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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Dec 22. 2017

25년만에 열어본 추억의 타임캡슐..

버리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지나간 시간들..


시골에서 올라와 집안 정리를 한달가량 하면서 생각처럼 구석구석 쌓여있는 쓰래기 살림 버리기가 쉽지않다는것을 발견한다. 가장 큰 이유는 구석 곳곳에 쌓여만 있는 살림 쓰래기들이 나에게는 단순히 안쓰는 오래된 낡은 물건들일 뿐이지만 어머니 본인에게는 하나하나 사연과 추억이 서린 손때묻은 물건들 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보니 노인일수록 쓰래기를 안고사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도저히 쓸수없는 30년넘게 때로 코팅된 유리그릇들을 버리려고 밤새 싱크대를 뒤져 꺼내놨더니 그걸보고 ‘세상에 저걸 버리려고..’ 엄청나게 마음 상해하고 구시렁 구시렁 마치 내가 자신의 70넘게 쌓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뿌리채 흔든다고 생각하신다.


결국, 다시 제자리로 원위치 시킬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눈앞에서 버렸다가는 돌아가실때까지 마음 상해할것 같아서다.주변 말을 들어보니 며느리가 들어와 시어머니 살림을 버렸다가는 집안이 난리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나마 자식이니까 그냥 속상해 하는것로 그친다는 말이다.


30년 넘게 꺼내보지도 않은 낡은 부엌 살림살이들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른다고 봐야한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때 버릴거 버리고 처리했어야 하는건데 타이밍을 놏쳤다.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간직할 개인 박물관을 소유할만한 주거 공간을 지닌 사람들이 한국엔 그렇게 흔하지 않다. 한국처럼 아파트나 좁은집에서 주거의 협소함을 느끼고 사는 대부분의 서민들에겐 추억도 골치거리가 된다.


주거 공간에 허덕여야 하는 한국의 서민들에게 미국처럼 추억이라는 낡은 짐들에 공간을 내주는 행위는 사치에 가깝고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려면 불가능에 가깝다. 좁은집에서 살려면 무조건 과거는 버려야 현생활이 유지되기 때문에 전통보다 항상 새로운것에 우루루 몰려다니는 한국의 국민적 특성이 그래서 생긴듯 하다.


미국처럼 큰집에 사는경우 다락 개러지등은 대부분 개인 박물관처럼 활용된다. 영화를 봐도 선조대 보물지도가 발견되는 장소가 대부분 다락방 이나 창고이다. 미국같은 경우는 아이가 쓰던 물건들을 부모가 모두 박스에 담아 다락이나 창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가 자라서 어릴때 자신의 보물상자들을 다시 열어보면서 느끼는 추억의 즐거움은 돈으로 살수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의 경우도 어릴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 딱지 입었던 옷들을 보관해 놨으면 다 커서 그것을 보고 추억에 잠기고 얼마나 흐믓하고 좋았을지 생각해 본다. 대부분이 추억에 공간을 내줄만한 여유가 없이 협소한 생활공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살림이 귀했던 옛날시절을 살았던 노인분들은 몇십년된 그릇 접시등을 당시엔 비싸게 구입해서 버리진 못하고 집안 구석구석에 쌓아놓고 그냥 잊어버리고 새로사고 생활하는 공간 대부분을 짐에게 내주며 산다.



가장 아쉽고 보고싶고 지금에 와서 갖고있고 싶은건 내가 어릴때 열살 정도에 그렸던 만화들이다. 혼자서 만화책을 만든다고 문방구에서 A4 시험지를 사오고 호치키스로 중간을 박아 연필도 아닌 볼펜을 사다가 정성스럽게 그렸던 만화들이 무척 많았는데.. 고등학교때 그렸던 수많은 데생들.. 지금에 와서보면 돈주고도 살수없는 나만의 보물들이 되었을텐데 주거공간이 미국처럼 넉넉치 않다보니 계속 추억을 버릴수밖엔 없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삶도 그럴것이다.


노인들의 경우는 거동이 힘들어 생활반경이 아주 좁아져서 손에 닿는 거리에 모든 쓰는 살림들을 모아놓고 나머지 공간은 창고개념으로 사용하게 된다.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주로 계시는 소파 주위에 한가득 쓰는 물건들을 쌓아놓고 남이 손대는걸 극도로 싫어하신다.



가구나 살림을 버리려면 몰래 버리는것 보다 어머니 스스로 버리도록 해야 마음이 개운하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의 가구나 살림의 버리는 기준은 가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무게다. 비싼 수족관, 지점토로 꾸민 대형유리등 옛날에 쓰던 큰 가구들 버리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신다.


무겁고 비싼 가구들은 기력이 딸려 어차피 통제를 못하니 보기 싫다고 다 돈주고 내버리시고 겉보기 거지같아도 싸고 가벼우면 마음에 들어 계속 사용하면서 버리지 못하신다. 곡물  담아논 용기도 좋은 유리병들은 쌓아두고 가볍다고 버리는 패트병을 활용하신다.


내가 버린 서류철을 어머니가 보조 테이블로 사용하시길래 보기가 흉해 보조 테이블을 새로 사드리고 버리라고 했더니 자기는 서랍마다 이것저것 넣기도 좋고 그게 더 편하고 정이 간다고 그건 그거대로 계속 사용하신다고 하신다. 짐을 버리려다 도리어 짐이 하나더 늘은 셈이 됐다.


결국 돌아가실때 까지 어머니나 아버지가 쓰시던 물건들, 쌓아논 살림 쓰래기들은 그냥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노인들의 경우 눈에는 안보여도 그런 구석구석 쌓아둔 물건들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의미를 담으려 하시니 어쩔수가 없다.


나 역시 그런 버리지 못하는 짐들이 있다. 집안 정리 마지막 순서는 내 침대밑이다. 내짐이 분명한데..침대밑에 박스가 몇개 있길래 꺼내봤더니 고등학생때 쓰던 일기장들.. 20대때 공부할때 보던 음악 악보들과 교재들이다. 당시에는 외국에 나가서 비싸게 구입한 워낙 귀한 자료들이었던지라 음악에 손을 땐지 20년이 흘렀지만 아직 보관중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박스 하나..



내가 유럽에서 유학할때 한국에 있던 여자친구가 보내온 깨알같은 국제우편 편지가 한뭉태기 들어있다. 침대밑에만 있다가 25년만에 개봉된 타임캡슐로 차마 버리지 못하고 돈으로 살수없는 추억이라는 시간이 그 박스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리석은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랬구나.. 20대 젊은시절, 내가 남보기에는 뜨거운 연애를 십여년 했었다는 흔적이 보관한 편지박스에 그대로 담겨있다.



30 정도 성인이 다 돼서 장만했던 물건들은 아무리 고가여도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는데 주저함이 별로 없는데 고등학생때 쓰던 일기장과 편지박스는 없애야 하나 그대로 둬야하나.. 계속 갈등이 생긴다. 어머니가 젊을때 사진들 한박스 찢는것을 보고 어차피 자식들이 다 처리하고 자식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사진들을 왜 일부러 없애시는지.. 쓸데없는 일 한다고 타박했는데 나 역시 그런맘이 들기 시작한다.


한 인간이 태어나 자라고 죽을때까지의 역사는 그 사람이 쓰던 물건들에 그 흔적들이 남게된다. 역사속 인물들이 쓰던 물건들은 수집가들에게 고가에 경매되기도 하는데 개인들도 그런 개인 박물관이 될만한 최소한의 공간적 여유가 한국인의 서민들 삶속에도 자리잡을수 있는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집안정리를 하면서 추억을 버려야 하는 갈등과 고민들도 사라지게 되겠지..


정말 다시 보고싶고 갖고싶다. 어릴적 그렸던 나의 만화책들. 로보트 태권브이와 마징가.. 꺼벙이.. 아이의 눈에는 유명 만화가들 흉내내서 수정이 안되는 볼펜으로 혼자서 며칠을 끙끙대며 다 그리고 호치키스를 찍어 만화책을 만들면 스스로 엄청 잘 그린듯 뿌듯했는데 지금 보면 어떨지 정말로 궁금해 진다.. 그것이 남아있었더라면 정말로 지금의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물이었을테지..


그리다 (Missing you):

https://youtu.be/ZCJt6d8he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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