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삶의 이유

by 김현이

20. 삶의 이유


2019. 11. 13.


읽고 쓰기를 통한 삶의 극복, - 뜻과 의미를 알게 될 거라고 믿어요.


계절이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도 비가 자주 내린다. 세차지도 그렇다고 빗방울이 소낙비처럼 크고 굵지도 않으면서도 마치 납 가루가 섞여 있는 것처럼 무겁게 내린다. 그냥 저절로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기만 하는데도 내 눈에는 그 낙하마저 힘겹게만 보인다. 이제 겨우 예쁘게 몸단장을 마쳤는데 비를 맞고 서 있는 가로수의 나무들이 쓸쓸하게 보였다. 가는 가지가 이파리들을 떨굴 때마다 파르르 떠는 것도 처연하게 보여 왠지 내 마음도 아려왔다. 11월은 가을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조금 늦게 가면 안 되느냐고 애원하는 세 살 때의 내 아이들의 모습을 닮았다. 유치원 방학, 보름 정도 아이를 친정집에 맡겨야만 했을 때 눈치가 있는 큰아이는 언제나 나를 그렇게 눈으로 엄마의 등을 떠밀었고 작은아이는 아무 말 없이 형과 동생 눈치만 살폈고 막내는 내 옷자락을 붙들고 우는 것을 겨우 친정엄마를 속여 떼어놓았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아이 셋을 엄마에게 맡겨놓고 혼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주 잠깐 슬프다가 곧 잊어버리고는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너무나 조용해진 내 주변이 낯설고 무섭다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을 데리러 친정에 다시 갈 때는 첫날 돌아올 때 살짝 울었던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로 방학은 왜 빨리 끝나는지 아쉬움을 느낀 적도 있었는데 인제 보니 11월의 요즘은 가을을 붙들고 있으면서도 차라리 어설프게 춥기만 할 거라면 차라리 흰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겨울이 어서 와 주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드는 것처럼 쉽게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쨌든 젖은 낙엽이 길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모습에 그때가 생각나서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아는 언니는 골프강사다. 이미 오래전에 프로를 땄지만 어떤 여건들이 언니를 그 자리에 주저앉게 했을지는 잘 알지는 못한다. 내년이면 마흔의 중반으로 들어서는 나이인데 시니어 대회에 출전할 준비를 한다고 했다. 내년 대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어서 꼭 유명해지길 바란다는 말이 그 언니의 현재 생활이 어떤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러면서 나도 내 글이 유명해지면 좋겠다며 격려의 말을 해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기분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었다. 블로그에 글을 싣기 전부터 일기처럼 조금씩 뭔가를 쓰기 시작한 것이 막내가 태어나고부터, 어느새 시간으로 치자면 몇 년이 지나간 뒤였다. 내가 글에 욕심을 부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큰아이가 1학년 때, 도 교육청에서 초중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이미 선정된 책을 읽고 쓴 독후감을 백일장에 응모하게 된 게 우리 지역에서 뜻밖에도 유일하게 금상을 받았던 경험이다. 그때, ‘나 같은 사람이라도 글을 쓰면 상을 받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작은 공모전들에 그동안 썼던 글들을 보내기 시작했고 그 뒤로도 몇 번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때 상을 받지 못했었다면 나는 단 한 번도 내 글이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내 블로그 글이 최고의 인기 글에 오르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읽기 좋아하는 글을 쓸까,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자꾸만 사실에 허구를 보태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한동안 글을 써도 블로그에 올리는 것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 망설이는 나는 아마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가!’ 싶었기에 대단한 작가도,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작가가 아니면서도 어떤 자괴감에 빠져 괴로워했었다. 몰랐었다. 바람이 욕심이 되고 욕심이 생기면 순수함도 퇴색된다는 것을.


그러나 어쨌거나, 나는 기어이 네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 책마다 적은 분량도 아니며 상당히 내용이 있는 볼륨 있는 책을 냈다. 그러나 나는 또 갈등했다. 솔직히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내 책이 유명해져 많은 사람이 읽게 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유명해져서 내 생각이 속속들이 노출돼 버리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이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하는 질문을 받고서 나는 대답해 주지 못했었다. 나는 잘 팔린 책을 쓴 사람도 아니며 그렇다고 내 책이 잘 팔려나가길 바라면서 책을 출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은 ‘저는 이미 내 아이들에게 돈으로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실패한 것 같아요. 그 대신 엄마가 자기들을 어떻게 키우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긴 책을 남겨주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정했답니다.’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그는 내 말에 낭만적인 꿈이라며 칭찬했지만 나는 그에게 그런 말을 들으려고 했던 말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전부터도 이미 그렇게 여기고 있었는데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들에게 공감과 어떤 울림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고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차곡차곡 글을 쓰는 건 내 아이들과 나 자신을 위해서다.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해서다. 그러니 글로써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 내 꿈과는 맞지 않는다. 바로 내 앞에 놓인 현실의 고통을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방법으로 극복하면서 조금씩 삶의 의미를 알고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생이란 것도 그렇게 보면 썩 대단히 고되거나 슬픈 일은 아니라고 느껴지는 건, 11월이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려워 비를 뿌려 그 화려한 슬픔을 아무리 감추려고 발버둥 친들 겨울은 이미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조금은 덜 힘들거나 덜 슬퍼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를 뜨겁게 열광시킨 흥분이 없다 해도 그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간직할 수 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가을이고 겨울이기에 나는 이 11월, 비가 내리는 스산한 11월을 슬퍼하지도 걱정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정상적인 과정일 뿐이라고 여긴다. 잎을 떨어뜨린 나무는 겨울을 잘 견뎌내고 다시 싱싱하고 보드라운 이파리를 쏙 내밀게 될 것이라고 꼭 눈으로 보지 않더라고 아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이 순간, 어서 흰 눈이 내려 주길 조바심내지도 않는다. 저절로 내려올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밤들, 수없이 많은 밤 들을 기도했다. 한 번 만 도와달라고. 제발 잊게 되길, 잊히게 해 달라고. 하지만 이제는 기도하지 않는다. 시간은 사랑도 잊히게 하듯 슬픔 또한 잊히게 한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으니.


작은 아이가 오늘 아침,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받아쓰기 공부를 하겠다며 글자를 읽었다. 통 문장에서 조사와 낱말들이 빠져버린 이 빠진 받아쓰기의 낱말들, - 거미줄, 나비, 가을, 겨울, 약속해요, 그리고 믿어요.


아이가 읽는 이 단어들이 기쁨이 되길, 감동으로 전해져 오길, 믿음을 주는 힘을 주기를 믿는다. 아이에게 책 속의 글자들이 마냥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별빛이 아닌 뜻과 의미가 있는 별이 되어 다가와 주기를 바라고 믿는다.



P.S. 나는 글을 마칠 때 결코 ‘끝’이라고 쓰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쓰기란 마치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는 일처럼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슬프다면 슬픈 그대로, 기쁜 일도 기쁨대로, 행복은 행복함을 느끼는 그 느낌대로 쓰기를 통해 내 삶을 이어나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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