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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곤지 Oct 29. 2022

아이는 사랑하려고 낳는 거래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왜 아이를 낳았나요?


글쎄. 말문이 막혔다. 


일을 할 때나, 어떤 선택을 내릴 때 항상 모든 일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좋아했다. 이거 왜 해야 하죠,라고 묻다 보면 일하는 이유가 드러나기 때문에 좋아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왜 낳아야 할까?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어렴풋이 나를 닮은 아이가 이 세상에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로망만 있었을 뿐.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 뒤따라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이를 낳은 이유는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고민해도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닐 것 같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내 삶의 모든 부분은 아이로 인해 바뀌었다. 회사 스케줄에 맞춰 살던 나였는데, 이제 일상은 아이와 함께 24시간 돌아간다. 나 중심의 여유로운 삶을 지금껏 즐겼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아이에 맞춰 결정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보다는 아이랑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와 갈 수 있는 곳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일상의 모든 것이 180도 뒤바뀌고, 선택의 기준에서 '나'라는 사람은 상당 부분 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나'의 자리에 대신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막연히 아기를 낳아 키운다는 것에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보니, 커리어와 아이를 키우는 삶 둘 중에 하나는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육아에 대해서 '행복한 지옥'이라느니, 부정적이거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였을까. 아직 천둥벌거숭이 같은 내가 감히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을까. 내 인생 하나 책임지는 것도 버거운데, 작고 소중한 생명체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나면 내 인생은 이제 끝-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까 봐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덮었다. 자신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외출에 신남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를 낳고 보니 반대다. 


내가 책임질 수 있어서 낳는 것이 아니라, 낳고 보니 내 인생과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진다. 부모 될 자격이 있어서 혹은 그만큼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숙해졌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로 인해 나도 어른으로서 한 단계 성숙해진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내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더 입체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작았던 나의 세계가 훨씬 더 확장된 것 같다.


아이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라
사랑하려고 낳는 거예요.


최근 본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 육아' 강연에서 들었던 말.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주는 일에는 더 큰 기쁨이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흘려보내면 흘려보낸 만큼 마음속에 행복감이 채워진다고 할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꼭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 아기를 낳나요?' 질문에 이제는 대답해봐야겠다. 잘 키우려고 낳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낳은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사랑을 주는 만큼 나 자신도 함께 성장해간다고. 육아가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기에 가끔은 욱-하고 성질머리가 또 올라오겠지만,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한없이 올라오겠지만, 그때마다 다시금 내가 아이를 낳은 이유를 되새겨보아야겠다. 그래, 나는 사랑해주려고 이 아이를 낳았지. 엄마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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