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슬리퍼

관리원 면접

by 서휘

“여보세요, 저 관리원 뽑는다는 말 듣고 전화드렸는데요, 위치가 어디지요?”


직원 채용 공고를 하면 전화받느라 일을 못할 정도다. 사무직이나 젊은 사람들은 메일로 제출하라고 하면 되는데 관리원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안 되기 때문이다.

관리직원 한 명이 사직을 하면서 대체 인원 채용 공고를 냈다. 몇 통의 전화를 받았고 몇 사람을 면접했다. 그중 인성이 바른 사람을 우선 채용했다. 채용 이후에도 두 사람 정도 더 면접을 봤다. 혹시 몰라 인재 확보 차원에서다.

점심시간 외부 약속이 있어 나가려던 참에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상대방은 쉰셋이라 했고, 건강하다고도 했다. 이력서를 가져오라 했더니 그가 말했다.

“지금은 급히 연락드린 거라 옷차림이 정돈되지 못했습니다. 내일 양복을 쫙~ 빼입고 찾아뵙겠습니다.”

정소장은 그래도 면접 보는 자세가 됐다고 생각하며 시동을 켰다.

‘관리원 지원자치곤 나이가 젊긴 한데... 에이 무슨 사정이 있겠지.’

만약 업무능력이 괜찮으면 사무직으로 키워 볼 생각도 하면서 면접 시간을 잡았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김대춘은 면접이고 뭐고 귀찮아졌다. 그래도 아무 데고 들어가고 봐야 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외출 준비를 했다.

어제 미리 준비해 둔 양복을 입으려다 말고 창밖을 봤다. 굵은 장대비가 창문을 가득 메워 밖이 안 보일 정도다.

‘에이,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양복은 무슨. 어차피 다 젖을 텐데. 그리고 좋은 직업도 아니고 그냥 경비원 겸 관리원 면접 보는데 양복까지는 오버지. 그냥 편하게 입고 가자.’

김대춘은 평소 집에서 입던 먹색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삼선슬리퍼를 신었다. 우산은 파라솔처럼 큰 우산을 집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빌라는 빗속에 묻혀 더 낡아 보였다. 김대춘은 5층부터 터럭터럭 슬리퍼를 끌며 계단을 내려왔다. 1층 현관문 앞에서 김대춘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곤 커다란 파라솔 우산을 펼쳤다. 하늘이 가려졌다. 김대춘은 주머니에 접어 넣은 이력서 봉투를 한 번 더 확인한 후 면접장으로 발을 디뎠다.

철벅철벅 빗물이 도로 위를 냇물처럼 흘렀다. 김대춘은 그 위를 물장난 치듯 삼선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었다.




정소장은 단지 순찰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 양복을 쫘~악 빼입고 면접 보러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은근 기대가 됐다.

‘그래도 오십 초반이면 컴퓨터는 기본 할 줄 알겠지? 그러면 전기 검침과 주차등록 정도는 도와줄 수 있겠군.’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전화가 왔다.

“지금 가고 있는 중인데요, 좀 늦을 것 같습니다.”

“네, 천천히 오세요.”

정소장은 건물 위치를 알려주고는 2층 창가에서 면접을 보러 오는 것 같은 사람 모습을 찾으니 오가는 사람들 중 정장 차림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단지로 들어왔다. 정소장은 면접 볼 준비를 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시간이 한 참 지났다.

‘아까 그 승용차가 아니었나 보네. 좀 많이 늦네.’

정소장이 젊은 면접자를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정소장은 나 홀로 소장이라 사무실 업무는 물론 기계실 관리까지 맡아하고 있다. 대부분 경리겸직 소장이라면 기술직에 과장이라도 두는 경우가 있는데 해라타워는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관리원들이 정소장을 돕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사실 정소장은 업무량이 다른 소장들에 비해 많다. 어느 날 회사에 관리과장까지는 아니라도 기전기사를 채용해 달라고 했는데 ‘알아보자’는 대답만 있었을 뿐 이후 소식이 없는 터였다. 정소장 역시 직원 한 사람을 더 채용해 달라고는 했지만 입주민 입장에서 관리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터라 똘똘한 관리인을 채용해서 급여를 조금 더 주더라도 기사급으로 일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면접 시간이 30분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정소장은 로비 비밀번호를 누르고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무릎이 나온 낡은 감색 츄리닝, 삼선슬리퍼가 걸어 내렸다. 정소장은 늘어진 먹색 티셔츠를 보는 순간 설마 했으나

“안녕하세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하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면접을 보는 내내 김대춘은 환하게 웃는 모습을 잃지 않았고 뭐든지 잘한다는 의욕을 보여줬다.

정소장은 이력서를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 양복 입고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네, 비가 많이 와서요...” 김대춘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 평상복이라도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고 올 것이지. 직업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으며 이 꼴로 면접을 보러 오나!’정소장은 하마터면 입 밖으로 핀잔이 나올 뻔했다.

무엇보다도 면접 보는 내내 김대춘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72년생이 아니라 72세처럼 보이는 김대춘의 인상이 마주 앉아 있기도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

김대춘은 공무원으로 일했고, 행정업무를 주로 맡아했고 컴퓨터 사용은 하도 오래됐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며 자신을 어필했지만 정소장은 그 이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비가 와도 그렇지 양복이 아니면 단정하게라도 입고 올 것이지. 어제 말에 따른 오늘의 모습이 너무 달라 무책임하다 못해, 제정신이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대춘이 나가고 정소장은 이력서를 더 볼 것도 없이 파쇄기에 이력서를 갈아버렸다.

‘무책임한 사람 같으니라고’

정소장은 직원을 채용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 째, 목소리가 업무에 맞는지. 둘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태도가 예의에 맞는지. 셋째, 이력서 작성과 내용이다. 그리고 면접을 본 후 이력서 상단에 정소장만의 점수를 표시해 둔다. A+, A, B+, B... 이런 식.

이 원칙은 정소장이 예전 강사 채용 때부터 지켜온 작은 습관이다. '반드시'라는 원칙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도의 생각이다.

목소리는 평소 그(녀)의 성격을 느낄 수 있고, 태도는 그(녀)의 기본자세를 알 수 있다.

무슨 대단한 직업이라고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냐고 하겠지만 정소장은 ‘자신의 삶에 진심인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성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

문득 얼마 전 봤던 면접자가 생각이 났다. 나이는 74세. 경비업체에서 연락받고 왔다던 최문재는 자격증도 많고 월남도 갔다 온 경력이 있고 두바이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력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고 빌딩 경비 경력만 있었다.

“그 좋은 이력을 왜 안 쓰셨어요?”정소장이 물었다.

“네에, 뭐 관리원 하는데 이런 경력이 뭐 소용 있나 싶어서 안 썼습니다.”

“그런데 왜 제겐 이력서에 작성하지 않은 경력을 말씀하시는데요?”

“네에, 그래도 제가 젊었을 때 했던 일이니 그냥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관리원 지원 하는 이력서 관련 없는 경력은 쓰지도 말라고 해서요.”

최문재는 그렇게 말하는 왼손에 용접공 자격증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정소장은 최문재에게 말했다.

"본인의 지나온 삶을 무시하지 마세요. 70 평생 살아온 삶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으실 일이 생기거든 본인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력을 잘 작성하세요. 그리고 그 삶을 인정해 주는 사람과 일 하세요."

최문재가 돌아가고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소장님 같은 분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면접보고 집에 가면서 가슴속에서 희망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장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정당한 노동에 시시함이란 없다.

경비 일도 관리원 일도 모두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맡은 일을 시시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기 삶에 진심인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것이 과한 욕심일까.

정소장은 책상 서랍에서 다이어리를 꺼냈다.


'나'자신을 인정하고 보듬자.


굵은 만년필로 또박또박 썼다. 정성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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