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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09. 2021

X-ray로 마음의 실금은 볼 수 없나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도망가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나는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내려쳐지고 있었다. 퍽, 불쾌한 타격음과 함께 붉은 플라스틱 파편이 허공에 흩어졌다.


 손에 붕대를 감는 동안 엑스레이 사진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손가락을 활짝 펼친 모습이 꼭 괴물 꽃 같았다. 라플레시아처럼 어딘가에 저런 모양의 꽃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반깁스를 하기 전 의사는 중지에 실금이 갔다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실금을 찾을 수 없었다. 의사는 잘 좀 보고 다니라고 했다. 넘어질 때 손을 잘못 디뎠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뛰다 넘어졌냐고 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의사는 며칠 있다 오라고만 말하고 치료를 끝냈다.

     

 집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차라리 머리를 맞고 말지. 아니면 왼손으로 막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오른손으로 막았을까. 중얼거리며 플라스틱 조각을 골목 가장자리로 쓸어냈다. 5살이었던가. 아빠가 던진 리모컨이 내 머리에 부딪혀 고장 났던 게 생각났다. 그것도 내가 수리를 맡기러 전자 대리점에 들고 갔었지. 발로 돌멩이들을 공터로 밀어내며 다음에는 넘어지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리모컨 때는 그냥 맞았고 이번에는 도망가다 맞았으니 다음에는 꼭 잘 도망가야지. 발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반항도 할 수 있겠지.


 해바라기 하던 노인들은 착한 일을 한다며 칭찬을 했다. 울음 섞인 비명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는 것처럼. 한 손으로 플라스틱 조각을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아빠와 친한 그들의 눈에는 반깁스 한 오른손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중지에만 실금이 간 것인데 왜 야구 글러브처럼 엄지 빼고 다 붕대를 감아 놓은 것일까.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다 김치를 떨어트렸다. 아빠의 숟가락질이 멈춰 있는 것이 보였다. 수습해야 했다. 급히 젓가락을 두고 맨손으로 집어 먹었다. 숟가락이 날아왔다. 고개를 숙인 채 맨밥만 먹었다. 붕대를 꼼꼼히 감은 의사가 괜히 미워졌다.


 시를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왼손으로 시를 써봤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글씨였다. 이제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수행평가로 조별 활동을 하게 되었다. 같은 조가 된 아이 중 하나가 울상이 되었다.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아이였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장해물이 되는구나 싶었다.


 수행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멍하니 칠판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맞았으면 안 다치지 않았을까. 막아서 다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이 가까워지면 무언가 하는 척했다. 금세 멀어졌다. 의사나 노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선생님도 반깁스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시를 써도 보여드리지 않기로 했다. 더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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