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스스로 투표권을 내려놓자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여명 비례투표’ 발언이 '노인 비하' 발언이라며 정치권을 들쑤셔놓았다.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라고 언급하며 남은 수명에 비례한 투표권 행사가 합리적이라 생각한다는 발언에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르신을 폄하하는 막말이자 민주주의의 평등선거 원칙을 위반하는 충격적인 발언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니 그녀가 그러한 제안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도 아니고 과거 중학생이었던 아들과의 대화에서 아들이 주장한 것이고, 자신이 볼 때 합리적이라 생각했으나 현재 1인 1표 선거권이 있어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한 것이다. 단지 어린 아들의 생각이 합리적이나 현실은 불가능하다고 했을 뿐인데 마치 잘 걸렸다는 식으로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
현재 선거제도에서 투표가 가능한 나이는 만 18세다. 투표권 행사에 연령 제한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행위무능력자’로 보아 혼인이나 재산상 거래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민법상의 조항이 그 근거라고 본다. 투표에서는 그나마 1년이 낮추어져 18세가 되었다. 즉 미성년자는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투표의 본질을 흐릴 수 있고, 인기 위주의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학연과 지연, 특히 혈연 등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아닐까? 이러한 논리는 노인에게도 적용된다.
참정권을 확장하는 운동으로 나이 제한을 아예 없애고 갓난아기까지 투표권을 주자는 ‘데미니 투표권(Demeny voting)’도 있다. 데미니 투표권은 환경 문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이에게는 정책 선택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원절약과 환경보호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반면 노인에게는 먼 장래보다 당장의 비용과 불편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 현실화되기는 어려웠지만 허무맹랑한 주장도 아니다. 과거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주자는 주장도 매우 엉뚱했다. 시대에 맞추어 제한이 하나둘씩 풀려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사다.
나이에 따른 비례투표의 정책화는 현실성이 부족하다. 그 대안으로 노인 투표권을 스스로 제한하는 운동을 폈으면 한다. 사회가 고령화됨에 따라 생산인구가 줄어들고 미래에 대한 관점이 좁아진다. 눈앞의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경향의 투표권이 있는 고령층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에 대한 배려는 줄어든다.
태어나서 18년이 지나야 투표할 권리를 준다는 것은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적어도 18년간의 교육과 성장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저세상으로 돌아가기 전에도 그만큼의 시간 동안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통적으로 우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三才)’의 영향을 받으며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는다. 그동안 사람으로 삶을 누린 대신 생태계에 엄청난 해를 끼친 것은 사실이다. 18년 동안 교육을 받고 사회에 참여했듯이, 저세상에 가기 전에 우리가 자연에 끼친 해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려 노력하면서 죽음을 편하게 맞이할 시간이 필요하다. 평균 수명이 82세라 가정하고 18을 3으로 나눈 6년간의 숙려기간을 갖자. 76세부터는 더 이상 투표에 참여하지 말고 세상일에도 간섭하지 말고 오직 생태계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으로 생활하자. 앞으로 나서지 말고, 가능한 말은 줄이고, 세상일은 젊은이에게 맡기자. 젊은이는 우리의 자녀들이고 손주들이다. 그들은 뒷정리하는 그러한 노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