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스트레스 물통 같은 것이 있다고 치자. 1리터짜리인데 불안과 강박으로 퇴근할 때쯤이면 990 정도 찬다. 퇴근 후 남편이 10을 넘게 채우면 물이 넘쳤다. 별것도 아닌 일로 남편에게 화를 냈다는 말이다.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두지 않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고, 저녁 준비를 하는 데 걸리적거리는 남편에게 또 잔소리를 했다. 지금은 이렇게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철저한 나만의 시각이었다. 스트레스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화를 내게 만든 마지막 원인 제공자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무 덜렁대는 저 남자와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남편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애썼다.
남편의 습관이 고쳐졌다면 좀 나아졌을까. 안타깝게도 남편이 깜빡하는 게 좀 심한 편인 것도 맞아서 남편에게 화를 많이 냈다. 남편도 언젠가부터 참지 않아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
스스로 회복할 수 없고 남편에게 의지할 수 없게 되자 나는 정신과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마음은 자포자기 너덜너덜 삶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 같았다. 잘하는 데를 찾아볼 기력도 없이 근처에 아무 곳이나 찾아 예약했다.
그때 남편이 미술심리치료 교육을 제안했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 같았다.
남편도 나처럼 죽을 것 같았을 때 미술심리치료 교육을 받고 살아 나왔다고 표현했다.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받는 게 아니라 상담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는데, 자연스럽게 이론을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고 실습과정에서 많은 치유가 되었다고 했다.
교육은 1년 과정으로 1~4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3시간 수업이었다. 단계별로 30만 원 수강료도 있었다.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그냥 에라 모르겠다 돈부터 냈다. 4단계를 모두 들을 생각도 아니었다. 일단 해보자.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바닥을 찍고 오르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