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단 에세이
시작하기 전에. 첫 문장은 언제나 글쓰는 이를 괴롭게 하며 들뜨게 한다. 들뜬 지가 오래되었다. 나는 그 소설을 끝내야 한다. 첫 문장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작가에겐 어떠한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자율성은 제한된다. 그리고 멈춰선 안 된다. 인물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을 끝내는 법은 간단하나 어렵다.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으면 된다. 정말이지 쉬우나 너무나 어려운 것. 듣는다는 것. 듣는 귀를 훈련해둬야 한다.
동생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로 만든 강여사의 작품
천 사백원. 공무원들이 일하는 건물에 있는 카페라 그런 걸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싼 커피값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장을 입은 다양한 나이때의 사람들은 테이크아웃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아이스아메리카노가 제일 많았다) 분주히 카페를 들락날락 거렸다. 아까 왔던 사람이 잠시 후 다시 오는 경우도 있었고, 한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에 맞춰 일어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 기억하는 특징이란 정장을 입고 있었다는 것 정도다. 안타깝게도 다른 것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 관찰력이 좋지 않았던 이유일수도 있고, 그들이 워낙에 단체로서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눈에 띄는 개개인의 특징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엔 후자 같다. 하나같이 웃고는 있었으나 정감이 가지 않았다. 커피를 들고 일어서는 모습, 의자를 정리하는 모습, 빨대를 쪽 빨아들이는 모습, 모든 게 사무적이었다. 사진 속의 흐릿한 뒷배경처럼 잡히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나마 종업원들이 더 현실감이 있었다. 사실 그 중에서도 한 명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짧은 단발의 여자였는데, 눈꼬리가 살짝 쳐져 있었으나 억지로 올려 그린 아이라인 때문에 고집이 세 보였다. 유니폼과 베레모가 참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게 다다. 카페는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그 이상은 더 쓸 수가 없다.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카페 또한 특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요즘 카페의 모습이었다. 의자가 쿠션감이 좋았고, 낮아서 편했다. 그 정도다. 사실, 이 앞부분은 이토록 길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렇게 길게 쓴 것에 대해선 양해를 구하고 싶다. 소설을 몇 번 썼었고, 지금도 쓰고 싶은 게 많은 나로서는 관찰을 열심히 해야 하며, 관찰한 것들을 이렇게 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은 글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우리집 강여사에 대해서 쓸 요량이므로 강여사와 그곳까지 간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 전에, 유치원교사였던 엄마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써야한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기에 지친 엄마는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몇 달 쉬면서 회복기간을 갖는다는 게 엄마의 말이다. 나는 온 몸으로 환영했다.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엄마다. 몸에 무리가 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엄마는 몇 달의 휴가기간을 눈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했다. 산타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 날은 은행업무를 보고 지인과 만나기로 했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엄마와 나는 조금 놀랐던 것 같다.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 세련됐고, 그 건물 안에 카페가 있다는 말에 정말 들어가도 되는 걸까 잠시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지인은 짧게 커트를 친 머리에 눈이 둥그런 분이다. 두 분이 처음 만났을 때에는 지인께선 카페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엄마는 곧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지인분은 카페를 하던 때에도 열심히 다단계를 하시더니 지금은 아예 카페를 접고 다단계에 뛰어 들었다. 엄마와 나는 카페를 계속 하시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남의 일을 가지고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건 아니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분과 함께 있으면 주위가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좋게 말해 소녀다운 분이었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약간 철이 없는 분이었다. 그 날도, 이 카페에서 판매하는 텀블러가 얼마나 예쁜지, 여기 샌드위치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얘기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옆에서 창밖 바닥에 새겨진 은행잎무늬를 쳐다봤다. 파이는 너무 달지 않아 맛이 있었고, 에스프레소는 적당히 썼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 이상한 분위기, 사무적인 활력이 있으면서도 온기 하나 없는 분위기가 낯설었던 기억이 전부다. 하지만 엄마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유치원의 오밀조밀한 분위기, 정신없는 분위기에 익숙했던 엄마에게 그곳은 탁 트인 장소, 현대적인 세련됨이 간직된 장소였던 모양이다. 엄마는 들떠서 지인분과 지금 얼마나 즐거운지, 이 카페가 얼마나 좋은지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옆에 앉아서 내가 해야 할 것들, 책을 읽어야 하고, 계속 건드리지 않고 있는 소설을 얼른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너머로 총총 걸어갔다. 유리문 뒤엔 여러 부서들이 질서 있게 자리하고 있었고, 엄마는 특유의 신중한 발걸음으로 나풀나풀 사라졌다. 우리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몸이 가벼워 가뿐히 걷지만, 무게감이 있는 여자. 지인분과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카페알바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카페 알바를 하며 힘든 점, 예를 들면 스무디를 시키는 손님이 오면 참 슬퍼진다는 것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블렌더에 담긴 스무디는 흘러내리지 않아 숟가락으로 긁어내려야 한다. 블렌더는 무겁고, 컵 밖으로 스무디를 흘릴까 신경도 써야 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엄마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게 돌아왔다. 심플하게 흘러내리는 코트자락을 정리하며 들뜬 얼굴로 말했다. "여긴 화장실 표지가 분홍색이네요! 다른 곳은 그렇지 않죠? 어머, 너무 신기하네요! 분홍색이라니!" (엄마는 정말 이렇게 말한다. 고전문학의 귀족 자제들이 말하는 것 같은 어투로, 낭랑하나 진중함이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인분과 나는 멍하니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분홍색이라서 신기하다니. 우리는 웃으며 그게 뭐 신기한 일이냐 물었지만 엄마는 정말 천진난만한 얼굴로 "신기하지 않아요? 난 너무 신기한데!"하고 연신 웃어댔다. 눈이 반짝 빛났고, 갸름한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나도 뒤이어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 앞엔 엄마가 말한 분홍색 표지가 분명 있었다. 남자는 검은색, 여자는 분홍색.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엔 그냥 그랬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이 된 엄마에겐 어떤 것이든 신기하고 생기롭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오겠구나. 그렇다면, 이젠 정말 자유로운 이방인인 거구나. 그 이방인 생활이 영원히 이어지진 않겠지만, 곧 눈앞에 신기루가 펼쳐진 꿈이 깨어지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가 평소 우아한 여자라는 생각만 했다. 요즘에서야 근육을 만들겠다고 다섯 번의 스쿼트를 하고선 못하겠어- 하며 단호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점심 먹고 커피마실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며, 화장실에 붙은 분홍색 표시 하나만을 보고도 사춘기 소녀처럼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며 한 여자로서 귀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엄마는 내일 행운목을 사다놓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좀 걱정이다. 강여사는 식물을 키우는 데에는 재능이 없다. 여하튼 살 거라고 했다. 행운목에 꽃이 피면 집안에 행운이 찾아온다면서. 그래. 좋겠다. 강여사가 꽃피운 행운이 찾아오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난, 찾아오리라 짐작하고 있다. 참고로 내 짐작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