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므프 Mar 30. 2022

대중탕이 그리운 날

무더위가 가시고 찬바람에 코 끝이 시리기 시작하면 주말마다 우리 가족이 향하던 곳이 있었다.

바로 온천이다. 더위와 꿉꿉한 습기가 다시 찾아오는 계절까지 우리 가족은 매주 온천에 갔다.


“어머님, 저희 지금 출발하니 10분 있다가 천천히 나오셔요.”


할머니, 할아버지께 출발을 알리는 전화를 드리고 우리 네 가족은 차에 몸을 실었다.

빈손으로 털레털레 나가는 남자들과 달리 엄마와 내 짐은 양손 한가득이다. 갈아입을 옷. 마사지할 때 쓸 요거트와 곡물가루. 목욕 용품. 화장품. 목욕 바구니 하나로는 해결이 안 된다.



“아빠! 우리 이따 몇 시에 만날까?”

“한 시간 반이면 되지?”

“그건 모자를 것 같은데.. 두 시간 후에 만나자”


양손의 짐이 말해 주듯 우리 집 여자들은 언제나 시간이 빠듯했다. 목욕을 어떻게 하길래 저렇게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인지 언제나 미스터리였지만, 남탕에 따라갈 나이는 지났기에 내 눈으로 확인할 길도 없었다.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탕 안으로 들어가면 온천 특유의 냄새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제일 처음 맡는 건 사우나 향과 한방탕의 한약재 냄새다. 머리 감는 아줌마를 지나치면 샴푸의 향이, 온몸에 요거트 마사지 중인 아줌마 옆에선 시큼하고 달달한 내가 풍겨왔다.


“52번 손님!! 52번 손님!!!”


때밀이 이모는 라커키를 들고 다음 차례 손님을 연신 불러댔다. 어른들의 이야기 소리와 냉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 수영장인 양 신나게 노는 아이들 소리가 목욕탕을 메웠다.



어렸던 나는 할머니와 엄마가 다 씻을 때까지 온탕과 냉탕을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주로 엄마가 때를 밀어줬지만 할머니가 밀어주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내 몸을 반으로 나눠 한쪽은 엄마가 반대쪽은 할머니가 밀어주던 날도 있었다.

때를 벗겨내고 나면 가져온 요거트에 곡물가루를 섞어 다 같이 나눠 발랐다. 얼굴은 더 꼼꼼히 발라줬다.




벗겨낸 때의 중량이 얼마이길래. 탕 밖을 나오면 날아갈 듯 몸이 가벼운 걸까. 탕 밖의 온도에 몸이 적응하자 서늘함은 금세 가시고 뽀송뽀송한 기분만 남았다. 우린 품앗이하듯 서로의 등에 바디로션을 발라줬다.

기둥에 붙어 있는 커다란 시계를 보니 분침은 어느덧 약속한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벤치에 앉아 있는 남의 집 남자들 틈 속에서 우리 집 세 남자를 찾았다.

“할아버지! 배고파. 선지 해장국 먹으러 가자!!”

온천의 마무리는 언제나 할아버지와 내가 좋아하던 선지 해장국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온 후 온천은 일상이 아니라 겨울방학에만 할 수 있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마저도 직장인이 되고 난 후에는 기회가 줄었다. 혼자 살며 동네 목욕탕에 몇 번 가봤지만 가족들과 함께 가던 그 맛이 안 나 발걸음을 거뒀다.


엊그제 잠시 틀어 놓은 TV에서 코로나로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단 소식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다니던 온천은 무사할까. 온천을 메웠던 많은 사람들은 요즘 어디서 때를 밀고 있을까.


오늘 밤엔 샤워 말고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이라도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에겐 자기계발계획 같은 건 없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