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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9. 2021

병문안 대신 배달 어플로 빵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저녁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밥은 먹었나, 오늘 일은 힘들지 않았나 같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왜 매일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 하고 생각을 멈췄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가족은 사랑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나 나나 서로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안부를 묻고 있었다.     


 할 말을 다했다 생각해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별 일이 아니라는 투로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평소처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었다면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저번에 갑상선암도 내가 다그쳐서야 알려주지 않았냐고. 알려주는 건 고마운데 안 들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알려주는 것은 또 뭐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비밀이 들킨 아이처럼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려고만 했다. 결국 화내는 것은 포기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리어카를 끌다가 넘어졌다고 한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빠가 폐지와 캔을 모은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었었다. 뭐라도 하는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내가 아빠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가만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해야 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니, 제 몸도 못 가누면서 이제 와서 돈 몇 푼 벌어보겠다 난리 피우는 것은 무슨 심보인 걸까. 병원비가 폐지와 캔을 모은 비용보다 몇 배는 더 나오겠다. 온갖 욕이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허공에다 남은 화를 모두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평온해진 마음이 곧 걱정으로 가득해졌다. 병원은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가 상시 있지도 않을 테고 면회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빠가 아니라 의료진이 걱정되었다. 과거 허리 디스크 수술만으로도 섬망이 와서 다른 병실에 들어가 생난리를 피운 전적이 있는 아빠였다.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허리는 괜찮냐고 물었다. 아빠는 뼈에 금이 갔다고 대답했다. 엄살 섞인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이상 통화를 길게 하면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몸조리 잘하라 말하고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정신은 멀쩡한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술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내일 퇴근하는 길에 빵을 사들고 병원에 들릴 예정이라고 했다. 요즘 아빠는 밥보다 빵을 좋아한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에게 병원 이름과 아빠 병실 번호를 물었다. 내일 빵을 사지 말라하고 전화를 끊었다.     


 배달 어플에서 병원 주소로 빵을 주문했다. 병문안 대신이었다. 아빠에게 전화해 빵을 보냈다고 말했다. 아빠는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정신줄 좀 놓지 말라고 말할 뻔했다. 어플에서 빵이 잘 도착했다고 알람이 왔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창 밖을 보니 어느새 저녁을 지나 밤이었다. 엄마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고 조금 울었다. 엄마와 괜한 죄책감을 만들지 않는 것도, 아빠 일에 관심 두지 않는 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견디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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