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웃이야!

계약 해지 통보

by 서휘

“에―엥―에―엥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에―엥―에―엥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만 벌서 아홉 번째다.

이번 달에 들어, 유난히 4층에서만 하루에도 다섯 번, 많게는 여섯 번씩 울린다.

정소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1층 방재실로 뛰어갔다. 수신기 화면에 붉은 글씨가 굵게 떠 있었다.

‘화재 발생, FA-4F-1’


“반장님, 4층 올라가서 화재여부 확인하세요.”

임반장은 늘 그렇듯 느긋하다.

“아유 소장님 어차피 불도 안 났을 건데 그냥 끄시죠, 확인해 볼 거나 있나요?”

정소장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반장님! 빨리 올라가 보시라고요!”

“예―” 느긋한 대답을 하고 그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화재경보는 울리는데, 그는 걸음걸이마저도 느긋하다.

“반장님! 계단으로 뛰어가셔야죠! 엘리베이터 언제 내려올 줄 알고 기다려요! 빨리 뛰어가세요.!”

그제야 임반장은 비상문을 열고 계단을 오른다. 여전히 느긋하게.


- 경보발생 -> 현장 확인 -> 화재 여부 확인 -> 경종 정지 -> 현장 감지기 등 점검 -> 이상 없음, 또는 발견 시 해결 -> 화재복구 -

이 모든 과정이 1~2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 정소장 원칙이다.


예전에 반장이 휴게시간이라고 빌딩을 비운 사이 화재경보가 울린 모양이다. 휴일이라 정소장은 출근하지 않은 날이었다. 10분이 넘게 사이렌이 울렸고 607호 어르신은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오다 숨넘어간다며 주저앉았고, 다른 입주민은 119에 직접 신고까지 했었다.


정소장은 3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전화를 걸었다. 임반장은 아직 불량감지기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반장님! 빨리 화재인지만 확인하고 일단 알려주셔야죠. 확인은 나중에 하시고요!”

화재가 아니라는 확답을 받고 정소장은 경보음을 껐다. 그리고 감지기 점검에 들어갔다. 이상 없다는 걸 확인 후 복구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경보.

이번엔 5층이다. 이어서 지하 5층, 지하 3층.

수신기는 미친 듯 건물을 훑으며 비명처럼 사이렌을 퍼부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전쟁은 7시가 되도록 끝날 기미가 없었다.


정소장은 감지기 청소를 지시한 뒤,

소방시설 담당 김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현장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감지기 이상도 없고 화재도...”

김실장은 정소장 말을 잘랐다.

“소장님! 내 말을 듣고 말씀하세요. 무조건 저한테 전화부터 하지 마시고요! 음향버튼만 눌러 놓고 감지기를 찾으시라고요!”

정소장은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 한 걸 꾹 참고 목소리를 깔았다.

- 프로는 위기 속에서도 흩어진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기술자라해도 먼저 버려야 할 것은 오만과 편견이다. - 김실장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으나 꾹 참고,

“실장님, 내가 아무 조치도 안 하고 무턱대고 전화부터 했을까요? 내가 전화를 할 땐, 할 수 있는 것 다 해 본 뒤 최후에 전화를 하는 겁니다!”

김실장은 비웃듯이, 또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 웃으며 말했다.

“하참, 소장님, 내가 시키는 대로 하셨어요? 음향 끄고 화재 확인하시고 감지기 찾으셨어요?”

정소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일단 알겠으니까 끊을게요.”

상대가 뭐라 덧붙이려 했지만 그냥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본사 강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전문가를 연결해 주었다.

“소장님, 소방시설 쪽으로 전문 공학박사이시니 도움 받아 보세요.”

정소장은 미안했지만 지금은 체면 따질 때가 아니었다. 곧 이대표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강팀장에게 전달받았습니다. 우선 수신기 종류를 알아야 하니까 사진 좀 찍어 보내주세요.”

정소장은 사진 보다 현재 상황을 짧은 동영상으로 찍어서 이대표에게 보냈다.

“네, R수신기군요. 이젠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해 보세요.”

이대표는 전화통화만으로도 쉽게 설명해 줬다. 정소장은 이대표가 알려주는 대로 수신기를 드려다 봤다. 일단 원인 제거를 했고 일단락 해결이 됐다.

“대표님, 너무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강팀장과 인연도 있고... 또 어려운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그제야 정소장은 깊은숨을 토했다. 시계는 어느새 밤 8시.


오늘 저녁 예정된 주택관리사 동기 모임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동기들은 아쉬워했지만, 다행히 잘 해결 됐다며 격려해 주었다.


잠시 후, 김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소장님, 접니다. 아직 퇴근 안 하셨죠? 제가 빌딩 근처인데 들를게요.”

정소장은 차갑게 잘라 말했다.

“아뇨, 내가 해결했으니 안 와도 됩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정소장은 다짐하듯 한글파일을 열었다.

수신 : C&S유지관리 대표이사

제목 : 소방시설 유지.보수 관리 계약 해지 통보 안내


때마침 본사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황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 우리 정소장님 이 시간까지 퇴근도 안 하시고 고생하시네요.”

정소장은 큰오빠에게 하소연하듯 오늘 있었던 일을 일러바치듯 털어놓았다.

“그 어린놈이 아무 일 없을 때만 친절하고 오늘 같이 어려울 때 짜증이나 내고. 우리가 대행을 왜 써요. 이럴 때 도움 받으려고 돈 주고 맡기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계약 해지 통보 작성하고 있어요.”

대표는 단호하게 맞장구쳤다.

“잘했어요. 그런 업체는 필요 없습니다.”

정소장은 전화를 끊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넌, 이제 아웃이야!’

마침내 마음속에서도 사이렌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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