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e] 안아주는 일의 무게

6살 아이를 키우며 느낀 부모의 불안, 그리고 진짜 교육의 의미

by 오륜록


퇴근 후 오랜만에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문 앞에서 나를 보자마자 달려오는 작은 몸.

“아빠, 안아줘!”
그 말이 어찌나 반가우면서도 무겁던지.


하지만 나는 결국 “이제 다 컸잖아, 걸어가자”라고 말했다.
아들은 입을 삐죽 내밀며 울상을 짓고, 나는 괜히 더 단호하게 굴었다.

요즘 너무 ‘스포일드’ 되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7살인데 아직도 밥을 떠줘야 먹고, 목욕할 때도 아빠랑 같이 놀아야만 씻는 아이.

그런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가서 아빠랑 목욕하자. 오늘은 바다 놀이하자.”
그 한마디에 다시 활짝 웃는 얼굴.


그 웃음 하나에 모든 걱정이 녹아내리다가도,
‘그래도 이렇게 계속 안아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요즘 들어 내가 아들의 교육에 이렇게 신경 쓰게 될 줄은 몰랐다.

7살, 늦은 나이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바쁘다.
다른 아이들이 벌써 한글을 읽고, 혼자 밥을 먹고, 스스로 씻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우리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면 그게 최고지”라고 늘 말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불안이 먼저 올라온다.


‘이 세상에서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하는데… 지금 너무 느긋하게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스친다.


요즘은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염되지는 않을까.’


아내와 나는 늘 “아들에게 진심을 전하자”고 이야기한다.
잘하라고 윽박지르기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자고.


하지만 막상 그 사랑이 ‘지금 가르쳐야 한다’는 불안과 섞일 때,
그건 교육이 아니라 통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채운 아이는 미래의 행복을 현재로 당겨쓰는 걸까?


아직 세상을 느끼며
그저 좋아하는 것만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게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나이가 맞는데.

남들보다 한글을 조금 늦게 배우면 어떤가.
결국 다 따라가게 되어 있고,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아이가 지금 웃고 있는가 아닌가 아닐까.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분명 교육에 열성적인 다른 부모님처럼 아이 앞에서

얼굴색 바꿔가며 가르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요즘 그 다짐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10년 뒤의 성격과 습관을 미리 예단하며
괜히 불안해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그냥 포근하게 안아주며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좋은 교육 아닐까.
밥을 떠 먹여주는 그 짧은 순간에도,
죄책감 대신 사랑만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 아들을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결국 나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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