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탓 말고 게임계를 되돌아보자
2014년, 클래시오브클랜 (이하 COC)이 TV광고를 시작한 이후 국내 대형 퍼블리셔들도 속속 모바일 게임의 TV광고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TV 광고는 이어지고 있다. 때로는 신규 게임을, 때로는 이미 출시한 인기 게임의 생명 연장을 꿈꾸며 계속되고 있는 모바일 게임 TV 광고. 한때 마약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게임이 TV광고까지 하는 시대다. 천박하게 말하자면 TV에서 약을 파는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TV광고에서 모바일 게임이 등장하던 그 시기, 즉 2014년부터 개인적으로 모바일 게임이 시들해 지더라. 시들해진 이유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짧게 요약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의 궁극적인 목표가 재미를 추구함일진대, 요즘 게임은 유저들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주 임무보다는 ‘유저들의 주머니를 빨리 열자’라는 임무에 매우 충실한 듯 하다. 재미 요소 제공은 마치 ‘돈 냈으니 옛다 재미좀 줄께’ 정도라고나 할까. 문제는 ‘줄께’라고 주는 재미가 더럽게 재미 없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모바일 게임이 재미없어졌을까?그리고 모바일 게임의 TV광고 시작과 모바일 게임이 재미없어진 것은 관계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 풀어보자.
모바일 게임 업계에서 모바일 게임의 생명이 짧은 이유는 항상 ‘유저 성향’이라고 단정짓는다. 즉, 생명이 짧다는 것을 아예 고정관념화 하다보니 게임 출시 초반에 최대한 수익을 거둬야 하고 출시 이후의 추가 컨텐츠는 '게임이 뜨면 그때 생각하지'로 귀결된다. 이 때문에 모바일 게임의 BM은 매우 공격적으로 설계된다. 출시 첫날부터 캐시 아이템 세일에, 초보 패키지에, 한달 간 캐시아이템을 매일매일 증정하는 이벤트들이 게임 접속만하면 우수수 팝업창으로 등장한다. 하루살이같은 모바일 게임, 1분 1초라도 더 유저들에게 캐시아이템을 판매하는데 온 힘을 집중한다.
여기서 잠깐. 모바일 게임 유저들의 특징은 '한 게임에 집중하기 보다는 동시에 복수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 가깝지 단지 '한 게임에 쉽게 질리고 바로 다음 게임으로 넘어간다'와는 개념이 다르다.
생각해보자. 분명히 수년 전에 비해 모바일 게임에 과금하는 비율이나 금액은 커졌고, 모두 아다시피 한번 과금한 게임은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 망정 곧바로 게임을 삭제하지는 않는다 . 모바일 게임 생명력이 짧은 것은 pc게임에 비해서 짧은 것이지 게임 자체의 재미나 매력을 어필할 시간마저 없는 짧은 생명력은 절대 아니다.
즉, 모바일 게임의 생명력이 짧기 때문에 출시 초반 공격적 BM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 아니라 출시 초반부터 돈 돈하면서 유저들을 몰아붙이니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선후 관계가 잘못되어있다. 다시말해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유저가 떠나기 전에 하나의 아이템이라도 더 팔기위해' 라는 목적이 게임 자체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모바일 게임의 생명력은 이와는 또다른 이유에 의해서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유저 성향으로 치부하지 말고 게임 생명 단축의 원인이 되는 게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해보자.
먼저 빈약한 컨텐츠다.
장비 업그레이드, 캐릭터 강화, PvP및 일일 던전, 그리고 랜덤하게 열리는 이벤트 던전.
요즘 등장하는 RPG의 게임 컨텐츠는 이 정도로 요약된다. 기본적으로 RPG 게임은 배경 스토리가 바탕을 깔고 그 위에 전투, 장비, 캐릭터, 직업 등의 세부 컨텐츠가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최근 모바일 RPG 게임에서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작아지고 있다. 배경 스토리는 단지 구색만 갖출 뿐 장비 강화, 캐릭터 성장, 그리고 또다른 직업 및 캐릭터 추가로 인한 또다른 장비 강화가 이어진다. 아, 스토리가 있긴 하다. 봉인된 악마가 출현했고 이를 막기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고대의 영웅을 다시 불러오고 뭐 이런 천편일률적이고 흥미를 불러일으킬 가능성 제로에 수렴하는 비슷비슷한 스토리.
게임을 진행해 나가면서 볼만한 스토리도 없고, 그 전에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금이 강요되는 시점에서 과연 게임에 머무를만한 마음이 생길까? 맛도 보기전에 선불을 요구하는 음식점도 아니고.
빈약한 컨텐츠는 유저 이탈을 가속화하는 가장 큰 이유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과금 강요 시점이 문제다.
게임 배경 스토리와 게임 방법 등 튜토리얼이 지나고 나면 유저만 혼자 덩그러니 남는다. 자동사냥형 RPG의 경우 다음 맵으로 이동해서 자동사냥 토글켜고 바라만 보면 된다. 잠시 후 더이상 자동 사냥이 힘들어지고 급기야 수동으로 플레이해도 아예 맵 클리어가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때가 바로 첫 번째 허들, 즉 과금 시점이다.
이 과금 시점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최근 출시된 모 대형 액션 RPG(라 하더라)의 경우 게임 사전등록 등으로 인해 수많은 장비 아이템을 선물 받고, 열쇠, 즉 스테이지를 오픈할 수 있는 아이템도 수십 수백개 쌓여있지만 약 5레벨, 10레벨, 시간으로 따지면 10분, 30분 쯤 되는 시간이 경과하니 더 이상 원활한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해졌다. 지니고 있는 아이템으로는 맵 클리어가 불가능한 상황, 즉 과금을 강요받는 시점이 닥치게 된 것이다.
게임의 매력이 단 30분 내에 모두 소모되는, 참으로 토끼같은 게임이다.
컨텐츠가 부족하고 과금 강요 시점이 빨라지면 특별히 게임 내에서 할만한 것도 없는 가운데 과금을 강요받게 되는데 과연 이 상황에서 ‘그래 이게임, 나 애정있게 한번 질러보는거다’라는 생각을 갖게 될까? 남녀가 서로 만나 통성명 겨우하고 이제 좀 친해져 보려고하는데 ‘사귀죠’라고 하는거랑 뭐가 다를까?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으니 예를 들어도 꼭 이딴 예만 들게 된다.
어쨌거나, 친해지기도 전에, 애정 갖기도 전에 과금을 요구하는 공격적인 BM (비즈니스 모델) 이 유저를 지치게 만들고 이로 인해 게임 생명력이 짧아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당연히 마케팅 분야도 고도화되었다. 하지만 고도화된 마케팅 방법은 아직도 사전 예약과 게임 공식 카페, 그리고 각종 이벤트를 토대로 하고 있다. 여기에 TV광고가 곁들여진 것이다. 즉, TV광고로 인해 마케팅 비용이 과다하게 책정되면서 투자된 마케팅 비용 회수를 위해 BM은 더욱 공격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고 만원 단위의 과금이면 충분히 게임 컨텐츠를 즐길 수 있었던 모바일 게임이 수십만원정도는 과금을 해야 게임 내 컨텐츠를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사실 모바일 게임의 과금은 ‘시간’과 ‘현금’을 바꾸는 것에서 기초한다. 10분에 1개씩 충전되는 열쇠로 입장할 수 있는 던전을 과금만 하면 언제든 입장할 수 있는 것이 예시가 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공격적인 BM은 여기서 약간의 눈속임을 한다. 열쇠는 수십 수백개 제공하되, 그 열쇠로 입장한 던전의 난이도를 순식간에 올려버리고 그 속에서 유저들의 과금을 유도한다. 쉽게 말하면, 무료 입장이되 팝콘 가격을 십만원쯤 받는 기이한 극장이 된 셈이다.
여기에 TV광고로 인한 마케팅 비용 지출을 메우기 위해 난이도 급상승으로 인한 강제적 초기 과금이 더더욱 가속화 된다. 결과적으로 모바일 게임의 TV광고가 활성화 되면서 공격적인 강제 과금이 가속화되고 이로 인해 상당한 초기 수익이 발생한 것을 목격한 기타 게임들마저 위와 같은 흐름의 BM을 설정하게 된다.
잠시 정리하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남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과금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자체를 원활히 하기 위해 과금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즉, 일부 게임의 경우 과금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얘기한 모바일 게임이 재미없어진 이유가 TV광고와 상당히 관계가 있음은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고나 할까.
COC의 과감한 TV 광고는 이미 상당한 유저수와 매출을 확보한 상태에서 더욱 그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홍보였다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직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유저, 그리고 예전에 게임을 플레이해본적이 있지만 흥미를 잃은 유저가 그 대상이다. 그리고 그 광고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다. 게임 캐릭터를 이용한 광고 내 상황 설정은 그 캐릭터들을 플레이하는, 혹은 플레이할 유저들이 게임과 캐릭터에 애정을 갖도록 유도한다.
https://youtu.be/FWrcOnT_BxA?list=PLt_v19rJtgpONMLbSZjMwV8Pgmv68jEFy
하지만 한국 모바일 게임의 TV광고는 이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최근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 TV광고가 신규 게임에 집중되어 있고 이러다보니 게임 내 영상이 아닌 별도의 동영상, 혹은 게임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단순한 CG가 주를 이룬다. 화려한 전투영상에 게임 이름만 크게 화면에 박으면서 유저들에게 게임을 각인시킨 후 출시 때 많은 다운로드 수를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COC 선례와 한국 모바일 게임 TV광고의 차이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몇몇 게임의 경우 이런 방식의 TV 광고가 주효했고 최소한 사전등록 및 출시 초기 다운로드 수 확보에는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뜬구름 잡기 식의 광고와 실제 게임 사이의 괴리감은 초기 유입 유저의 누출 속도를 더욱 가속화 했고 위에서 언급했던 부족한 컨텐츠와 가속화된 강제 과금요소와 맞물려 모바일 게임 자체가 유저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수억 혹은 수십억대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그 비용을 초기 과금에서 메우려는 퍼블리셔 및 개발사의 사업가적 마인드, 이는 곧 게임의 재미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BM에 초점을 두는 게임 기획으로 연결되고 이 조악한 생산품을 소비하는 게임 유저들은 점점 모바일 게임 시장을 벗어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게임도 당연히 장사다. 투입한 인적 물적 자원을 게임 출시 이후 최대한 빨리 회수하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을 노려야 하는 절대 자본주의 생태계의 일부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죠' 당연히 맞는 말이고 적절한 이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수익 설계 위주의 모바일 게임 시장이 건전하고 올바른 시장일까?
적은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고도 상당한 수익을 거두었던 초기 모바일 게임들. 이 게임들의 성공 사례를 보고 가속화된 투자회사들의 자본 투하와 대형 퍼블리셔들의 개발 자회사 확대,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개발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이제 그 한계에 달한 듯 싶다. 재미는 저 멀리 제쳐두고 많은 다운로드, 많은 과금에만 목적을 둔 비정상적 시장에 대해 이미 유저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스킨만 바꾸고 거의 내용은 비슷한 게임들의 홍수 속에서 새로 다운로드 받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게임 삭제를 반복하고 떡밥과 실망이 거듭되는 가운데 자동사냥과 무기 강화, 캐릭터 한계돌파라는 단어만 나와도 질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터. 제발이지 TV광고 이런거 안해도 좋으니 몇개월, 몇년 진득하게 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게임은 없는 것일까? 나도 헤비 과금러까지는 아니지만 월 10만원 이상의 캐시아이템 결제는 꾸준히 했던 경력이 있었는데 말이다.
다행히 그런 게임들이 있긴 하다.
이미 분량 조절 대실패이므로 나머지는 다음 이시간에.
커즈 유알 마 거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