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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Mar 30. 2024

죽음 후의 날들

16. 가키야 미우 : 시어머니 유품정리

책을 추천받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추천해 준 사람이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하다면 당연 기쁘고, 나와 독서 취향이 조금 다르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또 기쁘다. 얼핏 보기에 나와 안 맞을 것 같은 책이어도, 읽다가 보면 어느 순간엔가 '아, 이거 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을 나에게 추천했구나.' 깨닫는 순간이.


가키야 미우 <시어머니 유품정리>.

두 명의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책이다. 아마도 내게 고령의 시어머니가 있고, 책을 쓸 정도로 어머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있어 보여서 추천한 듯하다. 그런데 유품 정리라니, 그렇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일들 아닌가. 돌아가신 후에 내가 부모님의 남겨진 유품들을 정리할 일. 그것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먼 일이고 부질없는 일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좀, 읽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일본은 유품정리에 드는 서비스 비용이 엄청나다고 한다. 작은 집을 정리하는데 돈 천만 원은 훌쩍 넘는 수준. 작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월세 부담이 커서 하루빨리 유품을 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막상 집에 가서 보니 살림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며느리로서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큰 일이고, 유품 정리 서비스를 이용하자니 그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열면 열 수록 답이 없는 문. 보면 볼수록 이런 물건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싶은 각종 살림살이들. 작가는 초반에 이 말을 반복한다. "어머니, 적당히 좀 하세요." 50대 중반 며느리가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하는 혼잣말. 열고 정리하고 결정하고 버리고. 그런 일들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몸을 쓰는 일이고, 결정을 해야 한다. 게다가 며느리여서, 중요한 결정엔 부담이 따른다. 작가는 주 1회씩 회사를 쉬고 어머니의 집으로 향해 끝나지 않는 물품 정리에 돌입한다. 그러면서 반복해 말한다. "어머니, 적당히 좀 하세요." 100페이지 넘게 읽을 때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 돼서, 사실 별로 매력 없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야기는 소설이 되어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뜬금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어머니의 유품 중에는 살아있는(살찐) 토끼도 있었고, 어머니의 집에 남겨진 음식물과 무거운 돌을 치워주는 비밀 친구도 있었다.

작가는 제대로, 어머니의 삶 속에 실제 했던 이야기들을 만난다.


"삼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잖아.
그때부터 생각했는데 부모란 죽은 뒤에 비로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더라고." (170쪽)


작가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오지랖이 넓은 만큼이나) 다정했던 성품을 알게 되고, 마찬가지로 (어머니만큼이나) 다정한 이웃들의 도움을 받고, 어머니의 인생을 알게 된다. 초반부터 작가는 반복해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반대되는 성정, 습관을 비교한다. 갑자기 돌아가시기는 했으나, 손댈 수 없게 살림이 많은 시어머니의 집. 그리고 살아 계실 적에 하나씩 끝까지 본인 손으로 정리하신 친정어머니의 집. 그런데 정갈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친정어머니의 집에 있다가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죠?
어머니의 존재가 환상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실제 했나 싶을 정도로 위대한 사람 같은 느낌이에요.
(108쪽)


돌아가신 후의 날들.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을 본인이 관여하지 않았고, 현재 남아있는 유품이 없으므로 문득 헛헛함을 느낀 것이다. 유품이란 많아도, 적어도, 어쨌든 복잡한 이야기와 아쉬운 사연들을 남기나 보다.


"그런 건 어머니께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그렇게 후유미에게 되물으며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더없이 부러워졌다. (173쪽)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는 사람. 그렇다면 세상엔 부류의 사람이 있나 보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는 사람과 어머니가 '이미' 돌아가신 사람.


우리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직후, 사시던 집을 정리했다. 정리 서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나는 깔끔하게 치워진 어머니의 빈 집 사진을 받고 이용로만 입금했다. 그렇게 쉽게 모든 것이 그냥 끝나 버렸다. 물론 업체 방문 전에 시누이들이 가서 중요한 물품 몇 가지를 챙겼고, 쓸 만한 가전이나 가구는 가족 누군가에게 돌아갔다. 그러고도 남은 것들은 업체에서 폐기 처분했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 공간은 이제 없다. 그리고 어머니도 사실을 아신다. 이제 본인 집이 없다는 사실을. 올해 96세가 되신 외할아버지께서도 요양병원에 계신데, 엄마가 면회를 가면 이따금 말씀하신다고 한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반면에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안 하신 지 꽤 됐다. 물론, 통증 관리가 안 되고 종종 긴박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병원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황임을 본인이 아신다. 하지만 마음으로도 바라지 않는 것은, 본인의 집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어머니의 집을 너무 빨리 정리해 버린 것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평생을 비우고 버리고 안 사고 사신 내 시어머니 집에는, 살림이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정리하기 전과 정리한 후의 사진이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


가끔, 어머니의 집이 생각난다. 그리고 현실감 없는 생각이 이따금 씩 든다. 정말 지금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까? 20년 가까이 드나든 집인데. 거기, 내가 들르면 안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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