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성숙해져가는 우리

by 김현이

19. 성숙해져가는 우리


2019. 11. 12.


평생을 십 대처럼 살라고 한다면 정말로 좋을까요.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렴.

-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스콧피츠 제럴드


아홀로틀 – , 멕시코의 걸어 다니는 물고기, <11. NOV. 2019. CNN Science>에 양 갈래머리를 한 듯 분홍빛의 아홀로틀 사진과 함께 불치병 치료에 대한, 획기적 연구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나는 사진이 하도 앙증맞고 귀여워 아이들에게 보여줄 심사로 먼저 스크랩을 해 뒀던 것이지만 기사를 읽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아홀로틀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지 조금은 망설이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 그것은 심각하게 치료 불가능한 환자에게 접목하여 치료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100세 시대라고 하는 마당에 60대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따른 사회적인 문제들로 다양한 대책 마련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더 오래 살 수 있는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물론, 나도 사람으로 한 번 태어났으니 남들 사는 만큼은 살고 싶고 또한 그들이 누리는 건강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 바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학계의 이러한 노력을 매우 칭찬하며 지지하나, 무엇인가 자연의 힘을 역행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로도 개봉된, 스콧피츠 제럴드의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다소 충격적인 인물의 일생의 일화를 담고 있다. ‘일흔의 나이로 태어나서 영세로 죽는다.’ 과연,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언제여도 결코 늦은 때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 문득, 글을 쓰고자 했을 때 글로 쓸 만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차츰 지나가면서 내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었다. 무엇이라도 글로써 쓸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고. 인생이라는 것도 태어나서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도 결국은 그 누구의 것이라 해도 가치가 없거나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여긴다. 더 건강하고 풍족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욕구라서 조금도 비난하거나 반박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일정한 기준을 두고 좋고 나쁨이 좌우되어 평가받는 그런 삶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나의 심금을 울렸던 한 마디 – To be whoever you wanna be – 바로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사람 말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만일 누군가 내게 평생을 십 대처럼 늙지 않고 살도록 만들어 줄 테니 마음속의 변화는 제약받는다고 한다면 나는 그냥 쉽게 늙어가는 쪽을 과감하게 선택할 것이리라.


막내와 분리수거를 하고 돌아오던 밤길, 동쪽과 남쪽 하늘 가운데 둥근달이 어여쁘게도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막내는 ‘엄마! 달을 보면 소원을 빌어야 해요.’라고 말해서 우리 둘은 가던 길, 놀이터 옆에 잠깐 멈추고 둥근달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막내는 큰소리로 소원을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가야! 소원을 빌 때는, 제제 마음속에 사는 작은 새에게 이야기할 때처럼 속삭이듯 말하는 거란다.’ 하니, 아이는 두 손을 모으고 둥근달을 쳐다본다. 집에 오면서 큰아이, 작은아이가 보았을 저 둥근달을 이제는 막내와 내가 보고 각자의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엄마는 알고 있다. 분명히 큰 아이들도 저 둥근달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란 걸. 막내가 소원을 다 빌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둥근 달님에게 딱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지금 제 옆의 아이가 빌고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하고.


최고의 감동적인 순간은 글로 써낼 수 없다, 글로 써진 순간 이미 최고의 상태는 내리막으로 접어든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가장 의미 있게 표현해내려면 이미 그때부터 인간의 뇌는 이성적으로 생각해야만 가능해진다. 최고의 낭만이란 마음만으로, 오롯이 감정만으로 느끼는 형언 불가능한 상태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단, 글로써 그 순간을 묘사해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그 경험의 장본인이 오래 기억하기를 원해서이고 다른 이유 하나는, 타인에게 그때의 감정을 알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라고.


며칠 전 새벽, 알고 지내는 언니에게서 ‘너는 연꽃과도 같아’하는 문자를 받은 후 지치고 힘든 그 날들에 다시금 기운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궁창에 온몸과 뿌리까지 담근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해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녀의 자태는 감탄하기마저 그지없었다네. 그녀가 말이라도 하려 입을 벌리는 순간 그녀의 향기로운 내음과 우아한 모습에 모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말했을 정도였지. 그녀는 물벌레와 모기떼들에 둘러싸여 평생 괴롭힘에 시달렸지만, 그 질퍽한 시궁창에 몸을 담그고 산다는 것이, 그 하루살이 떼를 견뎌낸다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또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평생토록 단 한 번도 그 웅덩이를 떠난 적도 떠나갈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네. 그래도 언제나 그 모습과 향기만큼은 고결하고 우아하고 부드러웠어. 어쩐지 내 모습을 닮은 그녀, 나는 그녀를 연꽃이라 부르네.’


작은 아이가 지난 주말 산책길에서 나에게 한 말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죽는 날까지 가을 산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하고 마음 뭉클해져 올 것이다.


‘엄마! 산에 온통 무지개가 떴어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나무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정말로 예뻐요. 앞산에 무지개 나무가 이렇게도 많았다니. 다음에 또 산책 나와요. “


한 때, 몸과 영혼이 완벽하게 조합된 형태를 무지개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 물의 담즙과 빛의 산란 조화로 빚어낸 덧없는 속임수. 가을! 무지개 나무도 사계절의 덧없는 속임수일지라도 나는 기꺼이 내 아이들의 말소리에 속아주리.


이것이 바로,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 그냥 바라보면서 그렇게 들어주고 바라봐 주면서 속아주는 것. 그러면 어느 순간에 기적처럼 내 앞에 훌륭한 선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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