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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May 30. 2024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명상 살인 1> 카르스텐 두세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무슨 일까지 해봤나?      


이혼 위기에 처한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의 의뢰인은 특별하다.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주변의 경쟁 조직과 암투를 벌이는 다혈질의 인물이다. 변호사는 자신의 딸과 보내는 주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매번 약속을 어기면서 신뢰를 잃은 그는 이번 주말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잘못하면 다시는 딸의 얼굴을 만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걸려온 의뢰인의 전화 한통이 모든 계획을 깨뜨리려 하고 있다.      


조직의 보스인 의뢰인은 사고도 어마어마하게 쳤다. 고등학생들을 잔뜩 세운 버스가 정차한 휴게소 주차장에서 사람을 죽였다. 죽은 남자는 경쟁 조직의 일원이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변명했지만 말이다. 고등학생들은 차에 불이 붙고, 사람이 죽는 그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의뢰인은 당장 자신의 변호사를 불러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딸과 함께 호숫가의 별장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이 틀어지기 일보직전이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딸을 차에 태우고 주말의 회사로 향한다.     


아까 말했듯이 이 남자는 지금 이혼 위기에 처해 있다. 얼마 전 아내의 권유로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 상담부터 남자는 지각을 했다. 그 때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다. 명상 코치는 선문답을 하듯 남자에게 짧은 한 두 마디를 건넨다. 남자는 코칭 받은 대로 마음을 바꿔먹기 시작한다. 평소의 그라면 그냥 넘길 수 없었을 일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을 하게 된다.      


명상코치는 이야기한다. 타인을 바꿀 수는 없다. 그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남자는 주말의 계획을 망칠 의뢰인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저 그 상황을 마주하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남자는 의뢰인에게 당분간 은신해 있으라고 조언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것도 경쟁 조직에서 중요한 인물을 말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고 진심으로 설득한다. 그리고 그를 숨겨서 빼돌리겠다는 계획 아래 의뢰인을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에 숨긴다. 원래 계획한 대로 호숫가의 별장으로 차를 몰아간다. 그리고 나서 딸과 주말 내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한여름의 트렁크에 의뢰인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그 다음부터는 곡예를 하듯 우연과 기행이 이어진다. 의뢰인은 트렁크에서 숨이 끊어졌고, 그의 시신에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딸을 아내의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뒷수습에 들어간다. 의뢰인의 대리인 행세를 하기 위해 그의 인장인 반지가 필요하다. 굳어버린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내다가. 까마귀 한 마리가 손가락을 물고 가버렸다. 명상의 힘이 필요하다. 별일 없을 것이다. 새가 물어간 손가락을 누가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한다. 명상의 힘은 대단하다.      


그는 그저 마음의 평화를 원했을 뿐이다. 살인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명상 코치가 시킨 대로 마음의 평화를 쫓다보니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아예 없애버리게 됐다. 그리고 한 번 ‘살인 명상’을 시작하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어쩔 수 없다. 아내와의 관계를 지켜내면서, (이미 죽었지만) 의뢰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의심을 피해 그들의 갈등을 중재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매주 명상 코치의 수업에서 깨달음을 얻는 문장이 묘하게 남자의 상황에 맞아떨어진다. 이제는 코치가 없어도 스스로 명상하는 법을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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