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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13. 2024

첫 책을 쓴 후의 날들

지난 2월 16일 첫책 <연애 緣愛 - 아흔 살 내 늙은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나서,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책을 낸 6개월 후, 중간 정산 메일을 받았다. 

출판사에서는 연 2회 판매 부수 확인 메일을 보내 주는데, 지난 7월 실제 판매 부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출판사에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판매 부수겠지만 내 생각에는 꽤 책이 많이 팔렸기 때문이다(정말, 내 기준이다). 가족과 지인들이 살 수 있는 책의 권 수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내 아빠가 엄마가 언니가 사심을 다 해 사더라도, 한 명이 이십 권 삼십 권씩 사지는 못한다. 결국은 일반 독자가 있어야 책은 팔린다. 물론 나는 책 출간과 동시에 선인세를 받았기 때문에, 빨간 폰트로 "그러므로 저자가 정산받아야 하는 금액은 0원"이라고 강조되어 쓰여 있었지만 그건 뭐 당연한 일이고.


북토크를 세 번이나 했다.

학교 앞에서 한 번, 내 아지트 동네 책방에서 한 번, 어머니의 도시 원주에서 한 번. 첫 북토크에는 정말 많은 지인들이 왔고 두 번째 북토크에는 꽤 많은 독자들이 왔고 세 번째 북토크에는 적지만 진짜 독자들이 왔다. 첫 번째 북토크에는 뜻밖의 게스트들이 나타나 주었고 두 번째 북토크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게스트들이 있었고 세 번째 북토크에는 책방지기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카스텔라가 있었다. 여러 번의 행운과 지인들의 애정에 내 노력이 한 스푼쯤 보태져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 번의 북토크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북토크는 요즘 동네마다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해 보려고 한다. 아주 적은 수의 동네 주민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북토크에 가는 재미 중의 하나는 책과 저자에 대한 TMI라던데. 어떤 TMI를 준비해 볼까.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을 내고 난 후 3개월 후부터 나는, 다음 책을 꿈꾸기 시작했다. 준비된 원고가 하나 있었고, 기획된 원고가 하나 있었다. 준비된 원고가 먼저 책이 될 줄 알았는데, 기획 중이던 원고가 먼저 책이 될 분위기다. 아직 계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계약을 하게 되면, 늘 그랬듯이, 브런치에 제일 먼저 "저 두 번째 책을 계약했어요."라고 글을 올릴 예정이다. 올해 쓰는 것에 대해 바랐던 많은 것이 이루어졌는데, 이게 마지막 바람이다. 두 번째 책을 계약했다고 브런치에 고백하는 것. 그런데 올해 정말 너무 많은 운을 써 버려서, 욕심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책을 한 권만 낸 사람은 정말 많다고 한다. 연장선 상에서 그러므로 책을 한 권만 낸 사람은 엄밀히 말하자면 저자이고, 책을 여러 권 내야 비로소 작가가 된다고. 그렇다면 나는 아직 저자이긴 하지만 작가는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 <초급 한국어>의 문지혁 작가는, 등단 전에 낸 소설로 먼저 인기를 얻고 나중에 문학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여러 번 문학상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는데, 등단하지 못하고 책을 쓰는 본인 같은 작가들을 '무면허 작가'라고 부른다고 책에 썼다. 물론 지금 문지혁 작가는 등단도 했고 독자들의 큰 사랑도 받고 있고 책도 여러 권 냈으니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는 그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책을 쓰려면 얼마의 노력이 필요한 걸까.

이번에 쓰는 글은 기획 출판의 성격이 짙어서 그런지, 퇴고를 여러 번 하고 있다. 구조를 전혀 다르게 써 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내용을 넣어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중이다. 첫 책이 이미 있는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 쓰는 글은 뭔가 없는 걸 만드는 기분이다.

어쨌든 확실히 이건 글을 쓰는 기분은 아니다. 책을 쓰는 기분이다. 전혀 다르다. 즐거움도 다르고 쓰는 자세도 다르다.


진짜 작가들은 얼마나 쓰는 일에 많은 고심을 하고 많은 밤을 지새우는 걸까. 김금희 작가는 팟캐스트에서 말했다. 권의 책이 완성될 때마다 위경련으로 번쯤 응급실에 간다고. 오늘 들은 팟캐스트에서 정지우 작가는 말했다. 본인은 책을 20권 썼는데(공저를 포함해서), 문학상에 50번쯤 도전했고 모두 실패했다고. 그리고 작가라면 적어도 매일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4-5년 전쯤부터 페이스북에 매일 장문의 인문학적 고찰을 쓰고 있다고. 문지혁 작가도 공모전에 원고를 부치받은 영수증을 50개까지는 모았는데 후부터는 모았다고 했다.


이런저런 바쁜 일로 오랜만에 일주일 넘게 브런치에 글을 못 썼더니, 세상에 우리 집 고딩이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글을 올리고 있다. 분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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