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지키는 사람들

예기치 못한 사고 앞에서

by 서휘

새벽 3시에, 휴대폰 벨이 유난히 요란하게 들렸다.

정소장은 손을 길게 뻗어 침대맡에 놓인 휴대폰을 열었다.

“소장님! 집수정 횡주관이 터졌습니다. 구멍이 좀 큽니다. 사진 찍어서 보내드렸습니다.”

박팀장의 목소리는 무척 긴박했다.


지하 6층에 있는 집수정은 해라타워의 심장부나 마찬가지다. 그곳에 차오르는 물을 25마력짜리 두 대의 펌프가 지상으로 퍼 올린다. 그래야 빌딩이 안전하다. 박팀장이 찍어 보내온 사진을 보니 수돗물을 틀어 놓은 듯 제법 구멍이 컸다. 화면에 비친 파손 부위는 깊게 벌어진 상처처럼 보였다. 정소장은 이내 눈꺼풀의 무거움을 떨치듯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 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에 일찍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아침이 밝기도 전, 정소장은 몇몇 설비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문제가 생긴 곳의 사진을 보여주니 업자마다 각기 의견이 달랐다. 누군가는 대공사라 했고, 누군가는 간단한 수리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제각기 다른 진단과 견적을 보면서 고민이 됐다. 정소장은 고민 끝에 지난번 지하 1층 배관 청소를 맡겼던 J설비업체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 예기치 못한 사고


J설비업자는 오후 1시에 방문했다. 필요한 자재가 있어 구입해서 오면 밤 10시쯤 본격적인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로 미루지 않고 밤중에라도 공사를 하겠다는 업자가 고마웠다. 정소장 공사 마무리를 보기 위해 퇴근을 미루고 사무실에 남았다. 사무실 통 창으로 어둠이 내리고 빌딩들은 하나 둘 네온사인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정소장은 정소장 대로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평소 급한 일에 미루어 놓았던 남은 일들을 했다.


그런데, 평온을 즐길 틈도 없이 밤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박팀장에게 또 전화가 왔다.

“소장님, 지하 5층으로 빨리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소장은 뭔가 불길한 예감을 직감하며 지하로 뛰어 내려갔다.


해라타워는 지하 5층과 6층에 기계식 주차장과 기계실, 그리고 집수정이 있다. 수리 예정이던 횡주관이 있는 곳은 지하 6층, 그곳으로 가려면 기계식 주차장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현장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J설비 직원이 작업장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주차장의 웨건이 충돌했고, 케이블이 손상된 것이다. 정소장은 급히 기계식 주차장 관리업체에 연락했고, 다행히 곧 기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J설비 직원은 자기 실수라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정소장도 마음이 복잡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며 수고한 그에게 괜히 더 무리하게 시킨 건 아니었나 싶었고, ‘안전을 더 철저히 신경 쓰지 못한 책임은 내게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수리가 마무리되고, 정소장은 사무실로 올라왔다. 기계식 주차장도, 횡주관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정소장의 마음은 아직도 집수정의 터진 배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집수정은 지하 5층에서 약 4m 아래 벽에 딱 붙어 있는 수직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웬만한 남자도 무서워하는 그곳을 폐쇄공포증이 있는 정소장은 더욱 내려갈 수가 없다. 다행히 요즘은 컴퓨터 시설이 잘 돼 있어서 정소장은 그곳을 CCTV와 직원들이 찍어 보여주는 사진으로 확인하기는 하지만 소장으로서의 직무에 2% 부족함을 느낀다. 정소장이 극복해야 할 하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지나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환기가 필요했다. 빨리 어두운 지하에서 헤어 나와야 했다. 창문을 모두 열었다. 빌딩숲 사이로 밤바람이 들어왔다. 잠깐이었지만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큰 인명 피해나 2차 사고가 없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자.’ 안도의 숨이 쉬어졌으나 쉬이 잠은 올 것 같지 않았다.


다음날, J설비에 전화를 걸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달라고 연락했더니 그는 “죄송하다”면서 “이번 공사비는 못 받겠다” 고 했다. 정소장은 하루 종일 밤늦도록 고생하셨는데 받을 건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J설비 직원은 어쩔 수 없듯이 알겠다고 했다.


그날 오후, 정소장이 자리 비운 사이 J설비업체 사장은 관리사무소에 떡 한 상자를 두고 갔다.


- 균형을 지키는 사람들


삶은 고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실함 덕분에 버텨지는 것이 아닐까.

새벽까지 고생한 반장, 기계설비작업자들, 선물을 두고 간 J설비업체 사장과 정소장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복구는 책임지는 사람들이 감당하는 몫이다. 그 몫을 다하기 위해 정소장은 오늘도 촉을 세우고 건물을 지킨다. 묵묵히 제 자리에 선 채로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금 막,

빌딩숲 사이로 묵청빛 바람이 조용히 지나갔다.


ㆍ'아파트 단상'의 글과 이곳의 글이 크게 다르지 않아 소설화하여 이곳에 올립니다. '아파트 단상' 매거진은 연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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