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황작물 앞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고마워'
언니와 감자와 오렌지, 자두와 컵라면을 나눠먹으며 친구가 내 삶의 폭을 넓혀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이미 컬럼을 보러 갔던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언니의 첫 페스티벌이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며, 간호학과에서 단조롭게 살 수도 있었던 자기에게는 동생인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불현듯 간소한 점심 상 앞에서 언니는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깊이를 더해준 사람. 지평을 열어준 사건들. 내 안에 나를 깨는 경험이.
고등학교 때 갔던 영어캠프가 그랬고, 십 년 전 떠났던 호주살이가 그랬다. 대학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그랬고, 대외활동이 그랬다. 첫 홍콩 여행이 그랬고, LA가 그랬다. 그것들은 대게 <무한한 가능성>, <열정>, <나다움>을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생기를 불어넣었고, 열정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경험한 적 없는 힘이었다. 메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그건 신비로운 경험이었고, 그것들은 나를 만들었다. 전율이 흐른다는 것을 나는 그것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밖에선 매미가 울었다.
장마가 끝나지 않았는데. 눅눅한 나무 위에서 매미들은 짝을 찾기 위해 구애의 노래를 기어코 시작했다. 그러니 부인하고 싶어도 여름은 왔고 한해의 2/3 가 어느덧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대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10년 전 이맘때 나는 호주에 있었다. 2011년 8월. 나는 날마다 지도를 펴고 셰어하우스 거실의 식탁에서 남미 여행을 계획했다. 내 생에서 만난 가장 직설적인 일본 여자애와, 마흔다섯에 영어를 배우러 온 터키 언니, 모든 게 made in china라 고향에 사갈 기념품이 없다던 중국 남자애와 여호와의 증인을 열심히 다니던 한국 남자까지. 나는 그들에게 뭐였을까.
나는 지도 위에서 여행을 하는 자였다.
산티아고로 시작해 볼리비아 우유니, 페루의 마추픽추를 지나, 보고타에서 아웃을 할까? 우수아이아는 꼭 가보고 싶으니 그 반대로 할까를 날마다 고민하며. 도시들을 연필로 이어보던 스물 하나. 그때 그렸던 여행 동선이, 찢어진 지도를 넣고 다니던 구여권, 분할해서 바이블처럼 들고 다니던 론리플래닛, 차곡차곡 모은 돈의 액수마저 나는 생생하게 기억남아도, 나의 기억과 무관하게 세상은 10년이 지나버렸다.
생은 무엇일까.
다시금 확장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너비로, 깊이로. 그런 컬러풀하고 역동적인 삶을 사랑한다. 평화와 안정된 삶만큼이나. 그것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평화롭고 고즈넉한 산속에 흐르는 계곡은 밤에도 쉬는 법이 없으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나는 다시 글을 쓰러 왔다. 내 안의 작은 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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