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육을 신청할 때 이미 1단계는 종료되어서 2단계부터 들을 수 있었다. 내 상태에서 체계적으로 수업을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교육생은 10명이 채 안되었다. 대부분 상담분야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이었고 아무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셀프 치유를 위해 온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2단계는 대상자별 미술치료였다. 아동, 청소년, 노인, 가족 장애아동 대상에 따라 미술치료 기법과 사례를 배웠다.
1단계 : 미술치료의 기본이해
2단계 : 대상자별 미술치료
3단계 : 심리학과 미술치료
4단계 : 미술치료 실천과 기법
수업은 이론과 실습으로 나뉜다. 이론도 흥미롭긴 했는데 실습이 재밌었다. 색연필, 크레파스를 잡아본 게 언제더라. 점토를 조물조물 만지기만 해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업 초기에 자기 모습을 지점토로 만드는 실습을 했었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조각상처럼 나의 얼굴을 점토로 만들어야 하나? 강사님은 나의 실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이미지는 뭐든 좋다고 했다. 비로소 생각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새를 만들고 싶었다. 나를 닮았다면 통통한 새겠지. 그런데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이면 좋겠는데. 조형물을 어떻게 나는 것처럼 만들지. 나무 위에 올려야겠다. 하나씩 결정해 나가다 보니 내가 만들어졌다.
다 만들어 놓고 찬찬히 본다. 내가 왜 새를 만들었을까. 자유롭게 나는 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색깔도 파란색과 흰색을 섞어서 하늘처럼 표현했구나. 새가 눈도 부릅뜨고 입도 벌리고 있고 상당히 생동적이어 보였다. 이건 분명 지금의 나는 아니다. 내가 이런 모습이고 싶구나, 무의식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자유롭게 힘차게 하늘을 날고 싶구나
살면서 마음을 꽤 들여다보았기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꺼내어 놓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있어 놀랍다. 글이 아니라 그림, 조형물과 같은 더 다채로운 선택으로 만들어진 나는 무언가를 더 담고 있었다.
미술심리치료 교육의 백미는 다른 교육생들과의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나의 작품을 설명하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단순한 작업이어도 정말 사람마다 결과물이 어쩜 그렇다 다른지. 사람들 속에서 차이를 인지하다 보면 나의 특성을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나는 강의실 안의 사람들 중에 가장 자유를 바라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