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집중하며 읽기 - 독서의 정수

by 김현이

7. 집중하며 읽기 – 독서의 정수


2019. 8. 24.


오늘은 세 번째 날이다. 이제야 세 번째 날이다.


삶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거든.

- 1930.2.5. 큰아들에게 쓴 아인슈타인의 편지 중 한 문장.


아인슈타인에 대한 자료를 찾고 읽는 동안 몰랐던 감정들이 오늘 새벽에서야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뜻 모를 슬픔이 솟아나 그의 인간적인 생애에 동정심이 느껴졌기에 한동안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가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천재라고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고난과 어려움, 어떻게 극복해 냈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되자 최소한의 인간적인 동정심이 더 크게 다가왔다. 성공한 인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성공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은 아니라는 쪽으로 기울자 점점 마음이 서글프다.


어쨌든, 내 삶은, 아이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멈추지 않고 지속하여야 한다. 계속 가는 시간을 앞질러 가지는 못할 테지만, 제때 맞춰 살지 못하게 되더라도 유지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어느 정도는 미래를 기약할만한 생활로 연결되어야 한다.


인지 심리과학자 매리언 울프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장차 그 내용이 누적되어 올바른 사고장치가 되거나 학습에 있어 필요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인정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발달로 솔직히 과거의 사람들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양하고 더 많은 경로로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것만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깊이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 또한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 자신도 손안의 천재, 스마트 폰을 언제나 언저리에 두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 영리한 기계를 전화를 받고 걸거나 사전으로 사용하거나, 고작 학습을 기저로 외국 방송을 듣는 기계로 사용하는 게 전부이며 그마저도 소리만 듣는 경우가 많으므로 화질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조차도 그 영리한 천재를 대부분 손안에 지니고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아는 건 많아졌을지 몰라도 과연 그 알고 있는 지식의 깊이가 상관관계가 있는 대상에 어느 정도까지 연결할 수 있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 우리는 단순히 ‘많이 알고 있는 척’만 하면서 지엽적인 지식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상 지면을 떠난 eBook 형태의 텍스트는 읽는다고 해도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많이 했었다. 특히 신문을 구독하고 그 신문에 난 특정 기사를 노트에 필사하기까지 하는 내가 스크린에 나타나는 글자를 읽기도 하는 경험으로 보자면 기억에 남게 되는 한계치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심지어 내 경우는 전자 기계를 이용해서 글을 써도 교정을 볼 때는 꼭 인쇄해서 지면으로 직접 하게 되는데 그만큼 집중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쉽게 검색하고 자료를 찾아보면 쓰고 메모하는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것은 의심스러운 정보, 때로는 거짓 정보마저도 사실로 알고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따라가게 된다. 더 심할 때는 그 의심스러운 정보의 진위마저 신경 쓰지 않게 되면서 조금씩 ‘방 안의 코끼리’ 문제로 심화하여 간다는 것이다. 깊이 읽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는 배경 지식과의 호혜적 중요성이 빠진 채 읽었어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오히려 시간만을 낭비한 결과가 된다는 데 있다.


단순히 많이 알려고 이렇게 읽기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읽지 않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읽기란 적어도 내게는, 고도의 집중과 통찰력이 필요한 모종의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생의 과업으로서 여기며 글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길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고 어느 날 갑자기 느끼는 깨달음은 삶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어느 정도는 책을 그동안 쭉 읽어왔다고 말하는 나 자신조차도 아주 최근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며 어쩌면 읽기를 통해 무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꾸준한 실천의 결과물로 완성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생겼다는 의미이며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니고 살아야 할 도덕적 의무를 더 올바르게 질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삶의 도덕적 판단은 본질에서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데서 오는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과 같고 그 능력은 바로 내면을 보는 눈, 사물을 관조하는 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깊이 읽기를 통해서 신장하고 단련될 수 있는 바로 깊이 읽기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적어도 읽기를 통해서 제한된 경험과 능력의 한계의 범위는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아이가 평생의 난독증으로 깊이 읽기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서운 생각이 들게 된다.


아이의 문제가 조금씩 분명하게 다가올 때,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힘을 내지 않았던가. 9살이 아니라 7살 아들을 둔 것이라고. 7살로 생각한다면 내 아이는 모든 면이 뛰어나고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한, 지금 이 사실 또한 나의 경험에서 근거한 것이므로 단언할 수 있는 사실로 우리 대부분은 다중작업이 가능하다고 자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누구의 뇌도 그렇게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도로 훈련된 자 이외의 경우는 다중작업 자체가 수행 목적의 질 자체를 저하할 뿐이다. 다시 말해, 비효율적인 업무수행으로 시간 낭비만 할 뿐이다. 보통 사람이라고 자처한다면 집중에 방해받는 요소를 제거하고 시작해야 한다. 만일 그 업무가 독서라고 한다면 이 과정의 중요성은 더욱더 분명해진다. 바로 깊이 읽기와 집중하며 읽기야말로 독서의 정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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