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또 다른 계절

by 김현이

18. 또 다른 계절


2019. 10. 31.


찬바람이 나니 얼굴이 더 예뻐지는구나.


나에게 이유 없이, 그냥 오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회사에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동료들, 그리고 빈번하게 겪어야 하는 많은 민원인까지도 소소하게는 그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꼭 기록해 놓아야 하는 일이었고 동료들의 지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나는 알고 있어야 하는 업무를 맞고 있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 업무가 적성에 잘 맞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런 예민한 정보까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 성가시거나 불편한 일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일을 해서 월급을 받고 그 월급으로 세 아이와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였으니.


9월의 끝에서 언제나 나는 10월의 끝이 곧 올 것을 예감하고는 했었다. 사실은 오지 말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0월이 지나가면 시간과 계절은 마지막으로, 그 매듭의 끝자락으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급경사진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무거운 수레처럼 좀처럼 제동을 걸기도 힘들었으며 곧 쏟아질 여름날의 소나기구름처럼 무겁기도 하고 긴장되어 조금은 견뎌내기 힘들 겨울이 코앞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찬바람이 나자 내 아이들의 얼굴은 더 예뻐지고 있었다.


‘여름내 볕에 그을렸고 말라 있던 얼굴이 가을볕을 받자, 매끄럽고 뽀얀 볼 살이 단단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던 거야. 작년 가을에도 나는 보았었지. 아이들이 머리에 등을 밝히기라도 한 듯 이맘때엔 얼굴에서 빛이 났다는 것을.


올가을에는 또 얼마나 예뻐질까.


아침에 깨어나면 어제보다 더 뽀얗게 차오른 볼 살이 하도 예뻐도 나는 그만 그 볼에 입을 맞추고야 말았네.’


그러나 어김도 없이, 가을은 말 못 할 슬픔을 함께 가져오기도 했었다.


‘애만 태웠었지. 늦가을, 서둘러지나가 버리던 늦가을의 밤 들, 나는 매일 밤, 오지 않을 그 사람을 기다리며 그렇게, 애만 태웠었지.


겨울이 막 들이닥치기 전, 늦가을 밤부터 나는 그렇게 오지 않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혹시 이제라도 올까, 애만 태웠었지. 늦가을 밤들은 느리고 무거워서 느리게만 지나갔기에 언제나 어느 밤보다 더 춥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밤은 가버리고 언제나 속절없이도 미명이 어둠을 갈라놓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네.


해가 나오기 시작했던 거야. 나는 그렇게 늦가을 밤부터 오지 않는 그 사람을 기다리다 애만 태웠었지. 혹시나 하던 작은 바람은 헛된 희망이었다는 걸 알고 나는 그날도 낮 동안 내내 감기 앓는 아이처럼 기분이 가라앉았었지.


슬픔도, 미움도, 그리움도 모두 다 떠나간, 사랑했다고 여겼던 그 사람에 대한 원망도, 그렇게 빼먹지 않고 새벽이 돌아오는 것처럼 늦가을 밤들은 속절없었어. 그렇게 지나가 버렸지. 어김없는 환멸을 보고야 말았지만, 더 이상의 눈물은 흘리지 않았었지.


떠난다는 건, 사랑의 증거는 아닐 거라고 그 밤 들, 발끝이 시려오는 그 밤을 나는 그렇게 꽉 채웠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텅 비었던 그 밤을 지나고 나서야, 그렇게 한참 오랜 후에서야 알게 되었었지.


늦가을의 속절없는 밤, 나는 울지 않았지만 울고 싶었다네. 울지 못했지만 울고 싶던 밤 들이 있었다네.’


11월 직전이다. 이미 문을 열면 힘이 센 찬 공기는 집안으로 밀치고 들어 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에게는 그걸 막아낼 힘이 별로 없었다. 다만, 달래고 타일러서 조금이라도 순해지도록 할 뿐이었다.


2019. 11. 07.


숨지 못하는 은행나무


“엄마! 은행나무는 숨지도 못하면서 눈치도 없는가 봐요. 방귀를 참을 줄도 모르는가 봐요.”


막내 유치원으로 가는 길에는 키 작은 숲이 있다. 어차피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려면 속도를 낼 수가 없으니 아이와 나는 가까운 데부터 먼 데까지 눈을 돌려가면서 숲을 구경할 수 있다. 여름 내내 상록수 가운데 있던 은행나무가 가을이 오자 제 몸에 노란 물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나무를 알아본 막내는 초록빛 가득한 상록수 틈에서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나무를 쉽게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아파트 가로수 길을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은행 열매를 보고 은행나무가 눈 응가라고 냄새 한번 지독하다고 말을 했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은행나무는 봄부터 여름이 갈 때까지는 참았을 것이다. 제 방귀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은행나무는 가을이 오기 전까지는 그 마려운 방귀를 참느라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얼굴이 온통 파랗게 질릴 때까지 참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눈길에서 용서와 사랑이 전해지는 가을볕을 만나고서야 단번에 참았던 숨을 쉬고 본래 제빛으로, 어여쁜 노란빛으로 몸을 물들이면서 그 열매를 떨군 것인데 은행나무는 이 가을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니 그 이파리와 열매를 한꺼번에 떨구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채로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긴 겨울을 참아낼 준비를 마치면 겨우내 봄과 여름 동안 상록수 틈에서 숨과 방귀를 참아낼 인내심을 키울 것이란 걸 안다.


내 아이는 그걸 알까? 아이 말대로 잘 숨지도 못하면서 눈치도 없는 게 은행나무라면 최소한 타인의 상처를 술상의 안줏거리로 삼는 인간들보다야 몇 배는 훌륭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마도 그건, 참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채로 그냥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쉽게 타인의 상처를 웃음거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들이 과연 인내심과 배려라는 것을 알기나 알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이 순간, 강둑의 억새가 백발의 머리를 모두 한 방향으로 숙이고 있는 것은 바람결에 순종하며 거스름 없이 잘 지나다니길 바라는 배려가 하찮은 식물에게도 숙연한 마음이 드는 건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더 공고히 해야 한다는 그런 다짐의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순간, 모든 것이 더 좋을 것도 없다고 느낀다. 설령, 더 나빠진다고 해도 또 어떤가. 내가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지낼 수 있다는 이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이미 좋고 나쁨의 기준은 나를 벗어나 버린 지 오래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단히 기쁜 것도, 그렇다고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닌 그저 고요하게 흘러가기만 한다고 해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바로 삶의 보편성이라고 느낀다.


낮에 우연히 오래전에 알고 있던 직원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인접 경찰서 생활안전계장으로 있다고 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이미 책까지 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 있다는 이유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아주 우연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같은 대학교에 다녔다는 것, 학번이 같다는 것, 서로의 취미 – 책을 읽고 글을 쓰기를 열망하고 또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 그리고 더 우연한 사실은 대학 3학년 때부터 같은 하숙집에 살던 역사교육학과에 다니던 언니가 사실은 자기가 짝사랑했던 첫사랑이었다는 것,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와 고백을 했을 때, 이미 자기 동기와 사귀는 줄도 몰랐다는 이유로 첫 휴가를 나와 죽도록 맞기도 했다는 것, 그 언니의 이름은 영숙이였다. 인천이 본래 집이었는데 인천시 공무원이 되었다고만 알고 있는 것도 우리들의 같은 정보였다. 세상 참 좁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1년 휴학을 했던 그 언니는 우리보다 선배였지만 같은 해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그 당시를 회상해 보자면, 언니네 과가 먼저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가 입었던 검은 색 정장을 빌려 입고 비슷한 교정의 한 자리에서 비슷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 옛날 기억으로 잠자던 또 다른 기억들이 나를 깨워 주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시간을 보낸 것이고 채운 것이라 여긴다. 지난 시간은 아무리 기쁜 일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슬픈 일이라도 어떤 계기로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기억 속에 잠잔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기억을 잠재울 줄 알고 가장 분명한 정답을 보여준다는 것을, 나는 또 알았고 또 확인했다.


내가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너는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나도 태연하고 침착하게 얼굴에 미소까지 지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고 볼 수도 있었어. 너의 미소 속에 감춰진 슬픔을, 지난밤들, 오래전 날, 너는 내게 미안하다면서 슬프게도 울고 있었다는 걸. 그 기억이 내게는 영원히 잊히지 못할 상처로 남게 될 줄 그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어. 왜냐하면, 그러기엔 우리 모두 조금씩은 늙어 있었고 그래선지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오늘 낮의 일을 가만히 떠올려 보자니, 상처란 건 결국 준 사람과 받는 사람이 뒤바뀌어버리기도 하고 누가 주고 누가 받은 것인지조차 분간이 안 되게 되는 것 같더라고. 그렇게 상처는 변해가는 거야. 그 상처가 마음속 작은 별이 되고 그 빛도 언젠가는 완전히 꺼져버리게 될 거라서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여기게 될 거야. 누구나 그래. 누구나 그래, 사람은. 시간에 구속받고 그 힘에 저항할 수는 없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지. 참 다행이야. 그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겨울이 오면, 펑펑 눈이 내리는 날, 한밤중이라도 상관없이 그 눈을 맞을 거야. 하염없이, 머리에, 내 어깨에 눈이 소복이 쌓일 때까지. 나 혼자서 그렇게 흰 눈을 맞을 거야. 그러면 왠지 상처가 마음속 작은 별이 될 것 같아. 그러면 작은 별도 곧 빛을 잃을 테고, 그러면 더는 슬프다고 느끼지 않게 될 거야. 그래.


문득, 대학교 1학년의 첫 눈이 생각났다. 10분의 쉬는 시간만을 두고 강의 동을 바꿔 들어야 하는 수업 전에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은 팝콘 기계에서 넘쳐 흘려 쏟아져 나오는 팝콘들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온 교정을 하얗게 뒤덮어 놓았었다. 그날은 11월 1일이었다. 좀 이른 첫눈이었다. 그래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일 테지만. 그날 나는 언제나 짝꿍처럼 다니던 그 동기와 다음 수업을 빼먹었다. 스무 살, 11월 1일의 첫눈으로 맞은 함박눈은 우리의 생각까지 온통 흰색으로 물들였고 그다음, 그 시간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조차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옷이 젖을 때까지 눈을 맞으며 교정을 걷고 또 걷고 걸었었다. 아직은 숨어 있던 늦가을의 온기가 내린 눈을 금세 녹아내리도록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치 이성을 잃고 꿈을 꾸는 사람처럼 조금은 처연해 보일 정도로 그렇게 교정을 걸었다. 눈이 그치기 시작할 때 서로 상의하지도 않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학생회관 작은 카페로 들어가 연기가 피어나고 계피가루가 솔솔 뿌려진 라떼를 마셨다. 입술에 묻은 거품은 11월의 첫눈처럼 금세 커피에 파묻혀 꺼져버렸다. 그날과 무척 닮았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날도 나는 그렇게 느낄 수가 있었다.


올해 첫눈이 오는 날, 나는 구경도 하지 않고 남들처럼 사진도 찍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이 맞는다면 무작정 가장 가까운 길을 걸을 것이다. 아니 혼자라도 괜찮을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짧은 길일지라도 꼭 그렇게 눈을 맞으면서 걷고 싶다.

이전 17화17. 무뎌지는 것들, 그래서 더 단단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