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nes Dec 02. 2024

아흔 살 내 늙은 어머니 근황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1년 4개월이 지났다. 그새 사계절이 한 바퀴 돌고 다시 또 새로운 계절이 시작됐다.


금요일 오후, 나는 방학이었고 남편은 건강검진으로 연차를 쓴 날이어서 어머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평일 오후 면회는 처음이어서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면회를 갔는데, 평일은 방문객이 적어서 그런지 병실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모로 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나를 보고, "이게 누구여? 응? 누구? 누구라고?"를 반복하셨다. 남편과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마도 우리는 항상 토요일 오전에 면회를 가는데, 평일 낮 늦은 시간은 어머니가 예상하지 못한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우리를 언뜻 알아보지 못하셨다. 코앞에서 얼굴을 보여드리는데도 못 알아보시고 누구냐고 묻다니. 당황스럽기는 어머니도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들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누군지 알아채셨고 금요일인데 어떻게 왔냐며 이내 총기를 찾으셨다.


우리는 그냥 예상치 못한 시간에 급작스럽게 방문한 우리 탓이라고 웃어넘겼다. 매일 천 명에 가까운 외국인이 드나드는 건물에서 일하는 내가, 학교밖에서 외국인이 말 걸면 당황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그렇게 이해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면 그렇게나 만지고 쓰다듬는다. 머리칼을 만지고 또 만지고. 팔을 만지고 다리를 만지고 배도 만져본다. 뱃살이 빠졌나 쪘나 만져보고 내복 카라를 단정히 매만진다. 살이 찌면 찐 대로 걱정이고 빠지면 빠진 대로 걱정이다. 살이 찌면 숨 쉬는 게 힘들고 빠지면 어디가 마땅치 않은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언제부턴가 어머니 팔 피부가 너무 얼룩덜룩해지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팔 피부색이 예전 같지 못한 것이 이상해 옷을 들춰가며 쓰다듬었다. 어머니는 바로 눈치채시고 나에게 "주사를 많이 맞고 피를 많이 뽑아서 그래, 괜찮아." 하셨다. 옆 침대 할머니도 어머니 말을 거들면서 "주사를 많이 맞아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마치 나를 옆집 중학생 아이 다루듯 하신다. 늬엄마 말이 맞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어머니 말에는 힘을 실어 주고.


이번엔 물티슈를 찾아 어머니 턱을 닦았다. 점심 먹은 후 음식이 묻어 있는 것 같아서 닦아 드렸더니, "뭐가 묻었어?"라고 하시면서 닦은 물티슈 한 장을 뒀다 쓰게 버리지 말고 달라고 한다. 나는 선선히 드린다. 그걸 보고 옆 침대 할머니가 또 말씀하신다. "그럼, 뒀다가 또 써야지, 그럼." 어머니에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다. 귀 어두운 우리 어머니를 대신해, 나에게 이것저것 브리핑을 해 주신다. "밥은 한 그릇 다 잘 잡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웠다 일어나서 그래. 정신이 없어서 그래." "어제는 잠을 한숨도 못 자더니 오늘은 괜찮아.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 나직나직 필요한 말을 나에게 다 해 주신다.


다정한 친구가 생겼구나. 다행이다, 싶지만 이번엔 어머니의 레퍼토리를 반도 못 들었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신지 하고픈 말을 반도 못 하신다. 그리고 오늘은 엉엉 소리 내어 울지도 않으시고 그저 눈물이 차오르고 훔치고만 반복한다. 울 기력도 없으신가 보다.


며칠 전 폭설이 왔을 때 어머니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나는 분명 눈 많이 오니 주말에 오지 말라고. 생일상도 안 차리는데 생일날 올 것 없다고. 그런 말을 하려고 전화하신 거라 믿었다. 역시 우리 어머니 이번 주말에 우리가 갈 줄 어떻게 아셨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눈이 온 지도 모르고 계셨다. 안에 있으니 눈이 오는지 추운지 그런 거 모른다고. 하지만 오늘이 금요일인 건 아셨는데. 대낮에 모로 누워 텔레비전도 보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주무시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누워계셨던 모습이 며칠째 계속 생각이 난다.


어머니를 보러 다닌 중 제일, 보기 드물게 눈에 밟힌 면회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