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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14. 2021

눈치 보는 아이였으니까 눈치 없는 어른이 되고 싶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나는 리사이클 놀이터 팀 스태프로 일했다. 교육적인 목적 없이 정말 아이들과 함께 '잘' 노는 것에 집중된 팀이다. 학교 축제부터 시작해서 지역 행사까지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나를 대체로 좋아한다. 어릴 때 나는 또래에 비해 성숙한 아이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릴 때 성숙한 아이가 나이가 들면 미성숙한 사람이 된다던데 그래서 아이들이 나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초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어느 정도 알아본다. 아이들이 내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이 그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는 대체로 성숙해 보인다. 성숙해 보여야 낯선 사람에게 칭찬이라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랬다.

 보호받지 못한 먹이사슬 최하위에 위치한 동물은 대체로 눈치가 빠르다. 죽지 않으려면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랬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노는 것이 좋았다. 아이들과 뛰어다니는 것이 좋았다. 떼쓰는 아이보다 먼저 누워 떼쓰는 것이 좋았다. 사탕을 나눠주다 도망가면 쫓아오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눈치 없는 아이들이 부럽고 좋았다.


 위압적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놀고 있는 아이의 손을 낚아채더니, 집에 가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을 볼 적이 있었다. 내 눈이 분노와 슬픔으로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부모의 손을 잡고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면 당신의 아이는 나처럼 될 수 있어요. 말하고 싶었다. 아무 말 못 하는 어른이라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가 커서 이런 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어 눈물이 났다.


 차별이나 폭력에 대한 기사에서 요즘 시대가 그런 것이 있겠냐고 선동하지 말라는 댓글을 봤다. 차별이나 폭력은 언제나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가해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폭력을 행하면서 요즘 시대에 폭력이 어딨냐고 말한다. 외면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싶다.

 

사탕을 들고 도망 다니다 붙잡혔다. 밑에 빼빼로는 재밌게 놀고 집에 간다고 아이가 내게 선물로 준 것이다. 나도 이렇게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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