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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단 May 16. 2016

길지만 짧은 이야기들

내 이름은 중성적인 이름인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파마한 머리를 말리며 내 이름은 중성적인가 잠시 생각했다. 여고에는 당연히 여자 같은 이름이 많았다. 일학년이 끝나갈 때 우리학교 이과생은 과학탐구 중 화학이랑 생물은 반드시 선택해야 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물리와 지구과학 중 하나였고,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물리, 지구과학, 화학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생물은 너무 싫다. 물리랑 지구과학이 제일 재미있었고, 지구과학선생님과 더 친해서 지학을 택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하고 있지만. 여하튼 이과생 약 150명 중에서 지학을 택한 학생은 많지 않았다. 스무 명이 조금 넘었다. 그렇게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지학반이 만들어졌고 그대로 2학년 3학년을 같이 보냈다. 2학년 때 담임이었던 젊은 여자 수학선생님은 우리와 잘 맞았고, 우리를 정말 예뻐해 주셨다. 해맑으면서도 교사로서의 고집이 있는 분이었다. 많이 돌아왔는데, 여하튼 선생님은 수업 중 딴소리를 하다가 우리 반에서 중성적인 이름이 누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반에서 가장 남자다운 목소리를 가진 아이가, 외모는 제법 꾸미고 다니는 아이였는데 쌍커풀 없이 매력적이었고 기수단 단장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내 이름을 말했다. 선생님은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고 누군가는 정말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엄마는 내 이름이 중성적인 느낌이 들게 하려고 애를 먹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엄마는 성공한 것이다. 여태껏 내 주위에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한 명 뿐이었는데, 의외로 내 이름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한 명은 남자다. 내가 알고 있는 웹툰 중 하나의 주인공 이름도 내 이름이랑 같은데 그 주인공도 남자다. 엄마는 정말 작명으로 성공했다.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드는데, 첫 번째로 뻔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고, 두 번째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었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는 반응이 재밌어서 좋다. 예전엔 내 이름 뜻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름 뜻도 마음에 든다. 글의 고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드라이기 때문에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여성스러운 이름은 좋지 않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에센스를 눌러 짜면서 여자가 여성스러운 이름을 갖는 건 나쁘지는 않아도 뭔가 재미없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남자 이름이 너무 남자다우면 재미없는 것처럼. 그렇다고 너무 재미없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너무 재미없는 건 아니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특이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애들은 이름만큼이나 독특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주로 평범하고 그저 좀 남자다운 면이 있고 생긴 거랑 다르게 의외로 시크하고 털털하고 그런 역할을 했다. 시끄러운 편은 아니었다. 대학에 와서는 시끄러운 편에 들으려 노력했다. 그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애들은, 그 특이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되는대로 살고 있을지, 아니면 연기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특이한 이름을 가졌는데 실은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면 얼마나 골치 아플까 하는 생각도 했다. 머리를 말리고 난 다음엔 되는대로 산다는 게 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겐 어떤 역할을 보여줘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걸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그냥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엄마가 가게를 차리게 되었는데 가게정리를 하다 보니 야옹이가 아무렇지 않게 가게 뒷문으로 들어왔다. 길야옹이 치고는 깨끗하고 예쁘게 생긴 얼룩이었는데, 맑은 눈으로 낯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전 주인이 아니라서, 사람이 바뀌어서 이상스레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 밥을 줘도 조금 먹다 말고는 도망가버렸다. 몇일 후에 그 야옹이가 또 나타났는데, 여전히 사람이 바뀌어 있으니까 낯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고, 내가 손을 뻗어도 다가오질 않았다. 야옹이가 원래 그렇지 뭐 싶다가도 의외로 도망가지 않고 나를 탐색하길래 천천히 야옹이에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 다가간 뒤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한 발자국 다가가고 잠시 멈췄다. 제법 가까워진 상태에서 이제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는데, 바로 도망가 버렸다. 야옹이가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가게 앞에는 비싼 가구점 하나가 있는데 거기 남자 주인은 유유자적 하면서 여기저기 마실을 다닌다. 나를 피해 다니던 야옹이는 그 남자 주인이 주는 밥을 잘 먹었고, 그가 건네는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섭섭하긴 했으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아직 거리가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남자 주인과도 아마 어떤 거리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거리를 좁히고 싶어 초조해했고, 야옹이는 나의 급한 마음에 겁을 먹고 도망가 버렸다. 거리는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혹은 너무 급했다던지. 야옹이는 여전히 낯을 가리지만 나에게 허락하는 거리를 조금 좁혀줬다. 고맙군. 내가 너를 만지게 되는 날이 와도 우리는 어떤 거리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거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나도 나를 모르고 너도 너를 모를 텐데 어떻게 거리가 없을 수 있겠어. 야옹이도 나도 그 거리 뒤에서야 평온을 찾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을 수 없는 타인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 보다는 말이다.


   엄마가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의 자식에 대해 말했다. 그 집은 자녀가 셋이랬나 여하튼 그랬는데, 첫째는 초등학교 교사라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도 교사가 될테니 걱정이 없는데 네 동생이 걱정이라며 꼭 가수를 해야 하는지 그런 말을 했다. 내 동생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여하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좀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교사가 되고 나면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보장되는 직업인 공무원이 되고 나면 보장되니까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 5년 차가 되지 않는 교사들 중 다수는 이 직업을 괜히 선택했다며 후회한다는데, 그게 현실이라는데, 애들은 말도 안 듣고, 교사의 인권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인데 정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보란 듯이 자살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는 생각이 슬몃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용기가 없는 사람이니까.

   지나다니면서 "무단횡단!! 자살의 지름길!!" 인가 따위의 현수막을 보았다. 현수막 위에는 경찰서 마크가 찍혀 있다. 그 현수막을 보며 비웃었다. 자살이 뭐가 어때서. 물론 무단횡단 하다가 차에 치이면 차를 몰고 가던 사람이 좀 불쌍하니까 그것 말고 자기 혼자 목숨을 끊는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계속 산다 혹은 그냥 죽는다 라는 선택지는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그냥 죽는 게 나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인데 마치 그것은 살아있는 이상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불합리하다. 무슨 병 같다. 삶이 축복인가? 축복이 아닌 사람도 너무나 많은데? 아니 대다수의 사람에겐 절대로 축복일 수 없을 텐데? 참고로 난 경찰이 매우 싫다.

   여하튼 교사가 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무원이 되는 게 가장 큰 축복인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본인들이 그 삶을 겪어보지 않아서? 무조건적으로 너는 고민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너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하고 말하는 인간들은 폭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자세히 알 순 없으며, 자신의 삶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주제에 타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건 독선이고 무례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대화에 어떤 벽이 있고, 사실 모든 이들과의 대화에는 벽이 존재하는 법인데,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라도 교사가 되면 뭐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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