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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28. 2021

아빠에게 곰탕의 고기를 전부 덜어주었다.

 아빠와 대학병원에 갔다. 아빠의 정신과 진료 때문이다. 가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빠가 진료를 받는 동안 나는 뒤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자신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생각을 했다. 아빠가 의사에게 하는 말이 모두 내게 가한 폭력에 대한 핑계같이 들렸기 때문이다.      


 아빠의 이야기가 끝났다. 의사는 아빠에게 약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의사는 당장은 약을 그대로 드리겠지만 차츰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빠는 알겠다고 말했다. 만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대화가 끝난 것 같아 아빠를 먼저 내보냈다. 엄마가 나를 보낸 이유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아빠는 최근에 약을 과다 복용했었다. 이후에 섬망에 걸린 것처럼 헛소리도 하고 난리를 피우기까지 했다. 엄마는 아빠가 괜찮은 건지 의사에게 물어봐 달라고 했었다.      


 의사는 몸에 크게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다. 섬망 같은 행동은 수면제로 인한 잠투정이라고 했다. 기가 찼다. 아빠가 나간 닫힌 문을 잠시 봤다. 의사는 보호자가 약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아빠는 벤치에서 앉아 기다리지 않고 대기실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어느 날 아빠는 뜬금없이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국밥을 사준 이야기를 했었다. 고기가 많았다고, 거기다 할아버지가 고기를 덜어줘서 배가 터질 것 같았다고 했었다. 나는 속으로 어쩌라는 걸까 싶었다. 자신이 때릴 수 없는 나이가 되자 친한 척하는 것이 꼴사나웠었다.     


 우리는 명동에 있는 유명한 곰탕집에 들어갔다. 앉자마자 아빠에게 묻지도 않고 이만 원짜리 하나와 만삼천 원짜리 하나를 주문했다. 마주 앉아 있으니 어색했다. 괜히 파를 뒤적거리거나 소금과 후추를 들었다 놨다. 다행스럽게 오 분도 되지 않아 곰탕이 나왔다. 직원이 곰탕을 건네줄 때 잠시 고민했다. 내가 비싼 것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이미 내 손은 비싼 곰탕을 아빠 앞에 두게 하고 있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아빠를 봤다. 아빠는 고개를 반쯤 그릇에 파묻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아빠의 정수리를 봤겠지. 할아버지는 아빠의 정수리에서 애틋함을 느꼈겠지. 그래서 자신의 그릇에 고기까지 덜어주었겠지. 아빠가 국밥을 좋아하는 것은 할아버지 덕분일 것이다. 아빠는 유년의 기억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까. 모르겠지. 안다면 내 유년을 그따위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빠는 그때 이후로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애가 애였던 나를 질투했을지도 모르겠다. 입맛이 떨어졌다.

 오늘만이라고, 오늘만 당신의 보호자라고. 이제 그만 애 같아지라고. 좀 크라고. 지금이라도 바르게 자라 달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빠의 정수리를 봤다.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애틋함이 없었다.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고기를 전부 아빠 그릇에 덜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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