어른답게 잘 살고 있는 순자 씨

어른답게 삽시다

이미 15년 전, 그러니까 순자 씨 나이 65세 때 순자 씨는 이미 장기 기증을 넘어 시체 기증까지 모두 해 놓았다. 당시 순자 씨는 자식들 모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자식들을 모두 불렀었다. 딸도 함께 했었다. 사실 딸 자신도 그리 해 놓을 생각이라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 외에 다른 딸들과 아들은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 반대에도 순자 씨 의지는 곧았다. 이미 결정을 한 터라 자식들 ‘허락’이라는 명목은 있었으나 통보였다. 결국 모든 자식들은 순자 씨의 결정을 따랐다. 서류에 사인을 마치고 잠시 집안에 침묵이 흘렀으나 다시 괜찮아졌다.      


순자 씨는 늘상 딸에게 말했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내 집 하나도 간신히 짓고 사는데 무슨 죽어서까지 땅을 차지하고 있느냐고, 죽은 사람은 그냥 죽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승에 미련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당신은 납골당 같은 한 뼘도 안 되는 좁아터진 공간에 갇혀 지내기도 싫다고, 평생을 뼈 빠지게 일만 했으니 죽어서는 훨훨 하늘로 날아다니며 자유롭고 가볍게 살고 싶다고. 그래서 결심한 것이라고.     

 

순자 씨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는 것을 딸은 잘 안다. 남편을 일찍 하늘나라로 보낼 때 순자 씨는 묘를 쓸 돈도, 납골당에 입주할 돈도 없어서 남편 유골을 산과 들판에 뿌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몹시 죄를 짓는 것 같고 남편에게 미안했고 무엇보다도 시댁에 미안했었다. 이후 순자 씨는 남편 삼우제를 지낸 사찰을 해마다 찾아서 죄를 씻듯 절을 했다.      


이런 순자 씨에게 딸은 순자 씨가 선경지명이 있어서 미래를 내다보고 앞서 간 거라고 순자 씨를 존경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위로를 한다. 사실 그렇다. 냉정히 생각하면 살아서 못 한 효도를 죽어서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다. 또 순자 씨 말대로 이 좁은 땅에서 죽어서까지 땅을 차지할 일도 없겠다 싶은 것이다. 그래서 딸도 장기 기증과 시체 기증을 하려고 마음먹은 터였다.     


순자 씨는 정말 건강한 생각을 갖고 산다. 항상 긍정적이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언행이 단정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본이 되는 삶을 살려고 한다. 그런 순자 씨를 딸은 존경한다.     

소설을 읽고 있는 순자 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의 『어른답게 삽시다』를 읽은 딸은 마치 순자 씨의 이야기를 써 놓은 듯한 글이 있어 깜짝 놀라 책을 들고 한달음에 달려가 보여줬었다. 딸은 순자 씨가 이 글을 읽고 그동안 마음 한편 옹이처럼 박혀 있었을 남편에 대한 죄스러움을 털어 냈으면 했다.   

   

이시형 박사와 순자 씨는 많이 닮았다. 이시형 박사는 죽는 날까지 현역이고 싶다고 했다.

 ‘온 힘을 다해 강연을 마치고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잠자듯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다면, 그것에 내게는 최고로 명예롭고 멋진 죽음이라고 믿는다.’(『어른답게 삽시다』 p110)

 순자 씨도 “사는 동안 육신이 허락하면 일을 할 것이라고 했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감사하다, 생각하며 잠든 어느 날 스르르 잠들 듯 그렇게 하늘 품에 안기고 싶다”라고 항상 말 했다.

딸은 순자 씨의 이런 생각을 많은 이들이 본 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시대의 많은 80대 순자 씨들의 소망일 거라고도 생각한다.


순자 씨 생각과 딸의 생각과 너무 같은 이시형 박사의 글을 옮긴다.


- 나는 장기 기증을 넘어 시체 기증까지 약속을 해두었다. 아직은 건강하니 쓸 만한 장기들이 몇 개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은 모두 새 주인을 찾아서 보내고 남은 몸뚱어리는 가까운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가져다주라고 해놓았다. 우리나라는 ‘실험용’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이 심해서 시체 기증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장기 기증을 하면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하고 시체 기증을 하면 ‘내가 어떻게 실험용이 될 수 있느냐’고 펄쩍 뛴다. 그러나 의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 어떻게 두 번 죽을 수 있겠는가, 이미 생명이 떠난 몸, 미래 세대를 위해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중략)

이 좁은 산천의 푸른 산 자락마다 두드러기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묘들이 나는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다. 호화로운 묘를 세우는 것은 죽은 이를 위하는 게 아니라 남은 이를 위한 것이다. 생전에 제대로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걸려서 늦게라도 사죄하기 위한 마음도 있을 것이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허세도 있을 것이다. 나는 떠나고 난 자리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이미 나는 조재하지 않는 세상에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들을 남겨두어 살아 있는 이들에게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다. (『어른답게 삽시다』 p110)-    

딸의 시집을 읽고 있는 순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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