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무뎌지는 것들, 그래서 더 단단해지는 것

by 김현이

17. 무뎌지는 것들, 그래서 더 단단해지는 것


2019. 10. 22.


칼을 갈아 놓고 가신 아버지.


아빠는 손으로 만드는 거라면 못해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정말로 솜씨가 좋으시다. 그러니까 칼도 전문가보다 더 잘 갈 줄 아신다. 지난주에 집에 붙은 동산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한 톨씩 주워다 묵을 만들어서 엄마와 집으로 오셨었다, 여자 혼자서 애들을 셋이나 데리고 살면서 일까지 해야 하는 딸자식이 어디 그리 직접 눈으로 보고 싶으시겠냐만 얼마나 그 마음이 사무치고 안타까울 걸 잘 알고 있기에 다녀가신다는 연락을 받고도 마음이 좋으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깡마른 내 모습을 보면 또 마음 아파하시겠지. 아마 걱정만 하시고 가실 텐데.’ 무엇보다 아이들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기다렸다. 금요일 저녁에 오셔서 이틀 밤을 함께 보내면서 믿는 구석이 있던 것인지 애들은 평소보다 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개구쟁이 행동으로 내 언성이 커지도록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는 또 못 만드는 음식이 없었다. 손맛이 어찌나 좋은지 동네에 큰일이 있으면 언제가 굵직굵직한 음식들은 모두 엄마에게 맡겼다. 그래야 맛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줍고 엄마가 만들어 온 굴밤 묵은 정말로 탱글탱글하고 부드럽고 쌉싸름한 고소함이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막내는 김에 묵을 싸서 한입 가득 물고 연거푸 몇 개를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아이들은 음식을 맛보다는 기분으로 먹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에 당연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칭찬이 아이의 입맛을 더 돋워 주었을 거로 생각한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어제 저녁밥으로 볶음밥을 하려고 양파를 썰다가 나 어릴 때 수돗가에서 네모진 확독에 칼을 가는 아빠를 옆에 앉아 지켜보면서 그 날카롭게 갈려 나가는 모습에 얼마나 신기해했었던지 떠올랐다. 아빠는 이 말을 꼭 했었다. ‘양파를 썰 때 칼날이 미끄러지면 그 칼은 무뎌진 거야. 다시 갈아 써야 하는 거지.’ 양파를 썰면서 한눈을 판 건지, 생각을 판 탓인지 칼날이 미끄러져 왼손의 가운뎃손가락을 그만 베이고 말았다. 젖어있는 손가락의 피부는 핏물에 들려 금세 들떠서 너덜너덜해지고 한 방울 뚝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핏물이 싱크대 위로 떨어졌다. ‘거봐. 아빠가 칼을 갈아 놓고 가신다고 할 때부터 뭔가 칼 쓰는 것에 겁을 먹고 있었어,’ 베인 손가락을 수돗물에 씻어내면서 피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데 쉽게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양파는 거의 다 잘렸고 남은 재료는 어쩔 수 없이 한 손만 써도 되는 가위로 잘라야 했다. 볶음밥에 들어가는 재료의 크기가 제 각자가 될 게 뻔했지만 멈추지 않는 피를 밴드로 동여매고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피식하고 나왔다. 엊그제 주말, 큰 형과 작은 형을 따라서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먼 벤치에 앉아 있는 내게로 달려와 손바닥을 보여주면서 피가 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는 가시나무를 갖고 놀았던 모양이었다. 겨우 보일만 한 작은 가시가 보드라운 손바닥 얇은 피부 아래 숨어 있었다. 종기 짜내듯 몇 번을 그렇게 해서 겨우 작은 가시를 빼냈다. 가시가 박혔던 상처보다 눌린 손자국이 더 크게 남아서 아이는 조금 울먹였다. 그러더니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가시는 다 빠진 거죠? 이제 괜찮은 거죠?’. 그렇게 묻는 아이에게 집으로 가서 소독을 해 봐야 남은 가시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약간 겁을 주면서 말했는데 그건 앞으로 아이가 그 가시나무를 조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날 저녁 손을 닦이고 보았더니 가시에 긁힌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가시가 더 있으니 이제 바늘로 빼야 할 것 같다고 가시를 안 빼면 큰 병원으로 가서 큰 칼을 써 빼야 한다고 장난으로 겁을 주었다. 아이는 아예 울먹이며 글썽이는 눈망울을 하고선 이렇게 말하더니 홱 돌아누워 금방 잠이 들어 버렸다.


“가시를 바늘로 빼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죽는게 낫겠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등을 돌리자마자 잠이 든 아이가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는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얼마나 웃었는지, 또 얼마나 이 아이가 사랑스러웠는지, 또 내가 얼마나 내 아이에게 애정을 가졌는지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볶음밥에 넣을 양파를 썰면서 아빠가 잘 갈아 놓고 간 칼날에 손을 베였다. 난 음식을 할 때 칼 쓰는 것을 무서워했었다. 그래서 자주 그렇게 손가락을 베였었다. 이번 칼은 갈아 놓은 지 얼마 안 되는 칼이라서 더 깊이 베였다. 하지만 금방 아물 것이다. 칼도 계속 쓰면 전처럼 무뎌질 것이다. 양파 위에서 미끄러질 때쯤이면 이미 칼은 본연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고 그때는 다시 아빠가 다녀가시면서 또 칼을 갈아 놓을 실 걸 알고 있다. 그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손가락을 베이지 않으면 된다.


아! 그리고 요즘 나의 고민거리. 바로 이사 문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내게 아이들은 묻는다.


“엄마! 얼마나 큰 집으로 이사할 거예요?”


지금 집이 남자애 셋을 키우고 살기에 모두 다 좁다고 말들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 집이다. 그건 다 어떤 물리적인 상태로부터 느끼게 되는 심리적인 구속감에서 오는 자유의 박탈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여기 이 작은 집에서도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함을 느끼는지 모를 것이다. 그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든지 간에 그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지가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 대부분은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넓은 집으로 가라며 내게 그런 충고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쨌든, 언제가 되었든, 어디로든, 이사는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필요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장성한 모든 남자는 군 복무의 의무를 지니고 있었는데 아들을 셋 둔 아버지는 군대에서 면제를 시켜줄 정도였었다. 나는 아들을 그것도 혼자서 셋을 키우는데 이럴 때 내게 뭔가 확실한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 그냥 웃음만 나온다.


2019. 10. 28.


“두고 봐! 강아지는 사랑에 빠지고 말 테니까.”


10월의 끝자락, 이맘때의 계절이란 언제나 가을 운동회의 계주경기와도 같이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지나 가버린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조금은 지루하고 더딘 과정을 거쳐야 마침내 구경할 수 있는 계주경기와 똑 닮았다. 10월은 그렇게 우리의 예상대로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켜줄 만한 많은 것을 가지고 왔었다. 높아진 하늘, 하얀 뭉게구름, 산들바람, 그리고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던 나무이파리들, 그 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공기를 마셨고 달렸고 걸었고 또 만져보았었다. 10월이 가기 전 마지막 주말이라서 그랬던지 꼭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라도 걷고 와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일요일 점심을 좀 느긋하게 먹은 뒤 익숙한 길을 걷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처음 공기가 찬 듯 아이들은 왜 얇은 옷을 입혀준 거냐 볼멘소리를 했었다. 거봐!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날 테니 하면서 아이들의 말을 좀 무시했지만, 사실은 다소 얇은 옷을 입은 나도 가을의 찬 기운이 옷깃 안으로 스며들어 빨리 걸어야겠단 생각이 들기는 했다.


자전거를 끌고 나온 큰아이, 작은 아이를 먼저 출발시키고 나는 막내의 작은 손을 잡고 나란히 다정하게 들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들길이었다. 그 길 입구엔 웬만한 크기의 개 두 마리가 묶여 있는데 언제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사납게 짖거나 아니면 개라면 마땅히 짖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먼 허공을 바라보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가볍게 울음을 삼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단우야! 이번에도 강아지들이 우리를 보고 짖겠지?”


“아마도. 좀 오래 못 봤으니까 우리 얼굴을 잊어먹었을 거야. 엄마.”


어김없이 두 마리 개는 멀리 우리 발소리부터 듣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오히려 가까이 갔을 때는 짖는 것을 머뭇거리는 듯 보였지만 다소 사납게 짖어대는 코가 들린 돼지코 개는 철창에 갇혀 더 사납게 짖었고 남은 한 마리는 담요가 깔린 길옆 작은 말뚝에 고삐가 묶인 채 앞발을 곧게 펴고 앉아서 우리 둘이 다정하게 걷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성질이 사나운데 우리 안에 갇혀 있어서 더 성질이 나빠졌는가보다며 그래서 계속 짖어대는 거라고 이야기하자 아이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 길을 가다가 강아지풀이 보이면 나에게 따 주세요. 알았죠? 잊어버리면 안 돼요.”


걷는 데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앙상하게 피어난 길가의 코스모스는 정말로 수줍은 듯 분홍빛으로 물들인 양 볼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고 씨가 촘촘히 박힌 해바라기는 어느새 꽃잎을 누렇게 말리고 여문 씨가 무거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김장으로 쓰일 배추, 대파, 무는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계절을 거꾸로 가는 듯 푸른 녹색으로 제 자리를 더 자치하려는지 이파리가 뒤엉킨 채로 있었다.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길 끝까지 닿고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지점이었다. 이미 자전거로 두 차례 왔다 갔던 아이들이 새끼 도마뱀 한 마리를 잡아 온 것이다.


“어? 도마뱀이잖아! 꼬리를 안 자르고 도망치지 않은 걸 보니 용기 있는 녀석이거나 너희가 전혀 무섭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엄마는 파충류는 만지기가 다 좀 그래.”


아이들은 날 보고 메뚜기를 잡아서 도마뱀에게 먹여보자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면서 더 두려움이 생긴 일이 있다면 곤충을 손으로 잡는다는 일이었다. 이젠 잠자리도 잡기가 별로였다. 그 유충의 탈피 과정을 알고 나서 더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이 이 순간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바람대로 운도 없는 갈색으로 등을 물들인 작은 메뚜기를 옷소매로 감싸 잡고 뒷다리를 잡아 우선 날개부터 뗐다. 눈을 감고 최대한 팔을 길에 뻗어서 그렇게 날개를 잘라내 버렸다. 가엾은 메뚜기. 도마뱀은 메뚜기를 먹이라고 여기기보단 오히려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메뚜기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얘들아! 정말 메뚜기한테 미안하다. 새끼도마뱀은 메뚜기를 못 먹는 것 같아.”


새끼 도마뱀을 풀숲에 내려 놓아주고 나는 메뚜기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도 잊은 채 왔던 길로 돌아섰다.


큰아이, 작은 아이는 돌아가는 길이 약간 내리막 길이였으므로 신이 나서 더 빠르게 비포장 길을 내달렸다.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그 모습도 점점 작아지면서 밭의 모퉁이 길을 돌아 이내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엄마! 클로버예요.”


나는 막내에게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하고, 좀 찾기 힘든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뜻하는 거라고 말해 주었더니 막내는 ‘엄마 그러면 우리는 딱 두 개만 따가요.’ 하면서 세 잎 클로버를 두 개 살짝 뜯었다. ‘우리는 행복을 두 개나 가져가는 거예요.’ 말하곤, “고마워 토끼풀아!” 말하는 게 아닌가. 사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뜻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토끼풀 숲에서 네 잎만을 찾다가 세 잎을 헤쳐 놓고도 결국, 못 찾은 네 잎에 대한 원망만을 하는 게 우리 어른들이 아니었던가. 아이가 뜯은 토끼풀은 약간 벌레도 먹고 흙먼지가 앉아 별로 예쁘지도 않은 풀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보지 어찌나 앙증맞고 귀여운 토끼풀이던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 이제 강아지풀을 한 개만 뜯어요. 분명히 길 앞 강아지는 이 강아지풀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 테니까요. 그럼 절대로 우릴 보고 짖지 않아요.”


우리는 강아지풀을 강아지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돌아올 때는 걸음에 속도를 냈다.


그런데 정말로, 너무나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납게 짖어댔던 강아지가 아이가 보여준 강아지풀을 보더니 꼬리까지 흔들면서 온순하게 변해버린 게 아니던가. 아이 말대로 정말로 강아지풀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것 거처럼.


아이는 자기가 말한 대로 되자 무척 흐뭇한 미소로 강아지들에게 손 인사까지 했다.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 어쩌면 조금 전에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보았기 때문에 강아지가 짖지 않은 것일 수 있지만, 꼭 그렇다고만 하기는 막내의 말엔 정말로 사랑의 묘약과도 같은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 그네가 비어있는 것을 보자 그쪽 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손에 쥔 작은 토끼풀을 나에게 맡기면서. 나는 이미 다시든 그 토끼풀을 작고 예쁜 돌멩이 위에다 나란히 올려놓았다. ‘여기에 행복을 두고 가니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가져가세요.’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10월은 잊어먹지도 않고 빼먹지도 않고 작년에 주었던 것들을 도로 가지고 와서 우리 눈과 마음속으로 찾아왔었다. 그렇지만 곧 가져왔던 모든 것들을 다시 되가져갈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아이들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행복이란 꼭 만지고 눈에 보여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10월의 가을은 운동회의 계주경기와도 같이 흥미진진했지만 빨리 끝이 났다. 아쉬움도 기쁨도 접어두고 잠시 뒤를 보면서 참았던 숨을 몰아쉴 테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그 순간의 떨림과 흥분은 오래도록 남아 있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는 잘 알고 있다. 나는 11월이 결코, 혼자서 그냥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더 냉정하고 차가운 바람을 함께 데리고 온다는 것을.


나는 놀이터 구석의 작은 벤치에 앉아서 그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아이의 모습 뒤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하기를 반복하는 키 작은 단풍나무를 바라보았다. 10월의 아쉬움도 11월의 걱정도 잊은 채 난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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