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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nokjoo Mar 24. 2016

뒤돌아 울 거면서.

분명 슬플 거면서.

친정엄마는

일 년 전에 사우나에서 일을 했었는데

점심식사 때 반찬으로 어리굴젓이 나오면

드시지 않고 종이컵에 담아

봉지로 싸고 또 싸서 가지고 왔다.

어리굴젓은 내가 엄마 식성을 닮아

가장 좋아하는 반찬.

그걸 엄마는 우리 저녁밥상에 올리려고

하얀 종지에 옮겼다.

그런데 나는 성질이 고약해서

엄마에게 상처 긋는 말을 쏟아냈다.

사람들이 보면 어쩔 거냐고

훔쳐오는 줄 알면 어쩔 거냐고

이게 얼마 한다고 싸오냐고.


뒤돌아 울 거면서.

분명 슬플 거면서.


오빠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우리 집이 가난해져

자취방에서 하숙방으로 집을 옮겼다.

어느 뜨거운 여름,

엄마 심부름으로 오빠를 만나

하숙집에서 하루 자게 되었는데

그 하숙집 오빠 방 창문이

그 옆 건물 벽으로 막혀 있었다.

나는 스무 해 동안 살면서

그런 방은 처음이었다.

돈이 없어 선풍기도 하나 장만 못한 방에서

창문까지 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다니.

그리고 이런 사실을 건축사인 우리 아빠는

모르고 계시다니.

남자인 오빠와 좁은 방에서 자려니

우리 서로 옷도 못 벗겠고

청바지를 입은 채 누웠으니

밤새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그날은 서울의 8월 열대야가

그야말로 최고인 날.

뒤척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더위에 다시 깨서 눈을 떠보았을 때

A4용지 몇 장으로 내 옆에서

부채질을 해주면서 자고 있던 오빠.

잠결에 종이를 놓치면 다시 주워

내 쪽으로 부채질을 해주었던 오빠.

그만해. 왜 이래.


뒤돌아 울 거면서.

분명 슬플 거면서.


아빠는

살아계실 때

내가 출근하기 전에

내 밥상을 차려주고

물 옆에 비타민과 영양제를 하나씩 놓아주었다.

밥과 국이 식지 않게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데워서 차려 놓으신 밥상이

왜 나는 가끔 숨이 막혔을까.

부담스러워요 아빠.

라고 말한 나는 고약한 년.

나는 참 나쁜 년.


뒤돌아 울 거면서.

분명 슬플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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