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주차금지 구역
“125너 4978 차량 차주 되시죠?”
박팀장은 오늘도 건물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루틴을 시작했다. 주차 단속은 그의 업무 중 오해를 자주 사는 일이다. 규칙을 지키자고 하는 말에 누군가는 자유를 방해받은 느낌이 들 테니까. 그러나 그 자유라 생각하는 불규칙이 얼마나 많은 누군가의 편의에 빚을 지는 일인지.
“네... 그런데요...” 반쯤 잠에서 깬 목소리였다.
“차량을 비상셔터 아래 주차하셨네요. 다른 곳으로 이동해 주셔야겠습니다.”
“아... 씨발 지금이 몇 시야!”
박팀장은 융단폭격처럼 날아온 욕설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핸드폰 시계를 봤다. 밤 10시가 안 되었다.
“아, 네. 밤 10시가 돼 가긴 합니다만 차를 위험한 곳에 세우셔서요. 이곳은 화재 시 셔터가 내려오는 곳이라 이곳에 차를 세워두면 안 됩니다. 위험해요.”
“그래서어~ 지금 불이 났어? 야, 씨발 불이 났냐고오~”
“네? 뭐라고요?”
“씨발 지금 몇 시냐고~! 그리고 나 지금 술 먹어서 운전 못 해.”
박팀장은 가슴에 찬 ‘직원’ 명찰이 그날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흔한 모욕을 삼키는 데 쓰이는 기관은 식도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다시금 실감한다.
“그러면 키를 주시면 제가 대신 다른 곳으로 이동 주차해 놓겠습니다.”
비상셔터는 화재 발생 시 구간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열이나 연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소방법에서는 매우 중요한 시설물이다. 그러니 그 아래 주차나 적재물이 있으면 작동에 지장을 받아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어 많은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에 그곳은 차량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도 적재해서는 안 된다.
그런 내용을 써붙여놔도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그저 아침에 빨리 나가기 위한 자기 편의만 생각한다.
“뭐라고? 야! 씨발 내 차가 아무나 운전해도 되는 찬 줄 알아? 에쿠스야, 에쿠스!”
박팀장은 해라타워에 입사하기 전, 잠깐 운전 대행과 텔레바킹 일을 했었다. 승용차는 웬만하면 다 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말속에 실려 온 건 ‘내 차가 얼마짜린데 건물 경비원 주제에…’ 하는 무례한 경멸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물건의 값을 사람의 값보다 크게 말한다.
“네,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곳에 주차하시면 좋은 차가 파손될 위험이 있어서 그럽니다.”
박팀장은 차주의 마음을 다스려 주려 노력했다.
“그럼 당신이 운전하다가 내 차 파손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파손 안 되게 조심히 잘 주차해 놓을 테니까요. 혹 내려오기 힘드시면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아~ 씨발 좆같이 어딜 올라온다고? 야~! 내가 좋게 얘기하니까 만만해? 내 차 아무나 못 만져 이 새끼야. 네까짓 게 내 차를 만져나 봤어?”
막말이 더 심해졌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묵은 가스가 솟구치듯 화가 치밀었다. 박팀장은 67의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꾸준한 운동으로 몸이 다부졌고, 목소리도 우람했다. 그는 친절하되 비굴하지 말라는, 입사 면접 때 정소장의 당부를 신념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신념은 때때로 얇은 얼음장처럼 잘 깨지기도 했다.
“야— 이 새끼, 너 몇 호야?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뭐? 씨발? 응? 너 몇 살 처먹었어! 내가 너만 못해서 여기서 경비하는 줄 알아, 새끼야? 어디서 막말이야! 너는 부모도 뭣도 없어? 몇 호야, 당장 말해! 당장 내려와, 이 씨발놈아.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이놈의 새끼 그냥—”
말은 쉽게 칼이 된다. 차주와 박팀장의 칼날이 쨍쨍거리며 오갔다.
4978 차주는 결국 내려오지 않았다. 이내 전화도 꺼졌다. 박팀장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밤새 그곳을 지켰다. 밤이 길었다. 새벽 6시 인계 시간. 퇴근해야 했지만, 어제의 그놈을 반드시 잡아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는 임반장에게 인계만 하고 퇴근을 미뤘다. 간이 의자를 가져와 에쿠스 앞에 앉았다.
차주는 8시쯤 내려왔다. 출근복 차림, 마흔 중 후반쯤. 175쯤 되어 보이는 키, 흔한 체구. 그가 리모컨을 눌렀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공기 속에 길게 퍼졌다.
박팀장이 일어섰다.
“이 차 주인입니까?”
힐끔, “네. 그런데요?”
“어제 저랑 통화했죠?”
“네? 어... 네... 아마...”
“야, 너 잘 만났다. 어제 한 말 그대로 다시 해봐. 나 오늘 사표 썼고 이판사판이다. 어디 다시 한번 해봐.”
성난 목소리가 넓은 주차장에 공명처럼 부딪혔다. 울림은 언제나 말보다 오래 남는 법이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술에 취해서... 제가 실수를... 정말 죄송합니다...”
허리를 굽혀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그 자세가 궁상맞기도, 측은하기도 했다. 사람의 품격은 사과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박팀장은 생각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이마에 핏대를 가라앉혔다.
“이 양반아, 이렇게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이 그러면 써? 차만 좋으면 뭐 하나, 사람이 좋아야지.”
“네... 사실은 이게 제 차가 아니라 우리 회사 대표님 차라... 제가 그래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박팀장은 짧게 눈을 감았다 떴다. 문득 떠올랐다. 밤새 지켜낸 건 통로 하나였지만, 지켜내고 싶었던 건 사람들의 통로,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이었다. 비상셔터 아래 금지선은 단지 페인트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길을 지켜 주겠다는 사회의 서명 같은 것. 한 줄을 넘으면 한 사람이 편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여러 사람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결국 규칙은 우리 모두의 약함을 지키려고 세워둔 울타리 같은 것이 아닐까.
“알았으니까, 기분 풀고 출근해요. 다음부턴 여기에 차 대지 말고.”
그는 말을 덧붙일까 하다가 삼켰다. 나이가 들수록 단어는 줄고, 숨이 늘어난다. 박팀장은 경비실에서 종이컵 두 개와 커피믹스를 가져와 따뜻한 물을 부었다. 한 잔은 자신에게, 한 잔은 그에게.
“이거라도 마시고 가요. 속 다 안 깼을 텐데.”
차주는 난처하게 웃고는 두 손으로 컵을 받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란, 늦게 오는 만큼 무릎을 더 굽히게 한다. 박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아요. 됐어요. 어여 출근해요."
우린 모두 실수하면서 산다. 다만, 그 실수에 타인의 시간과 불편이 따른다.
에쿠스의 유광 검정이 주차장 형광등을 받아 미세하게 떨었다. 차는 사람의 욕망을 반짝이게도, 어두워 보이게도 한다.
물건이 사람을 높이는 게 아니라, 사람의 태도가 물건을 가치 있게 함을 알길 바란다.
에쿠스가 나간 자리가 편안해졌다. 소란 뒤에 찾아온 공간. 그 자리 앞에서 박팀장은 잠시 멈추어 섰다. 거울처럼 번들거리는 바닥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새벽을 지새운 눈가, 삐죽삐죽 솟은 흰머리 몇 가닥.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무 심하게 나무랐나.'
하루를 지탱하는 건 결국 사람의 관계다. 누군가의 무례를 버티어내는 노인의 등, 늦은 사과를 받아들이는 한 잔의 커피, 그리고 ‘금지’라는 단어를 지키라고 그어 놓은 노란 선.
그는 퇴근 준비를 하다 말고, 주차장으로 돌아가 노란 선 위에 떨어진 담배꽁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버려진 것 하나를 치우는 데 드는 시간은 3초. 그 3초가 주는 안전을 주민들은 모른다. 그래도 박팀장은 생각한다.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지만, 우리는 조금 씩 나아진다.'고.
“비상셔터 앞 주차 차량 이동 완료. 교육 필요. 커피 두 잔.” 업무일지 기타란에 한 줄 일기를 썼다.
퇴근길 도시는 미명빛으로 안온했다.
주차장만큼이나 빠듯한 삶에서 빠져나온 듯 마음이 뻐근했다. 박팀장은 생각한다. 타인에게 적어도 시간의 빚을 지지 말고 살자.' 고,
칼날 같은 말들이 오고갔지만, 밤새 지루한 시간을 보냈지만 꺼피 한 잔 오고갔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하루였다.
박팀장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가고 아침빛이 그 위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