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들을 위한 척, 나를 위한 하루
이기적인 세상이다.
특히 나는 내 행동을 스스로 곱씹어볼 때마다, ‘사람은 결국 이기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시작은 늘 ‘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도와주는 것도,
챙겨주는 것도,
결국은 내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하는 일들.
나는 토요일까지 출근한다.
그래서 일요일은 거의 무너진다.
토요일 저녁이면 ‘드디어 주말이다’라는 마음이 온몸을 지배하고,
와인 한잔만 마셔도 9시쯤엔 눈이 저절로 감긴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6시.
아들은 언제나처럼 나를 깨운다.
“아빠, 오늘 뭐 할까?”
그 물음에는 한 주를 기다려온 기대가 가득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냉장고에 있는 바나나와 우유로
‘건강하지 않지만 단백한’ 아침을 대충 먹이고는
자전거와 킥보드를 끌고 동네 공원으로 나선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들과 자전거 경주를 하며
몸의 피로를 조금씩 풀어낸다.
그렇게 9시쯤 되면 다이소에 들러
천원짜리 장난감과 간식 하나를 사주며 ‘아빠의 약속’을 지킨다.
이제 아들의 차례다.
일요일은 아빠와 함께 도서관 가는 날.
책을 빌리고 읽는 시간은 이제 나보다 아들이 더 좋아한다.
아니, 사실은 나도 이 시간을 더 좋아하게 됐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아들은 요즘 자신의 관심사인 ‘거북이’를 찾는다.
도서검색대에 ‘거북’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아직 한글이 서툰 손으로 책을 고른다.
내가 옆에서 도와주며 몇 권을 고르고 나면
그다음은 내 시간이다.
나는 아이들 열람실 코너를 천천히 돌며
그동안 관심 없었던 분야의 책들을 찾아본다.
아이들용이지만, 어쩐지 어른보다 더 깊은 통찰이 숨어있을 때가 있다.
이번주는 ‘색깔의 역사’라는 책이 유난히 재미있었다.
당근이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다는 사실.
청사진이 ‘프러시아 블루’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프러시아’가 ‘프로이센’의 영어식 표현이라는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깨달음들.
아들은 내 옆에서 무슨 이야긴지도 모르고 그림책을 넘기지만
나는 혼자서 이 이야기들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진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과 조금 떨어진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
아이와 함께 있지만, 동시에 나를 위한 시간.
도서관을 나서면, 아들은 자연스럽게 매점으로 달려간다.
무엇을 고를지 이미 마음속에 정해둔 듯하다.
나는 매번 라면이 먹고 싶지만,
‘아내에게 혼날까 봐’ 꾹 참고 간식만 사준다.
그리고 늘 같은 대사를 한다.
“엄마한텐 비밀이야.”
아내는 그 시각쯤이면 점심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주말 아침마다 느긋하게 일어나
가족을 위해 건강한 식사를 만들어주는 아내.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오늘만큼은 외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활비가 빠듯하다는 현실적인 대화가 떠오르고,
결국 아내가 차려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걸 상상한다.
게다가 항상 건강하고 맛있다.
아들은 그사이 놀이터로 뛰쳐나가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한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핸드폰으로 뉴스를 훑는다.
그게 나의 일요일 루틴이다.
평화로운 하루가 흘러간다.
이기심으로 채워진 하루지만,
이 이기심이 내 가족을 돌아보게도 만든다.
아내의 잔소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
아들에게 ‘좋은 아빠’로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잠깐이라도 나를 쉬게 하고 싶은 마음.
결국 이 모든 게 ‘나를 위한’ 선택이지만,
이기심 덕분에 가족의 하루가 돌아가기도 한다.
이기심이 꼭 나쁜 걸까?
나를 위해 시작한 행동이 결국 누군가에게 작은 평화를 주고 있다면,
그건 조금은 따뜻한 이기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