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 미케 비치

by 조매영

밤에 혼자 호텔에서 나왔다. 펍을 갈까 싶어 일단 걸었다. 그랩이라 적힌 헬멧을 쓴 남자가 오토바이를 탄 채 내게 접근했다. 그는 붐붐마싸를 외쳤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휴대폰으로 여자 사진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고개를 젓고 걸었다. 그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떠났다.


마음에 드는 펍을 발견하긴 쉽지 않았다. 지도에서 별점이라도 보고 찾아가야 했을까. 포기하고 그냥 해변으로 향했다. 파도가 거칠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양 손에 신발을 한 짝씩 들고 바다에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잔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바다를 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억센 바람을 가로지르며 뛰고 춤을 추는 청년들을 지나 걸었다. 밤바다를 걷는 것은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거친 파도와 억센 바람에 바다 내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바다의 공포만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연인들도 청년들도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혼자 남아지만 고독하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파도가 미친 것 같았다. 고독도 살아있어야 가능하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었다.

모래사장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뒤에 구급차도 한 대 있었다. 베트남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표정을 보니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번역 앱을 켜서 상황을 물으니 술에 취한 중국인 관광객이 물에 들어가 실종되었다고 했다. 멀리 바다를 봤다. 파도를 사람이라고 사람을 파도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방에 들어오니 엄마는 자고 있었다. 미케 비치 근처로 숙소를 정한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산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어떻게 바다를 아무렇지 않게 좋아할 수 있는 걸까.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창문부터 찾았었다. 고층 건물들 사이에 조그마하게 보이는 바다를 보며 탄성을 지르는 엄마가 좋았다. 나는 자연보다 자연을 보는 엄마를 보는 게 좋다. 나는 아직 덜 컸나 보다.


조식을 먹으며 밤에 산책한 것을 이야기했다. 그랩 기사나 중국인 관광객은 빼고 이야기했다. 억센 바람과 거친 파도를 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낭만적인 밤바다와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우리는 조식을 먹고 해변으로 향했다. 바다는 밤새 많이 잠잠해진 것 같았다. 우리는 물에 발을 담근 채 걸었다. 엄마는 젊은 한국인 둘이 서핑 강습을 받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밀물에 휘청거리는 엄마를 붙잡으며 밀물도 견디지 못하면서 파도는 어떻게 타겠냐고 놀렸다. 우리는 손을 잡고 마저 걸었다. 엄마를 통해 보는 바닷가는 평화로웠다.


엄마와 걷는 동안 어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표정이 굳지 않도록 긴장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갑상선 암에 걸렸다고 끝까지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를 본다. 살면서 엄마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내게서 숨겼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얼마나 평화롭게 살아왔던 걸까. 어림잡기도 불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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