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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도 휴게소도 모르던 남자

철원 경계에서 포항까지

by 무아제로


철원 경계에서 포항까지 이틀간 왕복 880킬로를 내달렸다. 포항으로 내려갈 때는 단순한 충혈뿐이었고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450킬로를 남겨둔 지점에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미묘한 따가움이었는데, 곧 왼쪽 눈을 질끈 감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시야는 뿌옇게 흐려지고,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고문 같았다.


평소 휴게소를 안 들르는 편인데도 휴게소마다 들러 눈을 부여잡았고, 졸음쉼터에서도 시린 눈을 부여잡으며 나와 회사를 동시에 원망했다. 중간에 차를 세워 119에 요청할까 수십 번 고민했다. 하지만 함께 동행한 학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 차를 누가 다시 끌고 갈 것인지, 회사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나를 억눌렀다. 그렇게 내 배려는 미련으로 바뀌었고, 나는 위험한 도로 위를 계속 달렸다.


어디에서든 미련하다고 평가받는 나마저 참고 참다가 경북 상주 톨게이트를 나가 상주 시내의 안과에 겨우 도착했다. 힘겹게 도착한 그곳에서도 환자가 많고 수술 시간이 곧이라 마취약만 바를 수밖에 없었다. 마취안약을 바르자 거짓말처럼 눈이 활짝 떠졌다. 하지만 그 효과는 고작 30분. 다시 20분쯤 지나자 통증이 밀려왔다. 그나마 스타리아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덕분에 400킬로가 넘는 거리를 돌아올 수 있었다. 스스로는 의지의 한국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미련한 한국인이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집까지 30킬로를 또 내가 몰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응급실에 가려 했지만 기력이 없어 차를 몰 수도 없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차를 몰고 안과로 향했다. 진단은 명확했다. 단순한 결막염이 아니라 각막까지 깊게 손상되었다는 것이었다. 치료용 렌즈를 넣고서야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뜨지 못하니 생각조차 사치였다. 하기 싫던 공부조차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건강이란, 나를 세계와 이어주는 창이었다. 그 창이 닫히니 나의 의지도, 배려도, 책임감도 함께 닫혔다.


이제야 안다. 내가 무너지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또한 함께 위험해진다는 것을. 의지는 끝까지 버티는 힘이 아니라,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지혜라는 것을.


오늘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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