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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Nov 19. 2023

책 쓰는 방송 기자

긴 글 쓸 줄 아는 방송 기자가 없더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언론계 선배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긴 글을 쓸 줄 아는 방송 기자가 없다. 말할 줄 아는 신문 기자도 마찬가지"


열 줄 짜리 리포트 원고도 쓰기 벅차하는 요즘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3천자 이상의 긴 글을 써본지가 언제인지. 일기가 아닌 주제와 맥락이 있는 타인에게 보여줄만한 글을 쓴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긴 글 쓰기를 부담스러워 했을까. 생각의 길이가 꼭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걸 느낀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긴 호흡으로 디테일과 핵심을 짚어나가는 차근차근한 글을 쓴지가 정말 오래됐다. 한 문장을 쓰고 바로 다음 문장에 다른 이야기로 도약하는 무책임한 글 적기만 이어가고 있는 2023년이다. 돌이켜 보니 올해 단 한편도 제대로 된 글을 적은 적이 없다. 마음에 드는 글은 더더욱 없다. 


그 선배가 해준 이야기의 결론은 두 가지 스킬을 적당히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는 거였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뼈가 굵었지만 지금 누구보다 방송계에서 믿고 찾는 평론가 패널이 된 그분처럼 되고 싶다. 신문의 언어, 방송의 언어 둘 다 이해하고 있는 마치 외국어를 하나 더 할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훨씬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한 만큼만 적을 수 있고, 적어낼 수 있는 만큼 전달력 있게 말을 내뱉을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느꼈던 목마름이 그것이었다. 나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짜임새를 갖추지 못한 결과가 땜질식 방송을 하고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열줄짜리 리포트의 삶으로 돌아왔다. 대신 직접 사람을 만나고 판단을 내리고 틀에 맞춰 뉴스 꼭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매일 하나의 리포트, 하나의 정보보고로 그 날의 족적을 남긴다. 내 얼굴이 나가지 않아도 가장 신속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뉴스를 담아내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 과정이 아직 익숙치 않아 고통스럽지만 언젠가 나의 프로그램, 나의 방송을 꾸려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밭갈기와 씨뿌리기 작업이다. 이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 간신히 때워나가는 발밑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방송을 잘 하기 위해서는 글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서로 별개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고, 실제로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이 있지만 깊이감을 더하기 위해서는 결국 둘 다 잘해야 한다. 고민을 해서 문장을 적어내려가기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주제를 끌고 나가는 힘, 그리고 그 주제를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입체적이고 논리적으로 풍성하게 살을 붙여가는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는 컨텐츠의 양과 질에서 나온다. 그게 자신이 없으면 말이 빙빙 돌고, 글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맹탕이 된다. 2023년 남은 한달의 시간과 총선이 있는 2024년 내년 1년이란 시간이 나에게는 컨텐츠의 양과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신문 기자가 책을 내는 경우는 꽤 된다. 하지만 방송 기자는 왠지 책과는 거리가 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가 더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올해 초에 내가 했던 도전도 마찬가지였지만 결국 열매를 맺지 못했다. 내가 추구하는 바와 밀접하게 관련성이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지금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만들어야 할 건, 한권의 책을 엮어낼 수 있을 정도의 '서사'이다. 물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젼 던 건 나 자신의 서사를 엮어내고 그걸 기록하는 행위였다. 어느 순간 그것을 게을리 하고 부담스러워하고 멀리하다가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일기로는 부족하다. 타인에게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 책임을 지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문자이어야 한다. 


2024년 연말에는 한 권의 책을 완성하겠다. 

이번 총선에 대한 기록, 정치부에 와서 첫 1년에 대한 기록을 모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권 엮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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