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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의근육 Jul 05. 2023

휴직 중 회사에서 전화가 오다

사람은 떠나도 기록은 남는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쓰는  비속어 중 '똥 싸놓고 간다'라는 말이 있다.  전임자가 일을 엉망진창으로 해 놓고 다른 부서로 발령 나거나 퇴직을 했을 때, 후임자가 뒤처리를 하느라 개고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감은 다소 불편하고 민망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이보다 찰떡같은 표현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주무관님들은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성실한 공무원들이다. 업무를 잘 몰라서 곤란했을 때 팔 걷고 도와주는 천사 같은 동료도 많았다. 직급을 떠나 고마운 선배나 동료가 주위에 있기에 그나마 순탄한 공직 생활이 가능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무원 순환 보직의 특성상 업무의 승계가 많은 이곳에서는 가끔 전임자의 실수나 착오로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동료 한 명은 전임자가 기록물꼼꼼히 관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감사에 걸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무척이나 애를 먹기도 했다. 전산과 기록물, 수수료의 불일치라는 오류였는데 작은 푼돈이라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들어맞아야 하는 행정감사에 지적된 것이다.


동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야근까지 해야 했지만 정작 실수를 했던 담당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조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금전이나 회계에 대한 감사는 특별히 투명성과 정확성을 요구하기에 과거의 오류도 온전히 내 것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공무원의 숙명이다. 내가 결재받은 기안 한 장 한 장, 수리했던 신고서 한 장 한 장이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신중하고 꼼꼼하게 살펴야 뒤탈이 생기지 않고 후임자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 모르는 번호는 보이스피싱이 걱정돼 절대 받지 않는 편인데, 휴대폰에 찍힌 익숙한 앞자리를 보고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은 육아휴직으로 일은 까맣게 잊고 살던 어느 날이었다. 무려 3년 전 내가 주민센터에서 접수한 신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었다. 민원인이 의의를 제기해 3년 전 신고서를 열람했고, 심지어 수리한 담당 공무원의 정보공개를 요구했던 것이다. 민원인은 내가 잘못 처리한 신고로 인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로 인해 주민센터 현 담당자도 처리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몇 개월도 아닌 수년 전의 신고서 한 장으로 모든 화살이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새내기였던 당시 주민등록 업무 매뉴얼을 세세하게 숙지하지 못하고 통상적인 방법으로 전산처리 했던 것이 민원인에게 잘못된 행정처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간절했던 민원인은 나와의 전화 통화를 원했고, 개인정보인 연락처를 알려주지 못하는 현 담당자는 매우 난처했을 것이다. 다행히 내선을 통해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하면서 경위서를 써서 문제 해결을 위해 도와드리겠다고 하니 민원인도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상황 파악을 마치고 난 후 난생처음 경위서를 쓰는데, 실수한 부분이 몹시 창피하기도 하고 민원인과 현 담당자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참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곤란에 처해 있다는 민원인의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간절했. 몇 번이고 수정하고 고심하여 작성한 경위서는 동장님의 결재거쳤고, 며칠 후 민원인이 그 공문을 들고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얼마나 마음을 놓았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사건으로 인해 며칠 동안 속앓이도 했지만 공무원으로서 배운 게 많았다. 공적 사무에는 비밀도 시효도 없다(기록물은 중요도에 따라 5년, 10년 단위로 폐기되기도 하고 영구보존 되기도 한다). 내가 만든 사소한 오차나 실수로 인해 누군가가 곤란에 처할 수도 있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나는 다행히도 해결책을 찾아 원만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공무를 하다 보면 민원인과 큰 소리가 오갈 수도 있고, 소송과 같은 최악의 상황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창고나 지하실,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수많은 기록물을 절대 쓰레기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마치 탐정소설이나 스릴러 영화의 한 씬처럼 결정적 증거로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은 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행정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세계 3위의 전자정부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전자 기록물이든 종이 기록물이든 똥이 아니라 꽃향기를 남기는 공무원이 되려면 정신 바짝 차리거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 실록과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자랑스러운 기록의 민족이 아닌가. 사람은 떠나도 기록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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