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난독증 - 학습발달장애 극복을 위한 첫 걸음
2019년 8월 10일, 우정과 신뢰
최근 일상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낭독하는 독서다. 작은 아이로 인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로 인해 큰아이와 막내를 조금은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가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진단받던 자리에서 내가 들었던 첫 번째 질문,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니 기분이 어떤가, 그날을 떠올려 보자면 내 마음은 갑자기 구멍 난 물풍선처럼 되어버린다. 그동안 조금씩 어딘가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만 있었지 그 풍선만이 가진 고유한 색과 모양이 무척이나 예뻐 차마 구멍을 찾아내 둔한 테이프로 고친 데서 오는 모양의 망가짐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더 물풍선이 쪼그라드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고 마침내 구멍의 위치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일종의 어떤 다짐과도 같은 결심이었다.
’그래, 버리지 않을 거라면 고쳐야지. 구멍이 그다지 크지 않으니 예쁘게 고친다면 어쩌면 그전보다 훨씬 더 좋은 모양이 될 수도 있어.‘
몇 달 전, 작은 아이와 잘 어울리는 놀이터 친구인 어떤 아이의 이야기를 우연한 기회에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인물도 훌륭하고 뭔가 딱딱 들어맞는 듯한 작은 아이의 행동과 교양있는 말솜씨로 나는 그 아이 엄마를 마음속으로나마 칭찬한 적이 있었다. 작은 아이와 몇 개월 차이가 나는 조금 어린 동생이었는데 다섯 살 무렵부터 한글을 떼고 영어까지 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기 교육에 대한 엄마의 열정과 맞춰 잘 따라온 아이에게 한 번 더 감탄했었고 자연스레 세 아이에게로 시선이 옮겨 간 것이다. 엄마로서 자식을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것처럼 죄책감이 들게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애보다 나이도 한 살 많은 작은 아이의 독서 실력에 스스로 움츠러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가 ADHD 진단으로 치료를 받는 아이라는 것이었다. 막연하게는 알고 있는 증상들, 정작 자주 볼 기회가 없었고 가끔 놀이터에서 마주한 것이 전부였으므로 전혀 그 아이가 그럴 것이라고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저 내 눈에는 똑똑하고 잘생긴 아이였다. 갑자기 그 아이의 이야기를 언급한 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라는 길고 긴 ADHD와 ’난독증‘, dyslexia 사이의 중함을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아이에게 미칠 치명적인 영향, 문제점들에 한순간 공포와도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행동하기 시작한 그 아이의 엄마가 대단해 보였다.
주변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정말로 잘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사람 중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개인과 더 나가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인생 경로까지 수정해야 하는 전환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진단전문가는 나에게 ’아이가 난독증이라서 엄마는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며 미소짓던 그 표정이 떠올랐다.
헤드셋을 하고 그 장치에 다시 덧댄 뭔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밴드로 이마를 고정한 채 치료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출입문에 달린 조그만 유리창으로 보였다 사라졌다 하기를 반복할 때마다 나는 아이의 어색한 모습에 또한 한편으로는 해괴한 장치 탓으로 치료의 효과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를 이따금 씩 의심하고 있었다. 믿음을 방해하는 잡념들을 없애기 위해 그곳에서도 최대한 구석진 소파에 최소한의 자리만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책을 읽었다. 남은 두 아이가 있어야 할 공간이 더 필요해서도 했지만, 그곳에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작은 아이가 난독증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해맑게 웃으며 동생에게 수학 덧셈 뺄셈 문제를 내고 형에게 만화 속 인기 캐릭터를 그려주고 엄마에게는 수수께끼를 내서는 뭐라고 대답하는지 가만히 지켜볼 줄 아는 아이의 맑은 눈을 알고 있으므로 아직도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마치 꿈속의 일 같게만 느껴졌다.
’내 아이가 잘못하면 문맹인이 될 수 있다니. 저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 완벽해 보이는 데도.‘
30명 가까이 교실을 꽉 채운 아이들 사이에서도 수학 시간만큼은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고 달리기는 작은 아이를 따라잡을 만한 실력을 갖춘 아이가 없어서 운동회 계주에서 어김없이 선수로 출전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또래들과 하는 보드게임, 심지어 형과 같이 즐기는 게임에서도 거의 언제나 이길 정도로 집중력과 승리욕이 있었고 운동능력은 단연 최고였다. 줄넘기 경연에서 초등부 저학년 부문은 언제나 1등을 했었고 며칠 전에 있던 줄넘기 대회에서도 1등으로 입상해 자기 키 절반이나 되는 커다란 트로피 컵을 받아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이가 모아 온 트로피들이 우리 집에는 어느덧 여섯 개나 된다는 것보다 그 아이가 이제 겨우 2학년 여름방학을 지나가고 있는 아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요즘 툭하면 눈물이 난다. 한동안 운 적이 별로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작은 아이가 밥맛이 좋다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에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또 세 아이 중 가장 꼼꼼하고 섬세해서 엄마의 마음과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아차렸고 그런 엄마의 기분에 따라 ’사랑해요, 힘내세요, 힘들면 조금씩 쉬면서 하세요‘하고 말해줘서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줄 줄도 잘 아는 아이였다. 그런 내 작은 아이가 잘못하면 평생 글자를 몰라 고생하면서 살아야 한다니 이것은 내가 겪은 이혼의 아픔보다도 사실은 더 큰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다면 아이들 아빠의 문제점은, 비록 나조차도 완벽한 아내는 아니었지만, 한두 가지의 사소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었고, 그건 마치 ’나란 사람은 당연히 그런 사람, 마땅히 그래야 하는 사람, 하지만 전혀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노예와도 비슷한 존재‘ 이런 식의 느낌으로 수년간 괴롭히던 감정이 내 결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솔직히 지난 1년 동안 세 아이와 이루고 있는 내 가정을 지켜가면서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느라 설마 이보다 더 큰 역경이 또다시 찾아올까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은 길고 전의 일들보다 더 힘들고 어쩌면 평생토록 끝낼 수 없는 나와 아이와 그리고 세상과의 전쟁과도 같은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대기실에서는 여러 부모를 만난다. 물론 지금은 시작이라 이야기를 나눌만한 상대를 사귀지는 못했다. 그곳에 있는 부모들의 표정을 본 감정을 내 식대로 표현해 보자면 그렇다.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프랑스 자수를 놓은 나와 같은 초보 엄마, 이미 오래전의 일인 듯 그래서 이 상황에 많이 적응한 듯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가 죽은 텔레비전 화면만 물끄러미 응시하는 엄마,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느라 다른 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엄마, 그리고 물론 아빠도 있다. 사실은 이 아빠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대기실 사람들을 말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아빠를 보기 시작한 건 상담부터 검사, 그리고 진단, 치료 수업의 시작까지 거의 네다섯 번 정도인 것 같다. 경찰인 직업의 특성에서 오는 감각이랄까. 나는 한 번 본 사람의 인상이나 옷차림, 신발, 그리고 그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태도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 아빠는 나와 같이 언제나 손에 읽을거리가 들려 있었다. 첫날 보았던 책은 [대인관계론] 데일 카네기였다. 나도 읽었던 책이지만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책이었기 때문에 관심은 가지 않았었다. 두 번째 세 번째까지만 해도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대기실에서 두 시간여 동안 책을 읽다가 이따금 씩 중간에 차를 타 마시기도 했다. 그건 비치된 일회용 커피믹스였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손에는 오늘 자 일간지가 들려 있었다. 신문을 두루두루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표준 신문 크기를 타블로이드 절반 크기에서 또 절반 크기로 접어 노트만 하게 보고 있던 것이다.
’그래, 뭔가 타인에게 간섭받고 싶지 않거나 그 반대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인가보다. 하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읽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해.‘
나는 왠지 그 아빠가 대단한 독서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헛된 상상이 시작되자마자 아빠와 매우 닮은 남자애가 치료 교실 문을 열고 나왔고 아빠는 읽던 신문을 내려놓고 아이를 반겼다. 아이는 작은 아이보다 키는 컸으나 몸집은 비슷하게 빼빼 말라 연약해 보였다. 나는 둘 사이 대화에서 아이가 정상적으로 말할 줄 모른다는 걸 단번에 알았다. 갓난아기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면서 이제 막, 말을 배운 아이처럼 발음이 불명하고 소리가 어색했다. 아빠가 무거운 문을 당기고 그 틈으로 아이가 먼저 빠져나갔고 아빠마저 문의 쾅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닫힐 때까지 문고리를 잡은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건 관찰이 아니라 작은 아이가 난독증 진단을 받고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고민에 휩싸였는지 또 그런 상태에서 있는지 자꾸만 그 아빠의 입장과 겹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의 난독증이 의심되던 때부터 이미 얼마나 많은 연관 검색어를 썼는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마치 목이 말라 자연스레 물을 찾게 되는 행동과 같이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보고, 모국어에 대한 유창성, 즉 말하고 듣는 행동은 신경학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던 어느 인지과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말하고 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읽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연구 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건 한 번 아파본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해 거의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체득하는 것과 비슷한 경로의 지식이었다. 그런데 외관상 거의 문제가 없는 저 아이는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아빠는 어쩌면 그렇게도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그 아빠를 유심히 보게 된 것은 그 아빠가 언제나 나처럼 무언가를 읽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그 아빠의 표정 때문이었다. 날 때부터 그런 것이라 쉽게 단정 지어버리기엔 표면상으로 보이는 아이의 문제는 조금 심각해 보였는데도 어쩌면 저렇게도 정돈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이에게 부모는 기댈 언덕이며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라서. 그래 맞아.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는 없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또 한 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보다 힘든 건 정작 아이 자신이다. 왜 나는 생각이 이다지도 짧은 건가. 왜 이다지도 이기적이었는가 싶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작은 아이가 받았을 부당한 대우와 적당하지 못한 처우들, 그로 인해 아이 스스로 느꼈을 상실감과 자존심에 대한 상처들, 생각이 계속 그쪽으로 미치자 엄마로서 고통스러운 죄책감이 또 한 번 밀려왔다. 사나운 짐승이 한 번에 심장 전체를 할퀴고 도망가기라도 한 듯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과 실수들, 그리고 무식한 행동들이 어쩌면 영영 회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얼마나 심각한 고민과 좌절감으로 아팠는지 모른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로서 큰 빚을 졌구나.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 그 빚을 갚아야 해. 어떻게서든 해결해 줄 의무가 있다‘는 것도 통감했다.
독서를 가장 순수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우정이라고 말한 사람, 프루스트.
그날 이후 내가 책장에서 처음으로 꺼내 든 책은 [안개 섬의 해적들] 시리즈였다. 다양한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각각의 부족을 형성하고 세력을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담은 이야기책이었다. 낭독하기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주저함이 없이 그 책을 꺼냈다. 첫 번째로는 유아 동화는 큰아이와 작은 아이에게 지루할 수가 있었고 그렇게 되면 흥미가 떨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는 책 속에 그림이 거의 없다는 이유였다. 난독증을 앓는 아이들은 글자를 읽을 때 순수하게 글자 모양을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상상하여 글자의 음소를 만들어 내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울트라마린 팍스는 여우로 그 책의 주인공 동물 종족이었다. 총 여섯 권의 시리즈로 구성된 책으로 낭독을 하다 보니 점차 어른들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특히, 작가로 등장하는 어니스트 레빗웨이는 실존 작가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것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 외에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들이 풍부했고, 극 중 [생쥐와 바다]라는 책을 집필 중인데 사실 그 책이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이며 아이 셋을 보살펴야 하는 엄마이며 그리고 직장에서는 마땅한 직위가 있어서 언제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세 아이 모두는 엄마의 책 낭독 시간을 기다렸다. 심지어 잠자리 들기 전 이불을 잘 펴 놓고 막내는 그 책을 끌어안고 다니면서 ’팍스 선장’을 어서 읽어달라고 졸랐다. 읽으면서 읽고 난 후 목이 따갑고 별이 보일 정도의 현기증을 동반한 두통이 찾아오는 때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머리만큼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책을 낭독하는 방식이 작은 아이의 난독증 호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이후부터, 큰아이, 작은 아이, 막내를 각자의 다른 시선으로 보는 힘이 생겼고 그렇게 하기를 결정하고 시작했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선택하고 결정해서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며 나중에 그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지 모른다고 하여 주저하거나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마음이 조급하다. 다음번 책은 지난날 나를 그렇게도 울렸던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될 것이다.
“넌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넌 태양이 될 거고, 네 주위에서 별들이 빛나게 될 거야”
또또까 형이 조금은 돌았다고 생각하는 큰아버지가 우리의 제제에게 이 말을 해 줄 때, 내가 그 구절을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나는 울먹였다. 큰아이는 ‘엄마 울어?’ 하고 물었지만 나는 부정도 긍정의 표현도 하지 않은 채 그 순간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던지 눈빛을 통해 이야기했으며 큰아버지의 감정이 나에게 이입되어 마치 나의 세 아이에게 내 입으로 하는 말처럼 감동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글자를 눈으로만 읽을 때와 소리를 내어 읽어나 갈 때의 속도의 차는 거의 다섯 배에 이를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읽는 도중에 아이들에게 단어나 극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때도 있으므로 비록 진도는 더디게 나아가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 책을 다시 읽음으로써 돌아오는 지난 시절에 대한 기억들, 억지로 기억해내려고 하지 않아도 지난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던 장소와 그날의 분위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시 선명하게 되살아났고 그건 마치 처음으로 제제를 만났던 열두 살의 꼬마로, 막내가 막 태어났을 적인 5년 전 늦은 여름 작은 방구석에 홀로 앉아 아무도 몰래 흐느끼던 그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독서는 그 책만의 고유한 내용보다는 내가 들어가 있던 공간의 분위기와 풍경의 기억 탓으로 감정이 더 풍부해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책을 낭독해 주는 이 작업 – 어쨌든, 작은 아이의 난독증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내가 선택한 방법의 하나이므로 – 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상당한 의미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로 마음속의 열정은 점점 더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제제와 동생 루이스가 동물원 구경을 끝내는 것을 끝으로 우리 넷은 뜨거운 볕을 등지고서라도 몸 푸는 것은 꼭 해야만 한다면서 각자의 자전거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하루 만에 바람은 말라 있었다. 어제까지 불던 그런 축축한 바람이 아니었다. 볕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아이들 머리카락은 젖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말라 있었고 콧잔등에 작은 땀방울만이 송골송골 맺혀 있던 것이다. 아, 그리고 제법 하늘이 높아져 있는 것을 한 눈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얇고 가벼워 보이는 구름이 몇 겹으로 쌓여 있는 것이 구름의 틈 사이로 보였고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구름층만이 분주하게 북서쪽으로 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밤 엄마와의 통화에서 태풍이 서해안으로 빠져나간다는 말을 하던 것이 떠올랐다.
두 시간이 다 되도록 자전거를 타다 놀이터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목마를 타다가 우리는 조금씩 더위에 지치기 시작했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원하는 기호의 얼음 음료수를 한 잔씩 마시고 난 뒤 또다시 놀던 놀이터로 돌아왔다. 여름 한낮의 놀이터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나는 볕으로 인한 심한 현기증을 느꼈음에도 쉽사리 집으로 들어가자고 나 또한 인제 그만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하기가 싫던 것이다. 나란히 놓인 나무 벤치에 내가 먼저 누웠다. 순서대로 아이들도 나를 따라 했다. 벤치는 두 개뿐이었으므로 막내는 내 옆에 큰아이 작은 아이는 같은 벤치에 하늘을 마주하고 벤치에 몸을 반듯하게 눕혔다. 몸에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기분마저 좋아졌다.
“우리 하늘 보면서 동시 짓기 놀이할까?”
내 아이들이라서가 아니라 애들은 엄마가 함께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골치 아픈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아이는 그렇다. 우리는 하늘을 주제로 즉흥시를 짓자고 했다. 그 순간 우리 전부는 제 각자 시인이며 작가였다.
제목 : 하늘, 그리고 구름
하늘은 끝없는 바다
구름은 쉼 없는 파도
쉬지도 않고 밀려오는 파도가
바다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
하늘이 저렇게 파랗게 되었나?
그래도 하늘은 한없이
구름에 제 자리를 내어 준다.
계속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참지 말고 마음껏 숨을 내쉬라고
구름은 거의 온종일 숨을 참는다.
바람을 일으켜 친구를 멀리 밀어내기 싫어서
숨을 참는다.
온종일 참은 숨을
저녁때가 다 되고 나야 겨우 토해낸다.
파도처럼 뭍까지 한걸음에 달려와서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거품처럼 뽀얀 구름의 숨들이 넓게 번져있다.
구름은 하늘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그제야, 겨우 저녁때가 되어야
참고 참았던 제 얼굴을 붉힌다.
여전히 하늘은 제 자리를 내어 준다.
구름을 넓은 팔로 안는다.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는 듯이.
구름은 너와 나,
아무래도 하늘은 엄마인 것 같다.
즉흥시 낭독이 끝나고 아주 잠깐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몸을 내 위에 포개고 나란히 하늘을 바라보던 막내는 나도 한번 해 보겠다고 형들보다 먼저 낭독을 하겠다고 자처했다. 여섯 살 아이라고 하기엔 일찍 철이 든 것 같은 막내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비릿한 땀 내음이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향기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 순서에 맞게 돌아가며 서너 번 짤막한 즉흥시를 낭독했다. 우리가 누워 있던 낡은 벤치, 같이 보았던 하늘, 이미 흘러가 버린 구름, 또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 또 다른 구름을 함께 느꼈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가늠해 볼 수 없는 우리 사이의 거리, 마음의 거리, 그리고 하늘과 구름과 우리 사이에 놓인 공간의 크기, 서툰 즉흥시였지만 그 순간 한마음으로 어쩌면 실제보다 더 광활한 한편으로는 더 가깝게 거의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독서의 동반자로서 바라보며 우정을 쌓은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풀피리 부는 연습을 했는데 아무래도 큰 형이 가장 잘했다. 비록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동틀 때의 해와 석양의 해는 그 색이 같다. 여전히 붉은 빛이다. 모습은 비록 산 뒷자락에 감추고 있더라도 그 시간과 장소가 바뀌더라도 해만의 특질을 속이거나 바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일주일 전, 여름 중 가장 더위의 정점인 어느 날, 나는 집 가까운 노상 물놀이장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목소리를 좀 높이면 서로 간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에 작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1평도 안 되는 작은 나무 그늘에서 볕을 피한다고는 했으나 나무 그림자는 남쪽으로 조금씩 움직였기에 나는 한낮의 그 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더웠다. 하지만 책 속으로 빠져들다 보니 큰 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에게 딱 맞는 피서였다. 그런데 작은 아이가 풀장에서 놀다 말고 누군가를 반기며 달려왔다. 얼마 전 인근 새 아파트로 이사 간 친한 언니네였다. 마침 도로 신호대기에 걸렸는데 우리 아이들이 보이더란 것이다. 나를 쉽게 찾아냈는데 어쩌면 쟤는 저런 데서도 책을 읽을 수 있나 생각했다면서 반가운 마음에 자기네 애들을 데리고 물놀이장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옥중서신]의 본회퍼가 그 척박한 수용소에서 내면적으로 그렇게 충만한 삶을 살다 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읽고 쓰기의 힘으로부터 생겨난 지혜가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비단 본회퍼만의 경우만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인생의 난관을 겪을 때 자신만의 탈출구가 있었다면 그들의 공통적인 행위는 바로 독서였다. 읽기로 자기만의 피난처, 즉 성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작했다. 나에게 늦더라도 내 아이들에게 삶의 시계가 남들보다 더디게 가게 되더라도 읽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으로 옮겨 나가야 한다고 그렇게 인식하고 비로소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서는 속도보다는 그 의미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그건 해의 특질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