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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Nov 17. 2024

기억을 잃어가는 늙은 아버지

feat 심우도 만화 <우두커니>를 읽고

요즘 즐겨 보는 웹툰이 있는데, 홍연식 작가님의 <늙은 아버지의 나날>이다. 늙은 부모 이야기는 워낙 내 관심사이기도 하고, 진솔한 작가의 글과 그림이 매우 몰입감이 있어서, 무거운 주제이지만 의미 있게 술술 보고 있다. <늙은 아버지의 나날>은 그냥 봐도 논픽션이다. 매우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어떤 장면은 너무 현실감 있게 그려져서, 그림으로 보는 것인데도 처참함을 느낀다. 노년의 끝자락에서 병이 매우 중해진 아버지께서는, 스스로도 의료진도 자식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너져 간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므로 독자는 계속 읽게 되고, 나도 읽고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노년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이야기. 소설에서 에세이에서 웹툰에서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이야기에서, 노년과 죽음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책 친구에게서 심우도 작가님의 <우두커니>라는 만화를 추천받았다.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만화와 그림책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데,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은 반드시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읽는 것이 아니라 읽고 보는 것이어서 그런지, 만화와 그림책은 볼 때마다 약간 씩 감동이 다르다. 그리고 꼭 책을 갖고 싶어 진다. 마음에 드는 만화와 그림책은, 곧 머지않아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고, 다시 읽을 때의 감동과 재미는 매우 색다를 것이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사고 싶은 욕구가 옳음을 안다. 그러므로 망설이지 않고 산다.


<우두커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어릴 적 아빠에게서 아주 다정하고 깊은 사랑을 받은 딸은, 결혼해서도 남편과 함께 줄곧 아버지를 모신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많으신 아버지는, 마지막에 치매를 앓으신다. 그리고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가 된다. 말로 딸과 사위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데, 진심이 아님을 알면서도 딸은 흔들린다. 아버지에게 애정이 있기에, 병으로 인한 것임을 알면서도 매번 줄곧 흔들리는 딸을 보면서, 책 속 딸과 함께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림의 매력을 알아 버렸다. 어떤 이야기는, 글자로 풀어내는 것이 고단함을 가중시킨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대로,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대로, 서로 각자 고단하다. 한데 일부는 글로 풀고 일부는 그림으로 풀어내면, 서로 다른 감각을 써서인지 조금 빈 공간이 생긴다. 글자에서 조금, 그림에서 조금, 서로 덜어내고 서로 채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화를 쓰고 그리고 읽나 보다.


치매(癡呆)라는 병명에서 '치'가 한자 '어리석을 치'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불편해졌다. 하지만 나도 아직까지 치매라는 단어를 쓴다. '유모차'가 어느 순간 '유아차'가 된 것처럼, '가정부'가 서서히 '가사도우미'가 된 것처럼, 곧 '치매'가 아니라 '인지증' 또는 그에 맞는 단어로 바뀌기를 바라본다.


만화 <우두커니>에서 작가는 치매의 많은 증상 중 아버지의 성정이 달라지는 것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드라마에서 자주 다뤄지는 중증 치매 증상은 대소변 실수라거나, 길을 잃는다거나, 불을 잘못 관리해 화재가 난다거나 그런 것들이다. 약속을 잊어버리고 소중한 누군가를 기억 속에서 지우는 것은 비교적 경증에서 단골로 나오고. 한데 만화 <우두커니>에서는 아버지의 성정이 변하는 것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만화 속 아버지는, 딸과 사위가 속상해할 부분을 콕 집어 가혹하게 (저주로 들릴 만큼) 들쑤신다. 정도가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읽는 나도 기함할 정도의 그런 세고 강한 말들. 나는 그것이 대소변 실수라거나, 하루에 밥을 여섯 끼 먹는다거나, 집안 살림의 일부가 불에 타는 것보다도 더 큰 일임을 서서히 깨달았다. 작가가 하고팠던 말도 그게 아니었을까. 치매라는 병에 있어 가장 난감하고 어려운 지점.


작가의 이름 심우도는 필명인데, 글을 쓰는 아내와 그림을 그리는 남편의 부부 공동 필명이다. 출판사명도 "심우도서"인 것을 보면 둘 만의 유니버스를 만든 것 같다. 멋진 작가 부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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