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정혜수
출근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년의 남녀가 다급히 들어왔다.
“저… 저희는 근처 부대에서 온 군무원인데요, 혹시 312호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남자는 군무원이라 소개했고, 곁에 선 여자는 아내라고 했다.
정소장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몰려든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차분히 손짓하며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요?”
남자는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오늘 출근해야 할 친구가 연락이 안 됩니다. 집에도 가 봤는데 인기척이 없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정소장은 속으로 ‘답답한 사람들이군’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라면 경찰에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세대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별일 아닐 경우 신고해서 일이 번거롭게 되기보다 자신들이 직접 확인부터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무작정 관리사무소부터 찾아왔다고 했다.
정소장은 박팀장을 불러 312호로 가 보게 하고, 자신은 곧장 입주자 등록란을 확인했다. 그곳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머니인듯한 노인이 전화를 받았다. 젊은 입주자들이 부모 번호를 대신 적는 경우가 있다.
“정혜수 님 핸드폰 아닌가요?”
“예, 엄마인데요… 우리 혜수한테 무슨 일 생겼나요?”
“아니에요, 관리비 관련으로 말씀드리려는 건데… 본인과 직접 통화해야 해서요. 다시 연락해 보겠습니다.”
“왜요, 전화를 안 받나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나요?”
노인은 이미 몇 번의 전적이 있었는지 걱정과 불안이 앞선 목소리다.
정소장은 그 목소리 속 걱정이 마음에 걸렸다. 전화를 끊고 정소장은 부부를 향해 물었다.
“어머니께서 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데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신데요.”
순간, 부부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없고… 그냥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혹시라도 해서 온 겁니다.”
부부의 말투가 다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뭔가 감추려는 기색도 느껴졌지만 정소장은 크게 마음 쓰지 않으려고 했고 정말로 크게 마음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를 바랐다.
그때 박팀장이 내려왔다.
“초인종을 누르니 금방 문 열어주던데요?”
부부는 박팀장 말을 듣자마자 급하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312호로 올라갔다.
여자는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312호 현관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정혜수는 밤새 울었는지 헝클어진 머리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혜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만 보였다.
“혜수야, 이렇게 연락을 끊는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해결을 봐야지.”
여자가 따뜻하지만 뭔가 문제 앞에 조바심이 난 말투였다.
“아니에요. 그냥... 저... 그만두고 싶어요... 김소위님과도 직장도... 다... 너무 힘들어요.”
방 안에는 오래 참아온 두려움과 지침이 가득했다.
“문 앞에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들어가도 되겠니? 천천히 얘기하자.”
혜수는 몸을 한쪽으로 비켜섰다. 혜수는 옷가지가 늘어진 거실 바닥을 대충 치웠다. 부부는 혜수를 바라보고 애원하듯 앉았다.
정혜수는 군무원으로 입사해 올해 3년 차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만큼 직장에 애정과 자긍심을 갖고 마음가짐을 항상 즐겁게 일하려고 애쓰고 있다. 혜수는 같이 일하는 행정반 현역들과도 잘 지내서 인기도 있었다. 그런 그녀를 좋게 본 행정반 현역 중 김소위와 근무 외 자주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직원들보다 친하게 된 둘은 연인이 되었다. 그 김소위가 오늘 관리사무실에 찾아온 부부의 아들이다. 부부는 혜수가 쏙 맘에 들었다. 김소위도 부족하지 않지만, 혜수는 외모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딱 며느리 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그녀가 한 달 전부터 김소위를 피했고 김소위는 그런 혜수에게 더욱 집착을 보였다. 그러다 어제 혜수가 김소위에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김소위는 혜수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사실 혜수는 데이트폭력을 간혹 당했었다. 더는 못 참겠어서 이별통보를 했던 것이다.
혜수는 마음이 너무 지친 이유도 있었지만 이렇게 멍든 얼굴로 도저히 출근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부부가 김소위에게 혜수의 결근을 묻자 김소위는 사실대로 말했고 부부는 혜수가 염려되어 달려온 것이다. 아니, 사실은 혜수도 혜수지만 혹시라도 혜수가 김소위를 신고라도 하게 되면... 부부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혜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했다. 단호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마디 힘이 실렸다.
부부는 설득할 힘을 잃고 한 가지만 부탁했다.
"우리가 대신 사과할게. 김소위는 우리가 잘 설득할게. 신고만 하지 말아 줘. 제발 부탁이야. 그리고 김소위는 다른 부서로 배치하고 혜수와 부딪히는 일 없도록 할게."
혜수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여자가 혜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를 했다.
부부가 돌아가고 혜수는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부부는 관리사무소에 다시 들렀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박카스 한 박스를 주고 갔다.
정소장은 짧은 위로의 인사를 주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해라암의 고요가 다시 찾은 듯 아침빛이 길게 회의실 탁자에 드리웠다.
정소장은 세대 속속들이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사연 앞에서는 몰랐을 때보다 더 마음이 아프다. 그냥 알고만 있어야 하는,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입장이. 그저 단지에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관리의 딜레마다.
퇴근 때 엘리베이터를 탔다. 정혜수가 타 있었다. 정소장은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 여느 때와 같이 미소로 인사를 했다. B1층, 문이 열리고 정소장이 내리려고 하자
“들어가세요” 정혜수가 인사를 했다. 정소장은 살짝 몸을 비틀어 뒤돌아보며 목례로 화답했다.
정소장은 운전을 하면서 정혜수의
“들어가세요” 소리가 자꾸 아프게 들렸다.
‘좀 어떠냐고 물어나 볼걸 그랬나... 아니야, 그러면 민망해할 거야... 이럴 땐 모르는척해 주는 게 좋은 거야. 그래도 혹시 필요하면 언제고 SOS 하라고 말할걸...’
복잡한 생각이 퇴근길처럼 길게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