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Apr 24. 2023

무기력 바닥을 찍었다면, 남은 건 도약뿐이다

일에 나를 던진 결과, 번 아웃

에너지를 쏟아부을 일을 찾아 나를 던지며 살았다. 내가 배울 게 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앞뒤 안 따지고 뛰어들었다. 왕복 4시간 대중교통을 타고 페이도 적은 일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인 양 열심히 했었지. 커리어 관리는 신경도 안 쓰고 여러 직종의 일을 했다. 매번 시작은 신입이었으므로 배울 것도 많았지만 즐거이 했다.


그렇게 10년 정도 살았으면 번 아웃 올만 하지 뭐. 번 아웃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았다. 주중엔 척척 일을 해내며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만 무기력했다. 체력이 방전되어 뭘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신혼 초였는데 남편이 주말에 출근을 해서 혼자 휴일을 보냈다. 집도 좀 정리하고 놀아보기도 하려고 애썼는데 잘 안 됐다. 스스로 번 아웃, 무기력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게으르지, 왜 혼자 잘 못 지내지 자책했었다.


소울메이트 남편도 감당하지 못하는 짜증

남편과 싸움이라도 한 날엔 더 가관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커튼도 걷지 않아 깜깜한 방에서 하루종일 의미 없는 핸드폰만 하고 밥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이 상태까지 되어버리니 신경이 예민하고 짜증이 차있어서 걸핏하면 싸웠다. 영혼의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남편도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못하고 나도 선을 넘는 짜증을 내니 폭발했다.


3년 정도 그 상태로 지냈다. 회사는 잘 다녔고 일상은 기복이 심했다. 남편과 사이가 좋으면 무기력이 웬 말이냐, 즐겁게 지내다가 남편과 싸우면 하루종일 울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면서. 한 달에 1~2번 정도 그런 것 같다.


삶의 붕괴

이직을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새로운 직장에 입사를 하게 되어 의욕적으로 시작했는데 일을 잘 못했다. 처음 하는 일이어도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못했다. 일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스스로 눈에 차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쉬고만 싶었다. 이때 자기 효능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자기 효능감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다. 지금까지 다닌 직장 중에 가장 대우도 좋고 사람들도 따뜻해서 회사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월급날이면 자괴감에 잠을 못 잤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정신적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혼자 강박과 불안에 떨면서 일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주중에는 그래도 멋있는 커리어 우먼처럼 살았었는데 이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엉망이 되었다. 입사 6개월 만에 삶이 망가졌다. 아주 만족스런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망가졌다.


그때 하늘에서 동아줄 하나가 내려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기력 밖으로 나와, 다시 쓰는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