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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pr 26. 2023

단단히 버티는 날


새벽에 남편이 아이 변비를 낫게 하는 글을 카톡으로 보내줬다.(7개월 차 아이를 친정에서 키우며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낸다.) 내게 잔소리가 될까 아주 조심스런 말투였지만 어쨌든 내가 해야 할 일이 더해졌다. 아이 변비로 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출근해서 메일을 열어보니 업무 요청 메일이 평소보다 많았다. 그중 고객사의 업무 요청이 메일만으로 명확하지 않아 전화로 확인했다. 내가 잘 못 알아듣는다는 투로 짜증을 냈다. 소통이 안된 게 나만의 이유였을까, 그는 짜증을 내고 나는 짜증을 받았다.


아침부터 너의 짜증에 멘탈을 무너뜨릴 수 없어, 난 할 게 많단 말야


전화를 끊고 뱃속에서 올라오는 억울한 감정을 어떻게 소화할지 계획을 세웠다.


처음 같이 일하는 동료 또는 외부 업체 사람이 내가 일을 못한다고 답답해하거나 무시할 때,


1) 내가 정말 못하는 경우

의사소통을 못하거나 : 글이나 시각화 자료로 소통하기

일 자체를 못하거나 : 어쩔 수 없지, 내가 열심히 해야지


2) 내가 못하는 게 아닌 경우

잘한다고 어필할 필요가 없을 때 : 그러거나 말거나

어필해야 할 때 : 주는 일 보다 잘해주기


감정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다 압도되지 않고 적절한 소화 방법을 골라 밖으로 내보냈다.


다음엔 자료를 보면서 대화해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최근 회사 일이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놓치는 일이 없는지, 중요한 일이 언제 있는지 머리에서 정리되지 않으면 막연한 불안감에 일을 해도 일을 걱정한다. 얼른 노션에 페이지를 펼쳐 프로젝트별로 할 일과 일정을 정리해서 다시 머리에 넣었다.


하는 김에 일뿐만 아니라 나, 아이, 가족에 대해 돌봐야 할 것을 적어서 머리에 같이 넣었다. 심지어 지금 고민해야 할 것과 한 달 후 고민할 것도 정해두었다. 잔뜩 어질러진 집을 깔끔하게 정돈한 느낌이다.


퇴근길, 버스에서 햇볕을 쬐며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눈물을 삼키고 글로 적어낸다. 감정일기 첫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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