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결과물은 결국 나에게서 온다.
그런데 정작 내 몸 하나, 내 마음 하나 마음껏 쓰지 못할 때가 있다.
기분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가늠이 안 되고,
갑자기 내려앉는 우울의 이유도,
불쑥 올라오는 분노의 근원도 알 수 없다.
그럴 때 나는 잠깐 하늘을 본다.
‘오늘 날씨 때문인가?’
그 정도의 가벼운 이유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런 날엔 나는 자연스럽게 고립을 선택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조금 멀리 두는 방식으로.
거리를 둔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풀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를 보호하고 주변도 보호하는 작은 선택이 된다.
고립 속에서 나는 오래전에 저장해두었던 인생 문장들을 꺼내 읽는다.
그때의 나를 위로했던 문장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다시 길을 보여줄까 싶어서.
코끼리 명상 앱을 켜고,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이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
조용히 들여다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뜬금없는 분노,
그리고 문득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태도까지.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이겨내기 위해
나는 아주 작은 애씀들을 반복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관리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걷고, 어떤 이는 글을 쓰고,
또 어떤 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다독인다.
나는 고립과 문장, 그리고 명상이라는 조용한 도구들을 쓴다.
이건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런 하루를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깨닫는다.
오늘의 나를 다루는 기술은
결국 내 삶을 지키는 기술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건 인정해야 한다.
세상과 정면으로 싸워 이길 것 같은 자신감 넘치는 내가 있는가 하면,
어쩐지 이유 없이 주저앉아버린 우울과 자기혐오의 내가 있다.
이 두 사람이 한 몸 안에 산다는 사실은
가끔은 이중인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하게 지루하진 않다.
내 삶엔 서로 다른 결들이 동시에 흐르고,
그 결이 부딪히며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다만, 이 감정의 파도들을
조금 더 현명하게 건너가는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답은 이미 내가 읽은 책들 속에,
혹은 아직 펼쳐보지 않은 문장들 속에
조용히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은 다시 그 힌트를 찾아보려 한다.
내 마음을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을,
내일의 나에게 건네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