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낭독하는 독서

by 김현이

3. 낭독하는 독서로 다가가기


2019. 8. 19.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아이들은 내 인생 최고의 등불이다.


방학이 다 끝나가고 있는데도 외갓집을 아직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 나에게 왠지 밀린 일기를 오늘 안에 다 써내야 한다는 부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마침 작은 아이의 난독증 치료 교실이 휴가 주간 이어서 집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시골은 하늘과 땅, 물 그리고 사람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작은 아이들조차도 어른의 보호를 떠나 집 밖으로 그렇게 멀리 가지만 않는다면 혼자서 떠나 볼 수 있다. 특히 그 공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다녔던 길이고 장소라면 더욱더 그 접근은 쉬워진다.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은 그렇게 아이들에게도 품을 내어 주며 마음을 열고 끌어안아 준다. 아이들은 주말 내내 집 앞 냇가에서 고둥과 우렁이를 잡았다가 살려주기를 반복했고 날갯짓이 빨라 잔뜩 약만 올리면서 손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물잠자리 떼를 기다란 막대기로 만든 매미채로 잡아채거나 아예 물가에 앉아 있지도 못하도록 매미채를 휘둘렀다. 잘 잡히지 않는 야속한 물잠자리에게 표출할 수 있는 아이들만의 감정 표현이었다. 나는 냇가 옆 이제는 제법 우람하게 성장한 단풍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동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늦여름의 바람을 맞으면서 흘러가는 구름, 능선에 걸린 하늘, 우리 집 지붕 처마 끝에 간신히 앉은 작은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노라니 지난날 꼬마였을 적과 비교해 보아도 거의 변한 것이 없는 주변의 경치들을 바라보면서 나만의 그 시절 속으로 자꾸만 빨려들었고 여전히 귓가에는 바로 옆 냇가에서 잠자리를 쫓는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흐릿한 꿈결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정말로 나는 잠이 들었었다. 냇가 옆 단풍나무 아래 놓은 그늘 진 평상에 누운 채로 이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구경하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제제는 마음속에 함께 지내던 작은 새를 밍기뉴에게 등을 기대고 앉아 흘러가는 구름에 태워 날려 보내준다. 그리고 그 작은 새가 살던 공간에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와 다시 살게 될 그것을 짐작하고 기뻐하게 된다.


‘나도 이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되었어.’


아이들에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낭독해 주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나 자신이 얼마나 제제에 감정 이입되어 슬픔과 놀라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는지는 마땅히 표현할 재간이 없을 정도로 마음속에 벅찬 감정이 끓어오르는 기분이 될 때가 많았다. 다섯 살 제제는 철이 빨리 든 꼬마였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철이 든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물었었는데 큰아이의 대답이 매우 그럴듯하고 철학적이라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철이 든다는 건,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상황에서 지내는지 알 수 있는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그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해 주고 그 사람을 위해서 무슨 일일지라도 대신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 그게 철이 든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나 자신도 마흔이 넘도록 아이를 셋을 낳고 또 보통 사람들보다는 조금은 더 힘든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로 진지하게 철이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었다. 그 순간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여자는 아기를 낳아 보아야 철이 든다는 보통 사람들의 말이 갑자기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철이 든 제제는 슬픔으로 가득 찬 성탄절을 보내고 또또까 형의 구두통을 들고 가 구두를 닦아 겨우겨우 몇 푼의 돈을 벌어 그 슬픔의 성탄절은 전부 다 실직한 아버지 탓이라고 감정대로 말해 버린 것을 아빠가 우연히 듣게 된 데서 오는 더 커다란 슬픔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담배 한 갑을 성탄절 선물로 사다 드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제가 보았던 아빠의 커다란 슬픈 눈이 평생 자기를 따라다닐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무거운 구두통을 들고 다니지만, 마음만큼은 뜻 모를 감정으로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제제가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나까지도 눈물이 나왔다. 철이 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내 눈물 탓이었다. 제제는 철이 들기엔 너무 어린 꼬마,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는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너무나 일찍, 제제처럼, 그렇게 빨리 철이 드는 걸 원하지 않는다. 바보 같은 생각일 수 있지만 조금 더 개구쟁이로 까불이 꼬마로 남아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요전 날 어느 새벽, 아무 이유도 없는 막내의 투정이 불러온 소란이 온 식구들의 잠을 깨우고 달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날, 나는 진땀을 빼고 결국엔 좀 화가 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미 확 깨어버린 잠을 원망하기보다는 차라리 잠들기 전 하던 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기를 좀 지났을까 보통의 적막이 다시 찾아왔고 나는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잠든 줄 알았던 막내가 살며시 등 뒤로 다가와 내 목을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고 다시 제 잠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던가. 갑자기 나의 모든 행동이 부끄러웠다.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미안함을 느꼈다. 그날 새벽 나는 그 사실이 정말로 마음 아팠었다. 구두를 닦아서 담배를 사 온 제제를 보는 제제 아빠의 마음이 왠지 그 새벽 내 마음과 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들아. 너무 빨리 철이 들지는 말아라.’


읽기 위해서는 모종의 침묵이 필요하다. 난독증이 있는 작은 아이에게는 더 길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까 읽는 행동은 관조와 같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분산시키는 환경에서 단 하나의 문제로 집중할 수 있는 일종의 수행이자 자신과의 대화이며 무언의 저항이다. 이것은 엄청난 고요함 속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소용돌이 이거나 바람의 흐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침묵의 폭풍이 난독증을 앓는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오래 유지된다는 것이다. 난 로널드 D. 데이비스가 받았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문득 생각났다.


“난독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천재가 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 않아요?”


그때, 로널드가 했던 대답이란 것은,


“질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군요. ‘난독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난독증 덕분에’ 그들이 천재가 되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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