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아이는 발달장애입니다.

by 김현이

1. 내 아이는 발달장애입니다.


특별한 뇌를 가진 작은 아이


“엄마? 글자는 언제나 자기들끼리 싸워요. 몸싸움하는 것 같이 뒤엉켜 있고 그러면 머리가 복잡해져요.”

아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싸우고 있는 글자들을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요. 어질러진 장난감처럼 정리해 놓고 싶은데 자꾸 동생이 방해해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과 같아요. 그러면 슬퍼져요. 혼이 날까 봐요.”


엄마인 나에게 이제 더는 견뎌내지 못할 밤은 없었다.


둘째 아이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병에 걸려 있었고 정확하게는 ’음운성난독증‘, 조금 더 정확히 전문적으로는 음운성난독증에 유창성난독증이 결합되어 증세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음에도 그동안 확인 후에 밀려오게 될 불안의 파도를 감당해 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진단을 미뤄왔었음을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아이는 별로 좋지가 못했다. 그 결과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받은 날 이후부터 이전의 어떤 밤들보다도 잠들지 못하는 날로 이어졌고 그것은 지독한 두려움과 아이에게 닥쳐올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들 때문이었다. 그러기를 일주일,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글자는 까만 밤 별빛 같은 존재였다. 그건 마치 여름밤 반딧불이가 빛을 냈다 꺼졌다 하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이 불빛들의 깜빡임으로 다가왔고 그 빛나는 점들은 점점 더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며 그런 순간들은 조금씩 늘어났고 어느 순간 거대한 불꽃이 번져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멀도록 엄청나게 밝은 하얀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이것은 아이가 가진 병에 대해 알아본 증세를 생각해 보았을 때 아마도 아이가 느꼈을 감정에 이입을 해 본 것이었다. 보통 오른손잡이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글자를 읽고 쓰는 방식이 아닌 사방에서 순서 없이 글자들이 공격해 오는 바람에 아이는 지면 위에서 글자들에 포위당해 마침내 어지럼증을 느끼고 항복하게 되는 일종의 신경질환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지나온 10여 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게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엄마인 나 자신도 희생자였다.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많은 굴욕감으로 상처를 받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가해자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고 해를 입은 아이에게 무엇을 해서라도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통렬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아이의 병을 고쳐낼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꼭 고쳐줘야 해.’


2017년 9월, 2년 전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직장 동선의 문제로 아이를 병설 유치원을 보내고 1년 반이라는 기간이 지난 뒤였다. 아동 독서교육의 순서가 몇 년 전만 해도 만 4세만 되어도 글자를 가르쳤고 가정이나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그 무렵 아동 발달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독서교육은 7~8세를 중심으로 시작해야 가장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들이 발표되면서 교육 당국은 점점 아이들의 글자 익힘에 속도와 시기를 늦춰가고 있던 분위기였다. 큰아이를 보더라도 한글을 꽤 일찍 익힌 편이었고 배우는데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짧은 기간 동안 익혔으므로 작은 아이에게 그러한 문제점들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엄마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엇보다 아이와 가정을 위주로 생활하고 있었던 사람으로 아이의 행사에는 열 일을 제치고서라도 최대한 참석했고 그 누구보다 아이의 행동과 발달에 관심을 가졌다. 아니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자인 누군가가 보더라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머니, 아이가 며칠 전에 낱말맞추기 게임을 하던 중 울었어요. 아무래도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여 많이 속상했던 가 봐요. 이제 아이에게 조금씩 한글을 가르쳐도 될 것 같아요.”


지도 교사의 조언대로 엄마는 바로 세 권짜리 묶음으로 되어 있는 한글 학습 교재를 주문했고 이제 작은 아이도 글자를 배우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무척이나 들떴다. 그러나 큰아이를 생각해 보았을 때 작은 아이는 조금 더딘 편이었다. 한번 알려준 글자를 헷갈리거나 알더라도 생각을 아주 길게 한 뒤에야 대답하고 그마저도 하루가 지나면 거의 전부 다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당시 엄마는 아직은 취학 전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아이에게 조금은 준비가 덜 된 것이라고 여기며 보던 교재를 눈에서 먼 책장에 꽂아놓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가면서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반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가 버렸다. 어김없는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이었다.


“선생님,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부모로서 무척 두렵고 조심스러우며 힘이 들기는 합니다만 혹시 저희 아이가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지요. 만일 그런 것이라면 저도 달리 교육 방식을 생각해야 하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은 2년 전 큰아이를 맡았던 분으로 아무래도 아이의 환경이나 엄마의 처지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고 계셨고 선생님의 대답은 정말로 의외였다.


“전혀요.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 우수합니다. 이해력뿐만 아니라 수리 계산 능력은 반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에요. 그리고 운동신경도 발달해서 놀이 참여에도 적극적이라 반 친구들도 어울려 놀고 싶어 하고, 그리고 귀여운 외모로 인기도 많아요. 독서의 경우에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뿐이니 어머니께서도 조금은 여유 있게 지켜봐 주세요.”


마음속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저학년을 둔 엄마의 마음이란 것이 담임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슬퍼지기도 하는 아이의 마음과 어디 다를 바가 있던가. 그리고 이미 그런 기분을 충분히 느껴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의 독서교육에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조급함은 점점 빨라지는데도 아이는 처음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만 했다.


‘아! 언제까지 얼마나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한글 떼기 수업반으로 아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2학년에 올라가 막 시작된 첫 달이 지난 뒤였다. 아이가 맞는 받아쓰기 점수는 0점에서부터 100점까지 범위가 상당히 넓었고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점점 더 조금씩 아이에게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굳어져 가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자신의 교수법이 틀렸다는 결론으로 아이를 한글 떼기 반에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시간이란 게 그 얼마나 무심했던가. 그 이후에도 아이의 독서 실력은 전혀 향상되지 않았는데도 선뜻 그만두기가 겁이 났었다. 왜냐하면, 그 무렵 엄마는 아이들의 아빠와의 갈등으로 다른 무슨 일에도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만큼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들에 휩싸여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다가 내 아이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아이를 더 좌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자 또 다른 생활의 우선순위보다도 아이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불현듯 지금까지 맛본 그 어떤 공포감과도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느껴졌다. 더 는 그대로만 두고 볼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전문가를 찾아간 것이 두 달 전, 2019년 6월이었다.


예상대로, 이미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작은 아이에게 심각한 난독증 진단이 내려졌다. 다른 말로 ‘독서 장애’라고도 불리는 dyslexia, 발달 초기에 뇌 회로에 생긴 결함의 문제로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다수이며 아동 20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는 질병의 일종이다. 환자의 70% 이상은 유전적인 원인으로 인해 나타나므로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난해, 난산증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읽기 능력은 지능과도 상관없는 일이며, 실제로 지능지수가 80 이하라면 ‘난독증’으로 진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질병이었다.


진단전문가는 엄마에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채로 ‘난독증’인 것만을 거의 통보하다시피 알렸고 엄마는 그날 이후 적어도 며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고민과 걱정에 휩싸였다.


‘엄마는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닥친 불행이나 위험을 충분히 제거하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다. 아이의 인생이 잘 못 된다면? 평생 작은 아이에게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이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래. 당장 엄마 자신이 그런 암흑 속에서 살아가도 별문제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 내 아이의 인생은? 내 아이가 난독증으로 인해 패배했다는 우울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놔둘 수는 없다. 고쳐줘야 한다, 누구도 아닌 엄마인 내가 해낼 일이다.’


처음 치료를 시작으로 2주가 지나갔다. 아이의 치료비와 시간, 그 시작으로 인해 또다시 영향을 받을 나머지 아이들에게 생길 문제들, 엄마는 지난 2주 동안, 짧다고 치자면 매우 순식간의 시간이며 한편으로는 인생 계획을 전반적으로 고치고 다시 계획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한 2주간, 과거 이혼이라는 사건보다도 어쩌면 더 중대하고 커다란 인생의 전환점에 서서 고군분투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지금이야 표면적으로 나타난 변화는 거의 없을지라도 이미 내면으로는 엄마와 아이들의 인생 계획의 전반을 수정하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도 조금씩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먼저, 내 위주의 독서 방향을 조금 전환 시켜서 아이들에게 내 목소리로 직접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다는 것, 남는 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방치되고 하릴없이 낭비했던 시간을 이제는 조금씩 아이들과 어울리며 함께 노는 시간으로 바꿔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소리를 내어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책을 낭독하고 나면 엄마에게는 가장 먼저 현기증이 밀려왔다. 그 현기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을 밝히고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만드는 오히려 삶의 활력을 되찾아 주기 직전의 일시적인 하락쯤으로 여겨지는 기분 좋은 어지럼증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아이들은 11살, 9살, 6살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제부터 나는 10살과 5살 난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지 하는 자세였다. 조금은 느리게 가더라도 비교하지 않으며 아이들만의 충분한 장점은 키워주고 부족한 면은 채워주면서, 비록 그 과정이 엄마의 희생이라는 노력을 치르게 하더라도, 살기로 한 것이다.


어느덧 두 번째 치료를 받는 날이다. 한번 치료 교실에 들어가면 2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 큰애와 막내는 내 옆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사무원이 보여주는 영화를 시청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작은 아이가 이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진단을 내리던 전문가가 처음으로 물어보았던 질문이 생각났다.


”난독증이라는 말을 들으니 엄마의 기분은 어떤가요?‘


그 순간, 조금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속으로 ’나를 놀리는 건가‘ 식의 불쾌함을 느꼈지만 지난 보름여 동안 나 스스로 바로 세울 수 있게 한 생각이란 ’다행이야‘ 라는 것이었다. 작은 아이에게 난독증이 있는 것을 두고 불만이나 불평의 원인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엄마로서 삶에 또 다른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것이며 또한 엄마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인 아이들과 나누며 살라는 신의 뜻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부터 엄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까.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가 이야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엄마는 이렇듯 처한 여건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제한된 아이들의 삶의 활동 영역을 넓혀줄 것이다.


오늘은 정말로 기대가 되는 작은 아이가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번째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