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배수관이 막혔다. 어제 짜짜로니를 만들다 실수로 빠뜨린 야채 후레이크와 면 때문이었을 거다. 오늘 저녁까지 막혀 있었다. 약품을 붓고 펄펄 끓는 물을 부어도 소용 없었다. 결국 배수관을 해체하여 뚫었다. 배수관을 열어보니 끔찍했다. 기름때와 면, 양파, 콩, 그 이외의 온갖 오래된 것들이 다 있었다. 그것들을 치우고 나니 물은 아주 잘 내려갔다. 배수관이 막힌 이유는 단지 어제 만든 짜짜로니 때문만이 아니라 그 동안 내가 배수구로 버린 음식물까지 더해져 벌어진 일이었다. 배수관의 기름때를 벗기다 생각했다.
언젠가는 뚫어야 하는 날이 오는구나.
살다 보면 생각 없이 무심코 흘려 보내는 것들이 있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무심결에 흘려 보낸다. 이것들을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을까 고민한다. 이미 지나간 것이니 잊어버리려는 사람과 마음에 두는 사람이 있다. 그 둘은 결국 언젠가 그것들을 다시 퍼낼 때가 온다. 흘려 보낸 것들을 다시 주워담거나 퍼낼 때는 화로 다가 온다. 쉽사리 넘어갈 수 없다.
실수는 제때 발견하지 못한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야 실수인 걸 알 수 있다. 실수를 제때 발견한다면 실수할 일은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실수가 겹겹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는 날이 온다. 안절부절하는 자와 잊고 뒤돌아버리는 자 모두 대가를 치르게 된다.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세상은 내가 저지른 실수에 눈감아주지 않는다. 거세게 채찍질하고 몰아세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실수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수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실수를 하고 대가를 치르고 반성을 하고 나서야 디딤 발을 뻗을 수 있다. 인간은 모두 그렇게 성장한다.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대가를 치르지 않는 실수를 마주하기도 한다. 누군가 눈감아 주거나, 아무도 모르거나, 감추거나 하다 보면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실수들은 대개 쌓이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대가는 처음 했던 실수와는 다르게 아주 크다. 내 양심과 옆 사람의 눈을 잠깐 속일 수 있겠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들통나게 되어 있다. 이럴 때 보면 세상은 꽤나 정직한 것 같기도 하다.
저녁 식사로 하이라이스를 만들어 먹으려다 내려가지 않는 싱크대의 물 때문에 포기했다. 기껏 밥도 다 지었더니 물이 내려가지 않아 저녁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뚫고 먹자고 생각했지만 뚫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수관을 직접 닦고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입맛이 싹 사라져서 스윙칩이나 씹었다.
그 동안 배수구로 음식물을 흘리지 않았더라면 오늘 하이라이스를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보다 배수관에 기름때가 잔뜩 낄 일이 없지 않았을까. 헛구역질을 해대며 청소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 음식물을 흘려 보내고 무심히 지나쳤던 나를 돌이켰다. 그때 물을 조심히 버렸더라면, 잘게 썰은 양파를 따로 건져내 버렸더라면, 음식물 찌꺼기를 따로 버리는 통을 만들었더라면 오늘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텐데.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