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이었다. 덜 맞기 위해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문 앞은 평소와 다르게 적막했다. 문은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다. 살며시 문을 열었다. 바둑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줘야 했는데 반겨주지 않았다. 바둑이가 보이지 않았다. 개밥그릇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로 바둑이를 불러봤다. 오지 않았다. 한번 더 불러봤다. 기척도 없었다. 대신 안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빠가 욕을 했다. 나는 한 평 남짓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것도 모자라 이불도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바둑이도 아빠를 피해 숨다가 어디에 갇힌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구석에서 떨고 있을 바둑이를 생각하니 슬펐다. 그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도 이불속에서 떨기 바빴다.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면 바둑이는 뛰어 들어와 얼굴을 핥아야 했다. 고요했다.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만 보였다. 아빠는 아침 일찍 인력사무소에 간 것 같았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바둑이 어디 갔어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죽었어, 네 동생들이 안아서 데리고 오던 중에 달려오는 자동차로 뛰어들었다더라.
자고 있는 동생들을 깨웠다. 어제 하굣길에 동생들이 동사무소 근처에서 바둑이를 데리고 있던 것을 봤었다.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했었다. 동생들은 싫다고 했었다. 억지로라도 내가 데리고 갔어야 했다. 화를 내고 싶어 깨웠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동생들이 싫은 만큼 내가 싫었다. 밥을 먹는 동안 내내 울었다. 열려 있는 문을 봤다. 평소 같으면 바둑이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난리를 피워야 했는데 바둑이는 없었다.
학교에서도 내내 울었다. 눈을 감으면 바둑이가 뛰어오는 것 같았고 눈을 뜨면 바둑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있어도 바둑이가 생각났다. 바둑이가 없으니 울음이 울음을 낳았다. 집에서 맞고 구석에 앉아 울고 있으면 바둑이는 옆에 와 내 손등을 핥아 주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을수록 바둑이가 더욱더 보고 싶어 졌다.
하굣길도 내내 울었다. 집에 가까워져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일을 구하지 못했는지 집에 있었다. 방구석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소리 내 울으면 아빠가 때릴 것 같았다. 울다 보면 바둑이가 나타날 것 같았다. 옆에서 같이 낑낑 앓는 소리를 내줄 것 같았다. 바둑이 대신 아빠가 방에 들어왔다. 뺨을 때렸다. 누가 죽었냐고. 그만 울라고 했다. 누가 죽었냐니. 바둑이가 죽었는데. 누가 죽었냐니. 따지고 싶었다. 따지기엔 너무 아팠다. 울음을 삼켰다. 체할 것 같았다.
아빠가 방에서 나가고 이불속에 숨었다. 쉴 틈 없이 울음을 삼켰다. 혹여나 울음이 새어나갈까 손등을 물었다. 바둑이가 원망스러웠다. 왜 나 혼자 두고 이 지옥을 탈출한 것일까.