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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 이규봉 Jul 22. 2021

9. 디락 델타의 사형보다는종신노역형

∫d(t)dt은 사형의 고통, 사형의 고통을 능가하는종신노역형

생명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연쇄 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은 2005년 6월에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2003년 9월에 교도소를 출소한 후 2004년 7월까지 총 20명을 살해하였다. 이를 토대로 <추격자>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는 물론 사형을 받을만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 2009년 7월에는 강호순이 최종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2005년 10월 처와 장모를 살해하고 2008년 12월까지 여성 8명을 더 살해했다. 그 역시 사형을 받을만한 천인공노할 범죄를 행했다. 피해자인 유족들을 생각하면 사형보다 더 심한 벌이 있다면 그것을 집행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을 텐데!

   1931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소년 9명이 백인 여성 두 명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비극으로 뽑히는 스코츠버러(Scottsboro) 사건이다. 소년들은 기차 안에서 백인 남성들과 싸움하다 붙잡혔는데, 백인 여성 두 명은 자신들이 매춘 혐의로 기소될까 봐 옆에 있던 흑인소년들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거짓 진술한 것이다. 의사가 강간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증언했음에도 재판이 시작된 지 사흘 뒤에 당시 1심 법원은 9명 중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시민단체의 흑인 차별 반대 움직임으로 1937년 5명은 성폭행 혐의를 벗고, 1976년 추가로 한 명이 사면되었다. 나머지 3명은 이미 죽은 후인 2013년 11월 무려 82년 만에 사면되었다. 그들이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1956년 1월 일제강점기 시절 반민족 행위를 한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을 살해한 허태영 대령은 사형을 받았고 바로 집행되었다. 그 전 1949년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오히려 감형을 받고 군대에 복직하여 호의호식하고 살았다. 애국지사이자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은 조작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959년 7월 교수형을 당했다. 1961년 민족일보 사장인 조용수는 평화통일론을 주장하여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또한 사형 당했다. 1975년 시인 도예종을 포함한 8명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을 받고 집행되었다. 1980년 박정희를 살해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도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집행되었다. 허태영과 김재규를 제외한 사형수들은 현재 모두 재심을 신청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들이 모두 사형을 받을만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인가?

   1995년 수많은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은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1심에서는 사형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97년 12월에 사면되고 복권되어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사반란을 일으킨 군부는 정권을 장악하고 당시 재야인사인 김대중을 체포하였다. 내란 음모를 꾀하였다고 사건을 조작하여 군사재판에 넘겨 사형을 선고받게 하였다. 사형받아 마땅한 전두환은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뒤이어 사면복권 되었으나 누명 쓴 김대중은 꼼짝없이 사형을 당할 처지였다. 국제적 관심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바로 사형이 집행되었을 것이다. 김대중은 사형받아 마땅한 인물이고 오히려 전두환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법 또는 권력의 힘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제도는 사람들이 국가를 만든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아주 오래된 제도이다. 거의 모든 종교가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사형을 집행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심지어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기독교 국가에서 이단이라며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까지도 일삼았다. 우리 조선에서는 사지를 뽑아버리는 능지처참형도 있었다. 이러한 현장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대중은 일방적인 홍보에 세뇌되어 대체로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그렇지만 그 실상을 아는 소수의 민중은 조용히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영국 수상을 지내며 노조파괴를 일삼고 신자유주의를 전파한 마가렛 대처는 “누구도 자신의 살인 행위가 아무리 끔찍하고 극악해도 자신들은 죽음을 면한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죽을 정도로 나쁜 일을 하면 죽을 수 있다는 개인 책임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사형제를 적극 지지했다.

   피해자의 원한을 해소시켜주고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 사형제도라며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사형을 당한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사형을 당할만한 범죄자였는가? 후에 만일의 경우 무죄로 판명나면 그들을 죽게 한 자들이 처벌받거나 회개하는가? 대한민국 같은 민주주의 나라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존재하는가? 우리나라는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 유엔에 가입한 나라이다. 강제성은 없어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수천 년간 지구 상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사형이 여러 가지 이유와 방법으로 집행되었다. 그래서 이 사회는 보다 더 안전해졌는가? 사형제는 효과를 보았는가? 극악무도한 범죄가 사라졌는가? 역사적으로 형벌을 아무리 잔인하게 집행했어도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사형제도로는 ‘피해자의 원한을 해소시켜주고 범죄를 예방’하는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형은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개인의 생명권(3조)’과 ‘어느 누구도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요적인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5조)’는 조항에 반한다. 2007년 12월에 유엔은 모든 회원국들에게 사형집행을 유예하고 사형제도의 폐지를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12년 7월에 ”생명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며, 국제인권법의 핵심적인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법적 절차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을 앗아가는 일은 인간이 인간에게 하기엔 너무나 절대적인 결코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국제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형은 극도로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형벌이다. 사형제도는 생명권을 침해한다. 전기의자, 교수형, 가스처형, 참수형, 투석형, 총살형에서 독극물 주사까지, 사형을 어떤 방식으로 집행하는가와 상관없이 사형은 현대 형사사법제도에서 존재할 여지가 없는 폭력적인 형벌이다. 여러 국가의 정부들은 사형이 범죄를 억제한다고 주장하며 사형제도의 사용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사형이 다른 가혹한 형벌보다 범죄를 줄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한 사형은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사형은 종종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 인종적, 민족적 그리고 종교적인 소수 집단의 구성원에게 더 많이 적용된다. 사형선고와 집행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며 어떤 국가에서는 사형제도가 탄압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정치적인 저항을 잠재우는 신속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사형은 되돌릴 수 없는 형벌이다. 인간의 실수, 편견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처형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형 폐지는 국제적인 흐름


   사형을 당한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사형을 당할만한 범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사형을 당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죽은 자가 얼마나 될까? 정치적인 이유로, 무고에 의해서, 재판관의 어리석음과 탐욕에 의해서, 아무런 잘못도 없이 또는 사형 당할만한 정당한 이유도 없이, 힘이 없고, 가난해서, 권력이 없어 죽은 자 얼마나 될까? 나중에 이들의 무죄가 입증이 되었을 때 그들을 죽게 한 많은 관련자들이 처벌받거나 회개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미 죽은 그들과 그들의 유가족에겐 어떠한 보상이나 배상도 그들의 죽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형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범죄자에 대한 처형의 본보기를 보여주어 피해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달래주고, 처벌이 무서워 다시는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 보다 안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아닌가? 그래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매우 잔인하게 집행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인공노할 범죄가 잠시 수그러질 뿐 단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비록 그러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자를 극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봉건국가를 벗어난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국가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존재하는가는 항상 논의되어 왔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해자가 없음에도 국가의 안보를 내세우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바로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법이다. 일제 강점기시대에 조선인을 감시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치안유지법이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 정권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북한에 대해 옳은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어 헌법에 있는 ‘양심의 자유’를 위배하고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막는 법이다. 명백한 위헌적 요소가 있음에도 아직까지 존재한다.

   2003년 10월 10일에 <세계사형반대의 날>이 제정되었다. 현재 전 세계 국가들 중 2/3 이상이 법적으로 또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거나 다름없다. 또한 사형을 폐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12년 8월을 기준으로 전 세계 198개국 중 140개국이 법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했고 58개국만이 사형존치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140개국 중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97개국,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8개국이며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35개국이다. 

   2011년에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중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10%에 불과한 20개의 나라로 10년 전에 사형을 집행한 28개국에 비하면 그 수가 감소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는 아시아ㆍ태평양 지역과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사형을 집행하고 선고하는 국가의 수는 최근 몇 년간 줄어들고 있어 10년 전에 비해 사형 선고 수는 약 1/3 이하로 감소했다. 유럽과 구소련 국가들 중 사형을 집행하는 유일한 국가는 벨라루스뿐이고, 아프리카는 지난 10년간 사형을 폐지한 나라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되었다. 

   세계 최대의 사형집행국은 중국으로 매년 수천 명을 사형시키고 있다. 중국에서 사형에 관련된 수치들은 국가기밀로 분류되고 있다고 하는데, 2011년 알려진 것만도 중국에서는 나머지 모든 나라에서 처형된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형 당했다.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기독교를 믿는 시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국은 불명예스럽게도 2010년 국제사면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5위의 사형집행국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2011년에 4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미국은 미주 지역 및 G8 회원국 중 사형을 집행하는 유일한 국가다. 미국에서 사형을 법으로 금지한 주는 워싱턴 DC와 12개 주뿐으로 대다수의 많은 주가 사형을 허용한다. 사형수가 가장 많은 주는 텍사스로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고 조작한 정보로 이라크를 침략하여 수많은 사람을 살상한 미국 대통령 부시가 바로 텍사스 출신이다. 2위와 3위 그리고 4위는 이란과 북한 그리고 예멘이 차지했다. 

   2020년 기준으로 사형을 집행한 건수는 전년에 대비해 26%나 감소하여 6년 연속 감소세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사형 집행 건수가 작년 대비 절반 이상 감소하였다. 아래 그림은 국제사면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로 2011년에서 2020년 사이 전 세계에서 사형이 집행된 현황과 2020년 나라별 사형을 집행한 나라들이다. 


전 세계 사형집행현황 2011-2020
2020년 나라별 사형집행

   2020년 기준 사형집행을 가장 많이 하는 다섯 나라는 중국, 이란, 이집트, 이라크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이 나라를 보면 어떠한 체제의 나라가 사형을 많이 시키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다섯 나라 중에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선두를 달리는 미국이 뒤이은 6번째 나라이다. 많은 나라가 공개하고 있으나 일부 국가들은 사형집행에 대하여 비밀로 다루고 있다. 그 나라들은 일본,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몽골 그리고 북한 등이다. 

   유럽은 사실상 사형제도가 없는 지역이며 아프리카도 53개국 중 2007년에 사형을 집행한 7개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형제가 폐지되었다. 비록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인종차별이 매우 심한 미국이나 자민당 1당 체재의 일본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는 당연히 사형제가 없거나 또는 없애고 있어 사형제 폐지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체사레 벡카리아(Cesare Beccaria, 1738~1794)에 따르면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고, 형벌이 잔혹해질수록 범죄자는 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되며 잔혹한 형벌은 그 자체가 범죄자를 더욱 대담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형벌이 잔혹해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인간의 마음은 점점 잔혹성에 무감각해진다.

   형벌은 범죄자가 형벌을 통해 받은 해악이 범죄로부터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정도면 충분하다. 형벌이 잔혹해지면 두 가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하나는 아무리 잔혹하게 할지라도 인체의 기관과 감각으로 견뎌낼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흉악한 범죄가 생겼을 경우 기존보다 더 잔혹한 형을 고안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와 형벌 간에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기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잔혹한 형벌은 일시적인 볼거리만 될 뿐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형벌을 아무리 잔인하게 집행했어도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근본적으로는 막지 못했다. 사형은 한 사람의 시민에 대한 국가의 전쟁으로 볼 수 있다. 체사레 벡카리아는 한 시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경우는 그의 존재 자체가 기존의 정부형태에 위험한 혁명을 야기시킬 수 있는 경우와 한 사람의 죽음이 타인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라고 말한다.

   전자의 경우는 특히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정적을 살해하는 데 이용될 소지가 매우 높고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비록 정치사범이 아닌 일반사범에 의해 피해당한 피해자와 그 유족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는 무고한 사람이 죽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도 사형제도는 있지만 김영삼 정부가 1997년 12월 30일 23건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까지, 즉 1998년 이후 한 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사형제도는 과거 두 번이나 헌법재판소에 회부되었었다. 1996년에는 “우리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비춰 사형제 폐지는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를 제시하며 7대 2로 합헌이 결정되었다. 4년 뒤인 2010년 2월에도 역시 사형제는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이때는 5대 4였다. 이때의 사유는 “사형은 정당한 응보를 통하여 정의를 실현한다. 자유형의 선고만으로는 형벌이 해당 범죄 및 범죄자의 책임에 미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피해자들의 가족 및 일반 국민의 정의 관념에도 부합하지 못하게 된다.”이다.

   2020년 12월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사형제도 위헌 결정 호소 의견서’를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세 번째 위헌소송이다. 마지막 판결이 난지 11년이 지났고 사회도 많이 변했다. 이제 어떠한 판결이 날까? 또 합헌이 될까?

   2015년 현재 생존하고 있는 사형수의 현황과 1980년 이후의 현황이다. 현저히 그 인원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영삼 집권 말기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다.[경향 15.4.25]

1980년 이후 사형수 현황

   생존하는 사형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생존하는 사형수는 60명이며, 최고령은 77세이고 최연소는 25세이며 최장기 복역은 24년째 구금되어 있다.[경향 15.4.25]

   이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대체적으로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려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폭력에 젖어 자라면 커서도 폭력적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사람들이 폭력적이 되는 것의 1차적인 책임은 본인에게 있지만 오로지 그만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천인공노할 짓을 했다고 무조건 사형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회가 나누어 책임을 지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형제도


   정치적으로 사형제도가 악용된 경우는 전 세계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해방 이후 사형제도가 어떻게 악용되었는지 시대 순으로 살펴보자. 

   1949년 6월 육군 소위 안두희는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던 애국지사가 해방 후 국내에서 친일세력에 의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살해된 것이다. 살인자 안두희는 당시 특무대장 김창룡 등 그를 비호하는 친일 정치세력에 의해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안두희는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곧 15년형으로 감형됐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육군 장교로 복직했으며 대령으로 예편했다.

   1956년 1월 허태영 대령은 특무대장 김창룡을 암살했다. 김창룡은 해방 전에는 만주에서 일본 헌병을 지낸 친일파로 수많은 애국독립투사를 투옥하고 고문한 자였고, 해방 후에는 특무대장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고 정치적인 사건을 조작하고 군대 내에서 군통수권과 지휘권을 유린한 자였다. 안두희와는 달리 허태영은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집행되었다. 허태영은 “나의 행동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거사와 같은 것이다”라고 주장했으며, 함께 공모한 신초식은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가 백주에 명동거리를 활보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이 나라의 법률이 도대체 어떻게 나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항변하였다. 독자의 생각은 어떤가?

   거의 모든 민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던 애국지사 백범을 죽인 암살범은 백주에 명동거리를 활보하도록 허용하게 하고 친일부역자 김창룡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한 것은 당시의 정치 논리가 명백히 개입된 것이다. 같은 살인을 저질렀어도 정권의 비호를 받는 자는 살아남고, 정권의 눈에 벗어난 자는 죽는 것이다. 즉 정치적 차별이 적용된 것이다. 군대를 떠난 이후에도 안두희는 강원도 양구 등에서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는 특혜를 받아 부자로 잘 살았다. 결국 보다 못한 박기서라는 아주 평범한 시민이 반성하지 않는 안두희를 1996년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1959년 당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는 해방 전에는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였으며 해방 후에는 국회부의장과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조봉암은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이 저지른 엄청난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유효투표의 30%에 달하는 215여만 표를 획득하여 이승만의 정적으로 떠올랐다. 이승만과 자유당은 조봉암이 장기집권과 독재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진보당의 강령을 빌미 삼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법원에 압력을 가해 항소심과 최종심에서 모두 사형을 이끌어 냈다. 재심 청구마저 1959년 7월 30일 기각되고 다음 날 바로 교수형 당했다. 그는 2007년 재심 청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조봉암은 이미 죽고 없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부세력은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를 연행했다. 그리고 10월 31일 사형을 최종 확정하고 집행했다. 그를 사형에 처한 이유는 조용수가 일본에 있는 조총련 자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하고 무분별한 평화통일론을 주장하여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것이다. 민족일보는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양단된 조국의 비원을 호소하는 신문’을 표방하며 평화통일을 주창하였다. 조용수를 사형시킨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의혹받고 있는 박정희가 그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용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견해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는 해방 후 신분을 세탁하고 육군 장교가 되었으며 남로당은 그를 군대에 프락치로 파견했다. 2008년 1월 재심에서 47년 만에 조용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 선고로 그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시인 도예종 등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하고 국방부는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른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이다. 인민혁명당 사건은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 기소했으며 법원은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하루도 안 돼 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ㆍ조종 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하고,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조작한 사건이다. 그러나 2005년 12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자체 조사 결과,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자의적 요구에 의해 미리 수사방향이 결정돼 집행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반국가 단체라고 발표된 인혁당은 서클 수준의 단체였으며 수사과정에서 각종 고문이 자행됐다는 점이 인정됐고 2차 인혁당 사건의 중심이었던 ‘인혁당 재건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사형이 집행되었던 8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80년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당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이른바 1979년 ‘10·26 사태’이다. 이 사건에 대해 박정희 정권의 후예들은 박정희로부터 은총을 입은 제2의 권력자가 내부 불만 때문에 배신한 모반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10·26 거사가 많은 국민의 희생을 사전에 막은 정당방위라고 보고 김재규를 의인으로 평가한다. 군사재판에 참여한 변호인단은 모두 김재규에 대한 역사 재평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김재규를 고대 로마시대의 공화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은인이며 직속상관인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대통령 한 사람을 제거했다”라고 밝히고 1980년 5월 광주시민항쟁을 예언했다. 그는 “민주화를 지연시키다간 1980년 4월이나 5월 경 국가적 혼란 사태가 올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앞선 재심의 결과처럼 시간이 지나다 보면 김재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갔다.

   사형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앞서 예를 들었듯이 무고한 사람이 사형되는 것이다. 영화 <그린마일>이나 2013년에 개봉된 우리나라 영화 <7번방의 선물>을 보면 무고한 사람이 어떻게 사형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린마일>에서는 치유의 초능력을 가진 거대한 흑인이 죽어가는 백인 여자애를 살리려고 시도한 것이 선입견을 가진 백인들에 의해 오해를 사 살인자로 몰려 사형당한 것을 보여준다. <7번방의 선물>에서는 무고한 정신지체장애인이 자기 딸을 지키려는 부성애를 악용해 그를 살인자로 몰아 사형을 시킨다. 

   사형제도는 범죄 억제 효과보다는 피해자의 감정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사형제도를 실시하는 나라에서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없다. 사형제도의 시행과 범죄율 변화 사이의 관계에 관한 2002년도의 유엔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형제도에 대한 의존성을 낮춘다고 해서 범죄율이 갑자기 심각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준다. 그 이유는 현재 사형폐지국의 범죄 수치가 사형이 폐지되면서 사회 안정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높아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경우 10만 명 당 살인율은 1975년 3.09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었으나 사형제도를 폐지한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사형을 폐지한 지 27년이 지난 2003년 살인율은 1975년과 비교하여 약 44%가 낮아진 10만 명당 1.73을 기록하는 등 2003년의 강력범죄 발생률이 사형제도가 존재했던 1975년에 비해 44퍼센트나 감소였다. 미국의 경우 2004년 사형제도가 있는 주의 평균 살인사건 발생률은 10만 명당 5.71건이었던 데 반해 사형제도가 없는 주에서는 10만 명당 4.02건이었다. 

   사형은 극도로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형벌이다. 사형제도는 인권에 대한 도전이다. 사형은 인간의 생명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에 불과하다. 사형제도가 존속한다고 해도 잔혹한 범죄는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진다. 사형제도의 효과는 분명하지 않지만 문제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각 나라들은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다.


사형보다 더 고통스러운 종신노역형

     

   체사레 벡카리아가 말한 한 시민의 죽음이 필요하다고 간주될 수 있는 한 경우로서 “한 사람의 죽음이 타인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를 살펴보자. 과연 사형만이 유일한 방법일까? 인간의 정신에 무엇보다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라기보다는 그 지속성이라 할 수 있다.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력은 범죄자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짐을 나르는 짐승처럼 취급받고 자신의 노동으로 그가 사회에 끼친 손해를 속죄하는 인간의 모습을 오래 보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사형이 주는 인상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급속한 망각의 힘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받을 만한 흉악한 범죄자에게 합당한 고통을 충분히 주고 일반시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형벌은 정말 사형뿐일까? 종신노역형(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은 어떨까? 사형은 한순간에 모든 고통을 집결시키지만 종신노역형은 일생에 걸쳐 고통이 분산된다. 오랫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것은 순간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보다 시민들에게 더 큰 경각심을 안겨줄 수 있다.

   인간 정신은 일시적 고통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해 버티어내지만, 장기간 반복되는 지루함과 비참함을 이겨낼 만한 탄력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에서는 본보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사형에 처할만한 범죄가 생겨나야 한다. 그러나 종신노역형은 단지 한 범죄자만 있어도 그를 통해 일련의 지속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일반 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한순간의 볼거리인 사형보다는 오래도록 경각심이 지속되게 할 수 있는 종신노역형이 더욱 좋은 형벌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사형수는 죽는 날만 기다리다 죽는 그 순간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죽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형은 앞서 설명한 디락 델타 함수 d(t)로 표현할 수 있다. 이 함수는 0에서는 무한히 큰 수를 갖지만 0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는 0이 된다. 따라서 0을 죽는 순간이라 생각하면 디락 델타 함수는 죽는 그 순간에 엄청나게 큰 고통을 받지만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종신노역형은 죽는 순간만큼의 큰 고통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되므로 그 고통은 그가 살아있는 매 순간 계속된다. 

   사형은 평시에는 별 힘든 것이 없다가 죽는 그 짧은 순간에 최고의 고통을 당한다. 그렇지 않은가? 적분의 개념으로 보면 사형수가 느끼는 고통의 양은 수감 이후로 죽을 때까지의 모든 고통을 합한 ∫d(t)dt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종신노역형은 죽을 때까지 오랜 기간 끊임없이 적당한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무기수가 느끼는 고통의 양은 ∫노역형(t)dt 라 볼 수 있다. 아무리 고통의 강도가 강할지라도 느끼는 그 순간이 짧으면 고통의 양은 작을 수 있고, 고통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느끼는 시간이 길면 전체적으로 느낀 고통의 양은 더욱 클 수 있다. 

   이처럼 사형을 받을 때의 고통의 양을 일정하다고 보고 이 보다 더 강제노역의 강도를 높여 평생 강제노역으로부터 나오는 고통의 합이 사형을 받을 때의 그 고통보다 더 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노역형(t)dt > ∫d(t)dt

   그러므로 굳이 사형을 집행할 필요가 없다. 피해자의 보복심을 순간적으로 만족시켜 주지는 못할지라도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이 수형자에게는 더욱 큰 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아주 큰 고통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극형인 사형에 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형은 종신노역형보다는 가해자에게 덜 고통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에 처하는 것이 피해자가 원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으로서 종신노역형은 사형과 마찬가지로 가해자가 다시 사회에 나오는 일이 없어 피해자 유족과 마주칠 일도 없다. 따라서 길게 보면 종신노역형이 사형보다 가해자에게 더 고통을 주므로 사형보다는 종신노역형이 피해자의 마음을 더 헤아려 줄 수 있다. 이것이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범죄는 대부분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래서 자신이 사형당할 걸 안다고 해서 현재 범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우발적인 중범죄를 저지르고 나면 오히려 어차피 죽을 몸이라고 추가 범행도 서슴지 않게 된다. 

   1998년과 2002년에 로저 후드 교수는 유엔의 의뢰를 받아 ‘사형제도와 살인범죄율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사형이 종신형보다 살인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The Death Penalty: Word, A World-wide Perspective, 2002)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사형제도가 살인을 예방하는 데 있어서 종신형보다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은 나중에 무죄로 판결 나면 이미 지나간 고난의 세월은 어쩔 수 없지만 대신 물질적으로 모두 보상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형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정적을 살해하는데 악용될 수 있고, 또는 잘못된 판단으로 사형에 처해지면 나중에 범인이 잡히더라고 그것은 돌이킬 수가 없게 되는 매우 큰 약점이 있다. 이 점이 다른 모든 형벌과의 차이점이다. <그린마일>이나 <7번방의 선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유능한 변호사를 살 능력이 없거나 편견을 가진 판검사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사형을 폐지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고 잘못된 판단으로 사라져 간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형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낸다.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이 겪는 정신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한 처형된 사형수들의 기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 등 범죄와 하등 관련 없는 사람들이 또 고통을 겪어야 한다.


사형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


   사람들은 범죄 피해자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가해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피해자 가족의 권리라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가족이 살해된 유가족도 모두가 범인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가해자를 사형시켰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치유해주지 않는다. 사형은 피해자 유족의 고통에 대해 피상적인 해결책만 제공할 뿐이며 오히려 사형을 선고받은 이의 가족들에게까지 그 고통을 확장한다.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세로 자주 범죄와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가해자를 사형시키는 것보다 그들이 슬픔과 상실감을 이겨내고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도와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다. 가해자를 사형시켜 또 다른 슬픈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답은 아니다. 폭력의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 우리가 가해자를 사형시키려고 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관심을 둬야 하는 것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경제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이다. 진정한 해답은 범죄예방을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지, 또 다른 살인 피해자 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살인 피해자 유족 단체인 ‘인권을 옹호하는 살인 피해자 유족들(Murder Victims for Human Rights)’은 사형제도 반대 운동을 한다. 2001년 19살 외동딸을 잃은 미국 윌콕스는 “많은 이들이 사형제도를 피해자 유족의 이름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치유는 우리 내부에서 오지 살인자의 운명에서 오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부모를 잃은 로저스는 “사형제도는 야만의 특수하고 영원한 상징이다. 사형이 집행되는 곳은 야만이 지배한다. 사형이 없는 곳에서 문명이 지배한다.”라고 했으며, 남아공 헌법재판소장 이스마일 마호메드는 “방화에 대한 처벌로 방화범의 집을 불태울 수 없고 성폭행에 대한 처벌로 성폭행범을 성폭행할 수 없다면, 왜 살인에 대한 처벌로 살인자를 처단하는 것은 허용되는가?”라고 반문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자들은 살인과 같은 개별적 폭력에 대한 증오를 사형제 찬성으로 표출하면서도 정작 ‘용산참사’와 같은 그런 주관적 폭력을 조장하는 체제의 폭력성을 용인하니 참으로 위선이다.”라며 우리나라에서 용산참사에 비유한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는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어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위험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를 사형에 처할 어떠한 권한도 없다. 타인에게 본보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일지라도 사형할 권한은 없다.”라고 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한 서린 마음을 푸는데도 순간에 그치는 사형보다는 두고두고 고통을 겪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종신노역형이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보다는 더욱 효과적이라고 본다.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종신노역형 등의 형벌로 대체하고 국가는 살인 피해자의 유가족에 대해서는 공동체로서의 배려와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사형은 생명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국가에 의한 사법살인에 불과하며 사형제도가 존속한다고 해도 잔혹한 범죄는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질 뿐이다. 따라서 사형보다는 범죄예방의 전시 및 지속성에 더 효과가 있고, 범죄자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으며, 나중에 무죄가 밝혀지면 그 억울함을 보상받을 수 있고, 특히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는 종신노역형으로 사형을 대신해야 한다고 본다.

  논어 위정 편에 다음과 말이 있다. 비록 옛말이나 지금도 새겨들을 만하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즉 법으로 인도하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려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나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여 바른 길로 나갈 것이다.


시사 및 읽을거리


김성태, 『의사 김재규』    

문영심,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원희복, 『조용수와 민족일보』  

한홍구, 『대한민국사』, 『특강』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니콜라스 할라즈, 『나는 고발한다』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미국민중사』

경향신문 2013.11.23. ‘백인 성폭행 혐의 흑인소년 3명 82년 만에 사후 사면’

         2015.04.24. ‘생존 사형수 60명, 최고령 77세·최연소 25세·최장기 24년째 구금’

         2015.04.24. ‘사형제, OECD국 중 3곳뿐… 학계·법조계 존폐 이견’

         2015.12.29. ‘박정희 정권 조작 ‘유럽 간첩단’ 사형 집행 43년 만에 무죄‘

한겨레 21 2010.03.08. ‘살인자를 살인해 무엇을 얻나’

[영화] ‘7번 방의 비밀’, ‘그린 마일’

www.amnest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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