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을 54일째 마시지 않고 있다. 술 마실 때는 휴일 전날이 다가오면 도파민이 상승하고, 출근 전날 오후부터 우울해지고, 기쁨과 즐거움을 행복이라 여기며 술과 사람이 있는 곳을 기웃거렸다. 사실, 서른 너머서는 술자리보다는 퇴근해서 술 종류별로 어울리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나눠주고, 남으면 혼술 하는 걸 좋아했다.
그간 얼마나 노력 없이 술이 주는 도파민에 절여져 있었는지, 무얼 하든 술이 없으면 흥미가 떨어진 상태가 되었다. 술꾼들은 만남에 술이 없으면 그 자리가 지루하고 힘겹다. 그래서 술이 아예 없는 자리라면 가려 하지 않거나 그 자리가 흥미롭기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게 된다. 물론 다른 도파민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그 장소에 있다면 모르겠지만.
원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금주를 하기로 했다. 불교 철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그와 비슷한 결인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다가 음주에 대한 가치관이 이전보다 확고해졌다.
행복은 꿈일 뿐이고 고통은 현실이다. 삶의 기쁨을 추구하지 말고 고통을 덜어내려는 방식으로 살아가라는 것. 20대엔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행복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을 하려고 하고, 꿈을 좇는다며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 내가 뭐라도 되는 양 여기며 자의식에 취해 있었다.
서른 중반의 지금은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끝이 없으며, 그런 걸 추구할수록 양극단의 불행과 지겨움을 느끼는 수준도 함께 커진다는 걸 알았다. 그러므로 지금 생각하는 행복은 고통을 덜어낼 때 오는 위안이며,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이미 갖고 있는 것이었다.
출근하든, 퇴근하든, 평일이든, 주말이든, 원하는 게 되든, 되지 않든, 그저 내가 있는 곳,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 이런 삶의 태도가 지루할 수 있지만 별일 없음이 진짜 행복이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 이런 연습을 술 없이 해내는 것. 일상과 자연에서 느끼는 도파민은 술이 주는 도파민보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상이 주는 평온함을 느끼기 어려운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