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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27. 2024

보고는 싶고 보이기는 싫은 동창회


대학동창 들이 모여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에 여러 생각을 해본다. 나는 87학번이지만 88학번과 함께 학교생활을 했고 24년도 이니 36년 만이다.


옛 친구들 보고는 싶지만 초라한 현재의 나를 보이기는 싫은 마음이 동창모임에 나가기를 꺼리게 만든다. 너무나 초라한 인생막장의 내 몰골을 과거의 추억들 모임에 내보이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망설임 끝에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다들 여유롭고 모범적인 형태의 중년삶들을 살고 있다는 친구말에 내가 답한다. “여유롭고 잘된 아이들만 나와서 그런거야.”  친구도 내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이번엔 내가 사는 경기 북부쪽에서 갑작스레 또 모임을 가진단다. 경기 남부쪽 친구는 모임을 마친후 귀가길이 막막함을 알기에 끝나고 내가 픽업을 해서 우리집에서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 예약했다. 그 친구는 어릴적부터 강남쪽 기반으로만 크고 살아온지라 강 건너오면 기댈 연고지가 나밖에 없어서 챙김해줘야 한다.


모임을 마쳐간다는 말에 픽업을 나갔는데 어찌어찌 모임이 끝난듯 아닌듯 뒤풀이 중에 내가 등장하니 늦은밤 이었음에도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또다시 호프를 가자고 결정이 나서 결국 심야 술자리에 끼게 됐다.



옛날 모습들을 각자 기억하는 친구들끼리 서로 달라진 모습들을 확인하는데 정말 다들 (자세한 속 사정들이야 몰라도) 옛모습 그대로 곱게들 나이 먹었다. 모두에게 충격을 줄만큼 심하게 달라진건 현재 48킬로 몸무게의 나 뿐이다.


학창시절때 나를 속으로 좋아 했었노라 귀부인 마나님이 된 친구가 말한다. 예전에 결혼한 여자 후배들이 다들 나 좋아했었다고 말해서 6명으로 시직해 갑자기 신입들이 50명으로 불어난 써클의 비밀도 훗날 알았다. 오리엔테이션 강당에서 학생회에 등 떠밀려 막간 시간때우기 술에취해 벌건채로 혼자 카바티나를 연주한 효과다. 바로크 클래식 기타 써클을 만들고 써클룸이 꼭 필요했던 상황이어서 갑작스런 학생회 요구를 거부할수가 없었다.


학생회측 요구에 등 떠밀려 갑자기 오리엔테이션 시간때우기로 강당에 올라서다. 발판도 없이 낮술먹던 와중에 무작정 올라갔고 댓가로 바로 써클룸 배정받았다.


나는 바닥을 기어 다닌다고 스스로 자학하며 술담배만 즐기며 찬란한 절망을 즐기던 때인데 “그때 넌 정말 반짝반짝 빛이 났어“ 오랜 친구가 해준 말이다. 그래? 하고 생각해보니 다들 그랬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빛이났던 이유는 그땐 우리 모두가 ‘스무살’  이었던 거다.


*당시 학생식당 짬뽕이 3백원 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대부분 잘사는집 과여자애들 한테 대신 계산하라고 구걸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삼백원 이었는데..


옛 동료 친구들은 하나같이 당시 내가 인기가 많았다고 이구동성 인데.. 정작 당사자인 나만 왜 몰랐던 거냐.? 왜 다들 당시엔 4차원 이라고 놀려먹기만 하고 얘기해 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몰랐다기 보다는 미술대학 다니면서도 실제론 음악에 빠져 기타치는것 이외는 관심이 없어서 였다. 결국 나중엔 군악대 제대하고 콘서바토리움 음대로 전향까지 했으니.. 미친놈이어서 사랑해주는 사람들 마음 따윈 하찮게 여기고 신경도 안썻던게지.



나는 정말로 젊은시절 동료들 후배들 동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것 같다. 정작 그 사실을 몰랐던건 당사자 였던 나뿐이다. 사람들은 나를 4차원 이라고 놀리면서도 다들 좋아했던것이다. 25년전 헤어진 옛여친의 남동생도 누나가 아닌 내편이라고 찾아오더니 며칠전엔 옛 여친의 여동생 친구마저도 같이 놀았던 시절에 눈물이 난다며 보고싶다고 전화로 수다를 나눈다.


https://brunch.co.kr/@yemaya/336


그랬군 그랬구나..  다들 나를 사랑해 줬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네.. 아까운 청춘을 그따위로 보내고 연애 한번 제대로 하지못한 죄로 헤어진지 25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정기 구박을 받고 있다. 유학 당시에도 많은 유혹을 받았던건 나도 아는데 단한번 외부로 눈길 주지않던 철벽남이 나였다. 내가 유럽에서 온갖 바람피고 다녔다는 있지도 않은 나의 과거가 그녀의 상상 소설임을 증명할길이 나로선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하다면 그러던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여친에게 차인후, 사회생활 하면서 나를 끈질기게 유혹하던 그녀들은 다들 드라마에서나 보던 여유로운 계층 여성들 이었네. 헬기 타고 사업장 다니던 친구도 있었으니.. 가난이란 단어를 자신들 생활에선 절대 접해본적 없는 계층사람들이다. 다들 지금 내 몰골을 본다면 나와 맺어지지 않음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겠는가. 쌤통이라고 속으론 박수치는 사람도 있겠지 물론.


우리세대 여자들은 절대 자기 속 마음을 말하지 않는 성향이 강해 남자들이 알아서 캐치해야 하는데 그런쪽엔 전혀 문외한인 나같은 미련 둔탱이들도 있다. 여자들이 괜찮다는 말 그대로 믿어 버린다. 친구로써 자연스런 만남은 좋고 이성으로썬 철벽남 성향이 죄는 아닐진데 30대 시절엔 나는 그냥 결혼할 맘이 없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 맘을 가지고 논 나쁜놈이 되 있는거다. 오해 만들지 말고 당시에 그럼 이야기를 제대로 하던가. 당시엔 다 괜찮다 해놓고 다 늙어서 이제 뒤끝 털어놓음 어쩌라고 이미 다 지난 세월..


* 기념할 만한 날이나 특별한 날 꽃이나 선물 안 줘도 ‘괜찮다’ 는 여자들말은 절대 믿지마라. 두고두고 비수로 꽃는다. 무조건 진짜 괜찮다는 자필각서 공증 꼭 받아놔라. 이왕이면 증인까지..



모임을 마친후 초라한 내 행색을 받아줄 친구와 함께 우리집 마당에서 새벽 5시까지 미리 장봐 두었던 삼겹살 부대찌개등과 함께 소맥으로 또 잡다한 회포를 풀어본다. (소주는 친구혼자 마신건데그날 이전 모임까지 해서 혼자 5병 이상을 마셨다.) 모임에서 중년 나이에 자식 가정이 없고 솔로로 늙어가는건 둘뿐이다. “우린 둘다 가정 없으니 너거들에 비해 막 살아도 될 권리가 있다.” 다들 가정으로 귀가할때 우리끼리 막 나가자고  동변상련 처지를 위로한다.


나는 5시에 잠이들어 한시간 자고 6시에 깨서 기록을 남긴다.



녀석은 낮선 사람의 방문에 또다시 긴장모드가 된다. 항상 낮선 상황 행동을 한후는 식탁밑에 웅크려 나의 반응을 살핀다. 눈치를 보는것인데 그다음은 잘하는 잠복닌자 모드로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듯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혹시라도 자신이 또 어디론가 이첩되는건 아닌지 의심 하는듯도 하다.


주말인데 친구가 와서 자고 있으니 날씨와 상황 살펴서 바닷가나 보러가자는 다른 친구와 약속은 취소할수 밖에 없고 엄마 식사꺼리를 챙기는 일과 새벽까지 회포 푼다고 과한 음주를 한 친구의 해장 일정을 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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